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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Nov 03. 2019

건축거장 마리오 보타와의 대화 3

마리오 보타는 공간의 관계성을 중요시한다. 경기도 화성에 들어서는 ‘남양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설계를 맡은 보타는 지난해 11월 초 가진 인터뷰에서 “건축의 힘이 그 규모나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주변 환경, 즉 풍경과 건축환경과 이루는 공간적 관계성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디자인부터 그가 사용하는 벽돌이나 돌과 같은 외부 소재까지 건축물이 들어서는 콘텍스트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남양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두 개의 야트막한 산이 만나는 골짜기에 들어선다. 건축 공사현장을 방문했을 때 멀리서 보면 웅장하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다지 위압적이지 않고, 그래서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인간적 규모’(휴먼스케일)라고 느꼈던 이유를 이제 좀 이해할 것 같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콘텍스트를 중시한 결과였다.            

 설계도면을 검토하고 있는 마리오 보타.


함혜리 (이하 함) 반세기에 걸쳐 다양한 건축물을 디자인하셨습니다. 종교적 기념물을 작업할 때 어떤 특별한 주제나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하는지요.

마리오 보타 (이하 보타) 특별한 이미지를 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결과물은 그 건축물이 위치하는 환경(context)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건축의 힘이 그 규모나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주변 환경, 즉 풍경과 건축환경과 이루는 공간적 관계성에서 온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건설한 도시도 마찬가지로 그 환경과의 관계는 늘 존재합니다. 무언가 흥미롭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공간적 관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도시든, 건축물이든) 그것이 아름다움을 갖게 되는 환경과 공간적 관계를 바꿀 때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한만원 건축가(이하 한) 처음 그리셨던 스케치가 생각이 납니다. 이후 5년간 작업하면서 14차례 이상 바꾸면서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럼에도 그 장소가 환경과 지형과 갖는 관계에 대한 초기의 아이디어는 항상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타 그렇지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됐을 뿐입니다. 그것은 원래의 프로젝트 자체가 있고, 그것이 다르게 나타난 형태들의 이해를 돕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탁자를 만들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제단을 그리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단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까지 나는 그것이 테이블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 쓰였던 그 식탁이 변형된 형태로서의 테이블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것을 다른 상징으로 봅니다.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의미가 존재하고 그 의미란 나아가 예수님의 무덤이라고까지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라는 것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것은 새로 제시되는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제단으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제단과 동일한 것을 만들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통해 공간과 형태를 만들어낼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이따금 교회의 위원회 측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른 여러 교회와 작업을 진행해 봤지만 제단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다른 해석을 내놓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원래 제단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수차례의 검토와 고민을 거친 끝에 비로소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된다. 연필을 쥐고 있는 마리오 보타의 손이 고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제단 한 가지를 놓고 그렇게 달리 해석하고 의견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네요. 충돌도 많지만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건축 작업의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타 예컨대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제단이 교회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위원회는 그 뜻을 받아들여 중앙에 제단이 놓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중앙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지리적 중심을 얘기하는 건가요? 기하학적 축인가요? 아니면 공간적 중앙으로서 옆면에 있는 것인가요? 알바 알토 Alba Alto의 교회에서는 중심이 가운데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구석진 곳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제단의 함축적 의미부터 중심을 지정하기 위한 의견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기둥을 세운다는 것과 오픈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별개의 다른 결정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때마다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신학자들과 전례 학자들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노 과르디니 Romano Guardini 같은 현세기 초반에 주요 역할을 한 신학자들은 (과거의 시점에서) 현시대 종교적 제의에 대해 옳은 방향이라고 주의를 강조했던 부분은 ‘예배는 형식이 아닌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명확하고 단순해야 하며 그 자체가 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종교적 장소가 이런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20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이미 같은 목적을 향해 다양하게 명시돼 왔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야 할 것입니다.

큰 것을 짓든 작은 것을 짓든 건축 공정은 시간이 필요하다. 건축가에게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스위스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입니다.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까지 계획을 진행하러 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보타 가끔은 나 스스로도 이 열정과 밀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계속 한국에서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이상각 신부님은 나에게 아직도 궁금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분입니다. 내게 ‘악마’인지 ‘천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분이 혼자의 힘으로 이 대지에 이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이제 나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일에 엮였습니다. 이로써 나도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고를 받게 된 것이죠. 나 스스로 타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셈입니다. 이제는 나도 그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공사현장을 스마트폰에 담고 있는 마리오 보타.



 당신에게 이 신부님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인가요?

보타 신부님이 지닌 그런 순수함이 내게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설명해 보겠습니다. 나로서는 복잡한 방식으로 보는 것을 이 신부님은 단순하고 순수하게 바라봅니다. 그가 주변 인물들과 맺는 관계와 행동을 봐도 그렇습니다. 기술적으로 발달되고 부유하며 산업화된 이 세상에서 하지 않을 법한 것들을 그는 합니다. 그는 설교자 게라르 키 Gerard Ki에 대해서도 굉장한 순수함으로 메시지를 잘 전달해 줍니다. 세상을 향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이곳에서 교황, 주교, 사제, 관리인, 성가대원의 역할 등 수많은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는 은행원이기도 합니다. 그가 적어도 건축가가 아닌 것이 기쁩니다.

한 이 신부님은 건축방면에서 많은 의견을 갖고 있지만 건축가에 대해 큰 존경심을 지니고 계십니다.

보타 그의 겸손함과 사고방식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는 어느 부분까지 침묵으로 지지하는 ‘좋은 클라이언트’입니다.

 내용은 그렇다해도 공정을 놓고 어느 정도 재촉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9월 현재 90% 이상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남양 로사리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성당은 두개의 얕트막한 구릉이 만나는 지점에 들어섰다. (이상각 신부님 제공 )


 신부님 본인의 의견도 없지 않지만 보타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보타 사실 궁극적으로 창의적인(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부분은 혼자 해야 합니다. 수많은 정보를 얻고 난 뒤에는 결국은 홀로 흰 종이 앞에 연필 한 자루를 쥐고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작업하는 바실리카도 어떻게 구현되고 적용될지 알지 못합니다. 교회를 위한 공간을 설계하지만 어떤 요소가 더해져야 바실리카로서 정체성을 갖게 할 것인지 그 규율을 요청해 놓고 있습니다.

한 건축적인 측면에서는 바실리카로서 특별히 더해져야 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2018년 겨울 어느날 공사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보타(오른 쪽)의 모습이 보인다.


설계자로서 현재 드러나는 형태에 만족하시는지요?

보타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도 있습니다. 반면 시공단계에서 문제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건축의 일부입니다. 완공된 이후는 지금과 또 다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단계입니다.

 구조적으로나, 혹은 다른 부분에서 어떤 점들이 아쉬운지 물어도 될지요?

보타 아직 공간이 덮이지 않아 내부 공간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기다려 보고 싶습니다. 산 지대에 놓여있는 방식이 일단 마음에 듭니다. 안심이 되는 부분이죠.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규모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지금의 규모는 적당하게 선정됐다고 보여집니다. 다른 부분은 대지와 근접하는 문제에 있어 아직 조정하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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