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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ul 18. 2024

드디어 돌로미티] 2. 트레치메 트레킹

돌로미티의 랜드마크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돌로미티의 동쪽 주요 지점에 해당하는 코르티나 담페초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둘째 날(6월 27일)은 ‘돌로미티’의 랜드마크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줄여서 트레치메)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었다. 길지 않은 일정의 하이라이트이면서 가장 힘이 들어가는 코스였다.  28인치짜리 트렁크를 새로 구입해서까지 트레킹화를 짐 속에 챙기고, 만약에 대비해 얇은 오리털 파카까지 가져온 것은 이날의 트레킹을 위해서였다. 사실 등산이나 트레킹 등 야외 활동에서 장비는 무척 중요하다. 좀 과장하면 극한 지역에서 장비는 생명과도 연결된 문제다. 물론 이번 여행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준비는 철저하게 하는 게 마음이 놓였다. 블로거들이 남긴 글에서도 신발은 트레킹화를 신어야 한다고 했는데 가보니 정말 그랬다.

해발 1225m에 위치한 청정지역의 맑은 공기 덕분인지 꿀잠을 자고 여행의 피로도 많이 풀려서 기분이 상쾌했다. 발코니 덧문 사이로 햇살이 강하다. 문을 열었다. 어제의 그 풍경이 도망가지 않고 나를 반긴다. 다리 아래로 알프스의 빙하가 녹은 물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만년설이 쌓인 산맥이 저 멀리 펼쳐져 있는데 예배당에선 종소리까지 울려준다. 하늘은 파랗고 솜처럼 하얀 구름이 둥실둥실. 정말 화창한 날씨다. 돌로미티 여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날씨라는데 일단 트레치메 트레킹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날씨다.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놓고, 어젯밤에 하다 만 시내 구경을 ‘딱’ 한 시간만 하고 와서 체크아웃하기로 한다. 무거운 트렁크를 매번 내리지 않도록 당장에 필요한 짐만 따로 꺼내고 짐을 챙겼다.

코로나 호텔의 첫인상은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었다. 주인장도 무척 사무적이고 무뚝뚝해 보였다. 하지만 지내면서 '만족'으로 바뀌었다. 위치도 좋았고, 주인장은 정확하게 할 일은 다 하는 사람이었고 직원들도 모두 친절했다. 방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전기 주전자와 차(Tea) 세트도 방에 가져다주었고, 좁지만 엘리베이터도 잘 가동하고, 주변이 조용해서 불편함 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듣던 대로 아침식사는 훌륭했다. 정갈한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챙겨 넣고 보온병에 커피까지 담아서 오후의 트레킹을 준비해 놓고 다리를 건너 시내로 갔다.

호텔을 나와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이 바로 코르티나 담페초 시내다. 상점은 모두 문을 열고  있었는데 한 산악용품점에 들어가 보니 요즘 가장 핫 하다는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온(On) 운동화가 색깔별로, 디자인별로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분홍색이 마음에 들어서 신어 보려다가 무거운 짐이 짐스러워 참고 나왔는데 좀 후회된다. 역시 여행 중에는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즉시 사는 게 정답이다. 좀 더 시내로 가보니 목요일인데 왁자지껄한 것이 축제 분위기다. 어젯밤에 거리에 깃발들이 걸려 있었는데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울트라마라톤 대회의 부대행사로 가족동반 어린이 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모두 나온 것 같았다. 물론 주변 마을에서도 왔겠지만 어디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나왔는지 깜짝 놀랐다.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엄마, 아빠와 함께  4~5살 아이들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이들이 달리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건강한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미소로 응원하고 있었다. 저출산 문제로 아이들 구경하기가  어려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제일 꼬마연령대의 아이들이 모두 가슴에 ‘1번’ 넘버를 달고 대기하고 있다가 아나운서가 ‘출발!’ 신호를 내리자 고사리 손을 엄마 아빠와 고사리손을 꼭 잡고 달려 나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400m 달리기로 200m 지점에서 돌아오는 경기였다. 마지막으로 골인한 선수는 젖꼭지를 문 아기였다.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다음 연령대는 좀 긴 코스를 혼자서 달려오는 것이었다. 제법 속도를 내며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름엔 달리기와 사이클링, 하이킹 등을 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는 등 자연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사는 이들이 부러웠다. 달리기 구경을 하다가 시간이 지체되어서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오늘의 목적지 트레치메로 향했다.


돌로미티의 가장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트레치메는 영어로 하면 쓰리 픽스(Three Picks) 세 개의 날카로운 바위산이 우뚝 선 기이한 모양의 봉우리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머문 이유는 트레치메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로 아우론조 산장(Refugio Auronzo)까지 가서 여기에 주차를 하고 트레킹을 하게 되어 있다. 코로나 호텔에서 아우론조 산장까지는 24km, 자동차로 40분 거리다. 가는 도중에 오른쪽에 미수리나 호수(Lago di Misurina)가 보이는데 브라이에스 호수에서의 감동이 컸고, 시간도 없어서 통과하고 트레치메 톨게이트로 향했다.

트레치메를 가기위해 아우론조 산장 쪽으로 가면서 만난 미수리나 호수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자동차가 길게 늘어서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오전에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 주차공간이 부족해서인지 차 한 대가 나와야 한대가 들어가는 식으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좀 일찍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드디어 입장. 주차비는 인원에 관계없이, 시간에 관계없이 승용차 1대에 30유로. 톨게이트를 지나서도 아우론조 산장까지는 오르막길을 한참 달려야 한다. 오전 트레킹을 마친 사람이 나간 자리에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주차를 하고 나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옷을 끼어 입고 우산을 들고 트레킹을 시작한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좀 늦어지긴 했다. 오전에 왔으면 날씨가 아주 좋아서 더 쾌적했겠지만 후회는 없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라바레도 산장(Refugio Lavaredo)까지는 평지를 750m 정도 걷는다. 걷는 중에 발아래로 굽이굽이 계곡들이 펼쳐지는 풍경이 압권이다. 가는 길에 예배당 부근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도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비신부도,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신랑도 발에는 트레킹화를 신은 것이 재미있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면 서서히 오르막에 부서진 돌들이 많은 길이어서 발을 단단히 잡아주는 트레킹화를 신는 것이 좋다.

트레치메 가까이 가는 것은 오른쪽으로 길게 돌아가는 길이 있고, 왼쪽으로는 조금 가파르지만  빨리 트레치메를 볼 수 있는 장소에 다다른다. 대부분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택한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는 게 상책이다. 트레치메의 뒤쪽에서 오른쪽 옆구리를 끼고 올라왔는데 아직까지는 완전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다시 만년설이 남아있는 언덕을 넘어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간다. 드디어 트레치메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어찌 저렇게 거인의 창처럼 날카로운 봉우리가 서있을 수 있을까. 주변으로는 깊은 계곡들과 웅장한 산맥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독특한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신기하다. 10년 전 남미 쿠스코에서 갔던 마추픽추의 풍경도 기이하고 근사했는데 트레치메를 중심으로 한 알프스 산맥의 규모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트레치메는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알피니스트들에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가장 높은 빅 피크는 해발 2999m, 서쪽 봉우리가 2973m, 스몰 픽이 2857m인데 1869년 비엔나 출신의 폴 그로만 Paul Grohmann, Sesto 출신의 프란츠 이너코플러 Franz Innerkofler, 루가노 출신의 페터 살처 Peter Salcher가 처음으로 Big Peak (2,999m)를 성공적으로 정복했다고 한다. 이들은 2시간 55분 만에 정상에 도달했고 5년 후 인 1874년 안나 플로너 Anna Ploner라는 여성이 다시 빅 피크의 정상에 올랐다. 1879년 서쪽 봉우리가 처음으로 정복되었고, 1881년 3개 봉우리 중 가장 어려운 스몰피크 Small Peak  등반에도 성공했다. 바람은 조금 있었지만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나는 세 개의 봉우리를 눈으로만 정복하기로 하고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 걸쳐 있는 알프스지역은 돌로미티는 남티롤, 벨루노, 트렌토를 아우르며 15942 km²의 산악지역을 형성한다. 7개의 자연공원이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가장 높은 산은 마르몰라다(3342m)인데 12개의 대규모 스키리조트가 있으며 하나의 스키 패스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겨울스포츠의 천국일 뿐 아니라 등반, 트레킹, 하이킹, 산악자전거 등 사계절 내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약 2억 8천만 년 전에는 최대 3m 크기의 초식 공룡들이 뛰어다녔던 곳이 서부 돌로미티 지역부터 땅이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지각이 갈라지고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 지대가 만들어졌고 2억 5천만 년 전 이곳은 바다를 이룬다. 2억 년 이상 바다였던 이곳은 역사상 가장 큰 기후 재앙(아마도 운석의 충돌에 의한)을 만나면서 더욱 바다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바닷속 저 아래에서 강력한 화산 폭발(2억 2800만 년 전)로 엄청난 양의 용암이 터져 나와 산호초를 덮고 생명을 앗아간다. 거대한 지층이 솟아오르면서 바다는 저 멀리 뒤로 이동하고 이때 트레치메르 포함한 라바레도 지역과 크리스탈로 Cristallo, 토파나 Tofana 등 돌로미티에서 가장 인상적인 산들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 6500만 년 전 지구상의 대멸종에 이어 3000만 년 전 지표면의 융기로 알프스가 형성되고 바다는 더욱 뒤로 물러난다. 이어 2000만 년 전 강들이 지류와 계곡을 형성하고 구불구불한 둥근 봉우리들이 나타나고 바위가 옆에서 밀어내는 힘으로 퇴적물들이 위로 드러나기도 하고 하늘로 뻗어 나간 가파른 봉우리들도 나타난다. 500만 년 전 빙하기는 이곳의 풍경을 다시 변화시킨다. 돌로미티는 2km 두께의 얼음 담요 아래에서 잠들고 가장 높은 봉우리들만 빙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빙하는 엄청난 힘으로 바위를 깎아 U자형 계곡, 빙퇴석, 매끈한 표면 등 다양한 모양의 흔적을 남겼다. 산들은 접히고 지층은 사방에서 오는 다양한 힘에 의해 변형되어 움직였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 내 발아래에 있는 기이한 돌들은 2억 년 전 폭발한 화산암의 화석이며,  바다 밑의 기억을 품은 산호초의 화석이었던 것이다. 장대한 자연이 주는 힘은 눈에 보는 풍경 너머로 아득하게 긴 시간까지 품고 있기에 더욱 강렬한 것 같다.   

포르첼라 라바레도에서 본 트레치메

한참 사진을 찍다가 뒤를 돌아보니 다음번 봉우리 방향으로 길이 이어져 있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동굴 입구를 통해 트레치메의 세 봉우리가 보이는 곳이 어디냐고 친구에게 물었을 때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동굴이 있는 또 다른 전망 포인트 포르첼라 라바레도(Forcella Lavaredo)를 가려면 또 다른 산장까지 가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족히 왕복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사진을 찍다가 만난 나이 지긋하신 부부(두 달째 유럽 자동차 여행 중이라고 하셨다.)께서는 그곳에서 멈추겠다고 하시지만 나는 계속 가기로 한다. 마지막 길은 정말 가팔랐고 잔 돌이 미끄러져 내려서 올라가기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씩 힘을 끌어올려 중간 동굴까지 올라갔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트레치메를 보니 프레임에 넣어 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젊은 한국인 커플이 개를 데리고 거기까지 올라와 있었다. 상냥하고 붙임성 있는 여자가 혼자 올라온 나를 위해 멋진 사진을 찍어 주고 동영상까지 찍어 주었다. 덕분에 귀중한 사진을 얻었다. (역시 젊은 이들이 사진 찍는 감이 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힘들었지만 조심조심하며 내려왔다.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라바레도 산장에서 다리를 쉬면서 시원한 맥주와 따뜻한 야채 수프를 한 그릇 먹었다. 점심시간에는 요리를 꽤 하고 있는 듯했으나 늦은 시간이라 맛볼 수 없었다. 다시 차로 돌아오니 5시 반이다. 좀 흐린 하늘에서 빗 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이 기사는 컬처램프에서 좀더 많은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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