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취향, 아트램프의 취향
김재관 지음, 문학동네 펴냄
건축가 김재관을 처음 만난 것은 명륜동 언덕에 자리 잡은 그의 집 마당 살구나무 아래에서였다. 계절로 치자면 밤바람이 차가웠고 살구꽃은 피어있었다. 그는 자신을 집수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건축가인데 집수리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가 사는 집(역시 자신이 수리한 집)에 온갖 연장이 가득한 것을 보니 뭔가 수리하는 게 맞기는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역시 그가 하는 ‘수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은 책 ‘수리수리 집수리’를 보니 이제 알 것 같다. 그가 무엇을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수리하는지를.
책은 ‘집을 수리하고 삶을 수리하는 건축가 김재관의 집과 사람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얼마 전까지 집을 설계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던 그가 어떻게 목수·집수리장이가 됐는지를 들어보자. 그는 1997년 무회건축연구소를 설립하고 서른 다섯 즈음부터 십여 년간 개신교 교회를 주로 설계했다. 강정교회, 성만교회, 충신교회 등 열 개 남짓 개신교회와 주거시설을 설계해 한국 건축문화대상, 경기도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문화의 밤’ 행사 중 ‘일일 설계사무소’에서 만난 율리아의 집을 수리하면서 집 수리업자로 전향했다. 요즘 그의 명함에는 ‘목수’라는 직함이 찍혀있다.
그는 “그동안 지향했던 건축가적 삶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삶의 경로를 수정한 것”이며 “‘내 생각’이라 부르던 건축에 대한 개념조차 내 몸에서 자란 것이 아님을 깨닫고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집중했던 교회 건축에서 더 이상 진보적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도 관계가 있다”고 했다.
아무튼 이런 뼈아픈 각성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책은 2010년 ‘율리아네 집수리’부터 김교수네, 철민이네, 예진이네 집수리를 거쳐 2018년 이상집 집수리까지 다섯 채의 집을 수리한 김재관의 생각과 고민, 그 안에서 함께 일했던 수리하는 사람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각각 긴 사연을 품은 오래된 집들은 저마다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 그곳에서 계속해서의 삶이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김재관의 수리법이다. 그는 집이 지닌 문제부터 살핀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로 인해 볕이 들지 않게 된 어두운 집, 산 밑에 지어진 낡은 집 , 안방만 밝은 어두운 남향집, 잡동사니로 복잡해진 마당, 유행 지난 눈썹 등을 어떻게 해결해 구조와 쓰임새를 새롭게 찾아갔는지를 책에 풀어놓았다. 수리하는 데는 집을 새로 짓는 것과 같은 작업이 수반된다. 벽돌 쌓기, 용접, 도배, 타일, 전기 배관 등 세련된 도면이 없이도 ‘감’으로 훌륭하게 마무리하는 현장 장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보여준다. 막살아가는 듯 하지만 절대 막사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웃기기도 하면서 참 따뜻하다.
집은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이다. 오랜 세월 살아온 집도 세월과 함께 나이가 들어 낡고 허름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재개발, 재건축에 밀려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지형도, 도시의 지형도,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도 밑도 끝도 없는 재개발에 떠밀려 끊임없이 변해간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삶의 공간을 수리해가며 살아가는 일은 대한민국처럼 끊임없이 재개발이 이어지는 나라에서는 웬만해선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저자는 쉼 없이 신축 건물을 지어나가는 일이 아닌, 시공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것을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집수리’라 부른다. 사물을 깊고 바르게 이해하면 할수록 궁극의 앎에 미칠 수 있다는 의미를 그는 집수리에 투영한다. 집의 낡음, 남루함, 불편함, 어둠, 작음, 좁음을 유심히 살피고 해석해 수리의 대상에 포함시키려 한다.
“집도 다시 나누면 물, 길, 빛, 축軸,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虛, 어둠, 태 등으로 세분되는데, 여기에 수리를 합하면 물의 수리, 길의 수리, 빛의 수리, 축의 수리, 터의 수리, 뼈의 수리, 방의 수리, 켜의 수리, 층의 수리, 마당의 수리, 시선의 수리, 나무의 수리, 바람의 수리, 허의 수리, 어둠의 수리, 태의 수리가 된다. 그렇다면 물, 길, 빛, 축,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 어둠, 태는 왜 수리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수리 자체라기보다는 수리된 집에서 살게 될 인간의 삶을 수리하려는 것이다. ”
그는 근래에 구기동의 집을 수리하며 동네 수리의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담이 없어지자 감나무 아래에서 이웃들이 모여 소통하게 되는 것처럼 집수리도 이웃과 함께하면 이로움을 공유하고 해로움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일이 확장될 때 도시 수리 혹은 도시 재생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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