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신체, 본능, 욕망 등을 거침없이 형상화하는 서양화가 정복수(62). 어찌 보면 기괴하다 할 수 있는 독특한 인체 그림에 40년째 몰입해 온 그가 제3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 정복수를 선정한 이유다. 그는 청소년기에 홀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자기 세계를 고유의 스타일로 구축해 온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작업의 의지, 독자적 감수성, 그 감수성을 증명하는 작품성으로 한국 형상미술에서 독특한 지점을 점유하는 정복수 작가를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이 열린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만났다.
경상남도 의령 출신인 그는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느릿느릿 말을 한다. 하지만 진솔해서 의미가 뚜렷하게 전해온다. 그에게 집요하게 몸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현대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시골에서 자랄 때는 정보도 얻을 수 없고, 현대미술을 공부할 여건도 안 됐어요. 현대미술을 하다가 잘못하면 서양사람 흉내내기에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나 사람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을 그리기로 정했습니다.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파고 들어가면 스스로 가치 있는 작품세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지요.”
그런데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옷을 입지 않고 있고, 머리카락도 없다. 전시장에서 옷을 입고 머리털이 그려진 그림은 ‘고독을 소독하는 사람’(1978년) 등 초창기 작품 몇 점뿐이다.
“옷이란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신분, 직업을 의미합니다. 실제 가면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옷을 그리지 않고 사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어요. 거기서 더 들어가 내면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세계관을, 그리고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 생각했습니다. 가면의 상태를 뛰어넘는 그런 인간의 상태를 표현하려고 옷을 그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인체의 형상은 대상의 표현 범주를 넘어 세계에 대한 감성과 인식을 자유롭게 토로한다. 오래된 동굴의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형상인 듯 하지만 매우 모던한 느낌이다. 그의 파격적인 인체 그림은 제도권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뚝심으로 40년째 인체 형상을 그려왔다. 아마도 스스로를 계속 다독였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을 깨우쳤을 것이다. 전시작품 중 ‘인생의 일기’ 시리즈는 인생을 달관하고 그림으로 도를 닦는 화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떤 인생 시리즈에는 일기처럼 단상을 군데군데 적어놓기도 하고, 다른 그림에선 글을 쓰고 지워버렸다. 쓴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1984년 드로잉에 그는 ‘누가 알아준다고 만족할 일도 아니요, 인정해준다든지 무관심 하다든지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비난의 소리에 찬사를 보냅시다.’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그림 외에는 잘하는 게 없었어요. 이것 외에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다른 것을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다른 능력이 있었으면 그 길로 빠졌을 텐데 말에요. 그런 능력도 없고, 미련하기도 하고요. 40년 넘게 그림만 그렸지요. ”
그는 자신이 그려내는 인체에 통상의 인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담아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몸에서 뱀이 나오는가 하면 내장이 그려진 인체, 잘린 팔에서 피가 솟구치는 등 강렬한 이미지의 그림은 사서 집에 걸어 놓고 보기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좋아하지만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러니 그의 그림은 잘 팔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안 팔린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실제로 팔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힘들게 그린 그림이 내 마음에 드는데 내가 갖고 싶지.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 하는 생각으로 그린 것도 아니고요. 돈이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죠.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만족할 때까지 마음 편안하게 작업하는 거죠. 힘들면 살만한 사람에게 가서 부탁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제가 좀 미련해요. 그런데 너무 빠릿빠릿하면 그림세계가 깊이 있게 들어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
정복수 작가는 1985년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가를 졸업했다. 늦게 대학에 진학해 늦게 공부했지만 1976년 부산 현대화랑 첫 전시를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전시에는 1970년대 말의 유화작품과 목탄 작품부터 최근의 부조 작품까지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표현하는 재료와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뿐 그가 다루는 주제는 늘 인간이다.
“태초부터 현재, 앞으로 미래까지 변하지 않을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고 저 자신도 작업하면서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많은데 나중에 보면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
그의 화법에서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이마에 여러 개의 눈을 그린다는 것이다.
“온몸 자체가 눈이라고 보면 눈입니다. 인간은 눈에 많이 의존을 하는데 눈 두 개를 가지고는 옳게 못 보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대로 보고 제대로 생각하라는 의미로 눈을 여러 개 그려 넣었습니다.”
교사로 일하며 남편을 뒷바라지해 온 아내 박미정 씨, 밴드 ‘안녕의 온도’ 멤버로 활동하는 아들 정상이 씨, 오원배, 강경구 등 동료 화가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중섭미술상을 받은 그에게 수상 소감에 대해 물었다.
“ 작업하는 사람들이 상을 좋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상을 받을 때도 개인적으로 많이 고민했어요. 상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것을 받아도 되나. 그림만 그린 사람이 이런 것을 받는 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