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익갤러리, 11월 26일까지.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 동양화의 전통 기법을 계승하여 현대적인 미감을 발휘하는 이정은 작가가 ‘열매 맺는 계절’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삼청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그동안의 작업을 펼쳐 놓았다. 책, 꽃과 화병, 과일과 장식품 등 일상의 사물들이 놓인 소소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동양화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정은 작가는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이정은 2016년부터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고, 이화익갤러리에서 2년 전 2인 전을 열었었다. 이번엔 단독으로 개인전을 가질 만큼 완성된 작업의 결과물이 쌓인 셈이다.
“매일 일기를 쓰듯이 주변의 사물을 그림으로 옮겼어요. 항상 곁에 두고 보던 책, 아들의 장난감, 소소한 추억이 담긴 소품들을 그림에 그려 넣었습니다. ”
그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들을 차분하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항상 그리고 싶고,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지도 않는다”는 작가는 “그림 그리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쌀 씻고 세수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말한다.
반찬거리를 사는 길에 만나는 햇과일, 꽃시장에서 마주치는 제철 꽃들, 여러 빛깔 모양 화병, 많은 이들의 생각과 삶이 담긴 책들을 놓고 그 모양새를 찬찬히 좇으며 붓질을 쌓아나간다. 그의 작품은 부드럽고 소박하고 편안하다. 그러면서 그 속에 꽉 찬 충만감을 넘어서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원하는 색의 묘사가 나올 때까지 끈기 있게 색과 선을 반복하며 무수히 쌓아 올린 노력과 시간의 결실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그리기에 집중하는 것은 일상에서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걱정거리나 문제에서 잠시 놓여나게 한다. 또한 삶 가운데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충전해 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리기의 의미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작가 노트 중에서)
책장에는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다. 책 사이로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고, 앙증맞은 장난감과 장식품도 보인다. 고양이 두 마리가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에 놓인 화병과 찻잔은 평안함을 더한다. 전통적 책가도를 자신만의 현대적 감각으로 그린 책가도 ‘평화로운 서가’의 경우 완성하는데 한 달 이상 걸린 작품이다.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 속 일들에 집중하는 작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전시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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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기사로 다뤘던 이정은 작가의 개인전 소개 글이다. 이 전시회에 소개된 작가의 작품 중 ‘남천’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자리도 딱 맞게 잡아서 볼 때마다 넉넉하고 편안해서 애장하고 있다. 집에 와서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좋다는 반응을 보이니 더욱 흐뭇하다. 그다음 개인전에 구경하러 갔다가 작가와 반갑게 만났다. 이번엔 작가와 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