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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Oct 23. 2023

인천러가 서울로 이직한다는 것은

내가 선자 씨를 처음 만난 건 이직 면접을 볼 때였다. 회사는 우리나라의 무역을 이끌고, 앞 선 트렌드를 보여주는 삼성역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면접을 보기 전 까지는 태어나서 삼성역을 단 한번 갔었는데, 그 기억조차 희미했다. 아마도 헤어진 전 남자 친구와 '코엑스'를 구경하러 삼성역에 갔었다. 스무 살이었던 나에게 코엑스는 너무나도 넓은 곳이었다. 이 넓은 곳에서 대학생들이 저렴한 음식을 찾으러 헤매다가 길을 헤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지만, 그 당시 나는 정말 코엑스에도 저렴한 음식점이 있을 줄 알았다…. 결국, 만보 넘게 걷다가 우리는 저렴한 식당을 찾기에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팬시한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병든 닭처럼 골골되는 나를 위해 전 남자 친구가 밥을 사주었다.


  이곳을 또 오게 되다니….

  내가 삼성역에 오게 된 이유는, 인천의 정말 말도 안 되는 연봉과 연봉상승률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의 다른 직종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겠으나, 사무직은 인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연봉을 실제로 거의 올려주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연봉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다. 인천러에게 서울이란 거의 부산을 가는 수준이어서 인천을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오죽했으면 인스타그램에서 전설의 인천이란 말이 있겠는가. 이 게시물에 따르면 인천은 전설의 1시간 30분이란다. 강남을 가도 1시간 30분, 수원을 가도 1시간 30분, 부산을 가도 1시간 30분, 제주도를 가도 1시간 30분, 더 소름 돋는 건 인천에서 인천을 가도 1시간 30분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기막힌 교통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코로나 이후 말도 안 되는 물가 상승률과 전혀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 연봉 상승률에 힘입어 인천러가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삼성역의 현란한 전광판들 사이를 걸어, 왠지 아직은 낯선 이 도시로부터 편안한 척 포커페이스를 하고, 면접 장소인 타워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경비원과 안내원. 호텔에 있을 법한 안내원들이 1층에 있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나는 1층 구석에 있는 화장실 표지판을 보고 냅다 달려갔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치고 나는 면접장으로 향하였다. 면접장은 꼭대기 층 30층에 위치해 있는데, 엘리베이터도 4대 이상 있는 것을 보니 여러 회사들이 이 빌딩에 위치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들어가는데 웬 정장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탔다.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이 좁은 공간에 성인 10명 이상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그런 건지 식은땀이 줄줄 새어 나왔다. 30층을 누르려는 순간 그 많던 남자들이 30층을 눌렀다. 순간, 내가 면접 보는 사람인게 티가 날까 봐 눈알이 굴러가면서 여러 생각에 잠길 즘 도착했다.

 "30층입니다."

  30층에 도착하자 우르르 내렸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접견실이 있었다. 외부인은 출입금지라는 안내판과 함께, 코로나로 인해 대면 미팅은 자제해 달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면접보기로 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보기로 한 지원자 유지은입니다."

  "아. 도착했어요? 지금 가겠습니다."

  "네."

  그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그곳에 앉으니 마주편에 앉은 정장 입은 남자가 보였다. 설마 저 남자가 나랑 같이 면접 보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다시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난, 돼도 안 돼도 그만이야라는 생각이었다.

  인천러에겐 머나먼 길이어서 안 돼도 땡큐, 합격하면 연봉 상승으로 땡큐.

  그러면서도 정장 입은 남자가 신경 쓰였다. 나는 으레 경력직답게 정장 따위는 입지 않았다. 화장품 업계는 복장이 자유로운 편인데, 이 남자가 유난하다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합리화하며 나의 복장을 무마하려던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해외팀 팀장 김동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해외팀 팀장 김동수는 우리를 데리고 입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회의실에 데려갔다. 회의실은 면접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수선해 보였다. 책상 옆에는 박스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지만, 널브러져 있었고 어두웠다.

  "이사님이 면접 보실 거예요."

  "네?"

  "이사님이 어차피 결정하는 사안이라 이사님 면접보고, 그 이후에 인사팀 정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영어는 모두 잘하시죠? 간단한 영어 테스트가 있을 거예요."

  순간 해외팀 팀장이라고 하는 김동수가 얄미웠다. 내가 면접 보기 이전에 어떤 것을 준비해 가면 되는지 문의했을 때, 포트폴리오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선자예요."

  왠 검은 사자가 들어온 줄 알았다. 검은색 머리 펌을 하고, 옷은 검은색 블라우스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크 류 베스트를 입었지만 보기에는 촌스러웠다. 목소리는 우렁차서 이 면접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눈은 쌍수가 풀린 건지 약간 올라가 있고, 코는 실리콘을 넣은 건지 오뚝하게 서 있었다. 턱이 뾰족하다 못해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주던 마녀 할머니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지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병욱입니다."

  "어머, 다들 마스크 끼셨네. 다들 벗으세요. 괜찮아요. 저 백신 3차까지 맞았어요."

  잘 못 들은 건가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면접을 피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대면 면접을 시행하고 있는 판국에 이 이사라는 양반은 마스크를 벗으라니. 거기다가 우리는 모두 백신 1차를 맞을 시기에, 본인은 3차까지 맞아서 괜찮다며 벗으라고 했다.

  "정말~ 괜찮아요~! 나 3차까지 맞았어.(윙크)"

  "네.."

  "넵!"

  나는 마스크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어머 근데 지은님, 지은님은 이렇게 입고 왔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안 그래도 캐주얼하게 입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지적하는 선자 씨. 민망함에 웃고 말았다. 성격 급한 선자 씨는 면접을 이어나갔다.

  "병역씨라고 했나?"

  "병욱입니다!"

  "병욱 씨는 포트폴리오가 없네. 따로 준비한 거 없어요?"

  "아. 네, 제가 준비를 해오는지 모르고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에요. 본인 소개 좀 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병욱입니다. 자기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ㅇㅇ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팅과 영업을 하였고, ㅁㅁ회사에서는 동남아 여러 국가 해외출장을 다니며 영업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금은 망했지만 ㅇㅇ회사에서는 남자 화장품을 론칭해 보았고…"

  병욱 씨의 자신감 넘치는 자기소개를 듣고 있자니 정신이 더 멍해졌다. 일단 면접 차림부터 합격이고, 낭랑한 목소리의 자기소개는 누가 봐도 준비된 사람이었다. 에이씨, 망했다. 생각하며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어우, 잘하시네~! 근데 우리는 이커머스가 필요해서. 이커머스 해보셨어요?"

  "아, 제가 관리하는 고객사가 이커머스 쪽이라 직접 운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어깨너머 전반적인 흐름은 익힐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쇼피, 라자다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 해봤어요?"

  "아, 그건 제가 해보지 않았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빠르게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지은 씨. 지은 씨 소개 좀 해주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유지은입니다. 저는 제가 제출 한 포트폴리오 순으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쇼피 필리핀을 직접 오픈한 경험이 있고, 미국 아마존 운영을 해보았습니다. 마케팅적으로는 소셜 SNS 인스타그램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습…"

  "그러니까. 쇼피 운영 다 해보셨다는 거죠?"

  "네."

  "그렇군요. 병역 씨는 아니, 병욱 씨는 우리 해외영업도 사람 뽑는데… 해외영업이 수준이 더 높아. 근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외영업도 좋을 것 같다."

  내 소개를 하는 중간에 말을 자른 선자 씨는 다시 병욱 씨에게 질문을 했다. 마치 해외영업파트가 더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내비치었고, 선자 씨 눈에 병욱 씨가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근데, 지은 씨 무슨 브랜드라고 했죠?"

  "비 비건 이요."

  "비 비건? 난 처음 듣는데. 언노운 브랜드 같은데. 비 비건? 하하."

  "하하하..."

  나의 현직장을 철저히 무시하는 선자 씨 발언에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병욱 씨, 그래서 더 소개해 줄 수 있어요? 잘하는 거 뭐예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던 나는 병욱 씨의 또랑또랑한 발표를 듣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자. 이제 영어 테스트 볼게요. 반가웠어요."

  "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바탕 정신없는 면접이 끝나 자 체격이 큰 남자 한 명이 들어와서 영어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뭔가 선임자 같던 그는 우리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는 연신 관심 없다는 듯 옆 책상에 기대어 우리가 시험을 잘 보고 있는지 감독했다.

  "시험 시간은 30분이고요. 끝나면 제출해 주세요."

  "네."

  "네."

 시험지를 받아보니 별 문제 아니었다. 화장품 사용법이나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늘 하는 번역작업. 번역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여태 번역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 모든 영어 작업은 내가 담당했었다. 하물며 직급의 영문 번역까지도. 당연히 제품 설명 및 사용법 소개도 내 담당이었다. 그러는 탓에 난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10분 만에 시험문제를 푼 나는 옆 병욱 씨가 손도 못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 펜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네. 이거 가지세요. 저는 다 봐서 이제 가려고요."

  "감사합니다!"

  펜을 받고도 한참을 시험지만 바라보던 병욱 씨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면접을 마친 나는 어리숙해 보였던 팀장과 인사를 나누고 M버스를 타러 나왔다. 현란한 전광판이 넘실거리는 이 거리는 나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송도도 나름 도시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 있는 건지…. 역시 인천러가 서울에 취직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인천러는 삼성역이 종점인 2,800원이나 되는 M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후…."

  창 밖으로 수많은 길쭉한 빌딩들을 보면서 가니까 속이 울렁이었다.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다들 어디를 가길래 이 시간에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 건지…. 서울 사람들은 다 오피스룩인 것인가…. 아무래도 나는 인천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마음도 편하고, 가깝고, 그냥 동네 같고….

  오늘 면접을 폭망 했다고 생각하며, 선자 씨 같은 사람과는 일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인사팀 이사가 이렇게 인상이 세서 어떻게 채용을 했던 건지 심심치 않은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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