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글쓰기
할머니는 요즘 연필을 자주 쥐는 것 같다. 지난번에는 컬러링북에 색칠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통화할 때는 스케치북에 찬송가 가사를 베껴 적는다고 했다.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할머니의 무료함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는데 갑자기 나온 필사 이야기에 생기가 돌았다. 내가 물었다.
"그거 쓰니까 좋아?"
"그래 좋다 왜. 글씨도 늘고. 그거 보고 찬송도 부르고. 시간 나는 대로 방에 들어앉았을 때 쪼매씩 쓰는 거지 뭐. 어렸을 때 니 쓰던 공책 한 장 쓰고 건너 쓰고 한 거에 쓰려니까 뒷장을 못써서 안됐었는데(시원찮았는데), 고모가 초등학생 쓰는 스케치북을 사줬잖나. 앞뒤로 쓰니까 좋다 왜." (할머니의 '왜'는 '그래'처럼 습관처럼 붙는 말이다. 그러니까 좋고 좋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고모가 사놓은 스케치북을 벌써 한 권 다 썼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본 할머니의 손은 한복을 만들고 농사를 짓느라 바빴다. 그런데 그 손이 지금은 연필을 쥐고 글씨를 옮겨 적고 있다. 어쩐지 그 손의 재주가 정점을 찍었다가 다시 단순한 일로 돌아온 것 같아 나는 조금 멍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할머니가 글씨를 받아 적는 일로 무료함이 해소된다니 다행이다.
얼마 전 유튜브 캐스터북스 채널을 보고 불렛저널을 써보겠다고 로이텀 노트를 샀다. 올해는 벌써 1분기가 끝나가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위해 (또) 노트를 산 것이다. 유튜브 영상을 다시 재생해 멈춰가며 열심히 불렛저널 세팅을 마쳤다. 연한 형광펜으로 칸을 그리고 목표, 월별 일정, 주간 일정 등을 정리했다. 적어놓고 보면 늘 못다 한 숙제처럼 2,3년 전의 다짐이 굳건하게 올해의 리스트에도 올라와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미뤄둔 숙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눈에 거슬리면 하게 되는 법. 적어놓은 것들 덕분에 이룬 것도 많다.
이렇듯 나의 '쓰기'는 주로 앞으로 해야 할 것들, 계획이 많다. 그에 비해 할머니의 '쓰기'는 명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찬송가를 받아 적어서 뭐 할 거냐고 물으니(이 질문조차 미래지향적이다) 나중에 그거 보고 찬송가를 부를 거라고 한다. 후렴구도 따로 다 표시를 해두셨다고. 그 대답이 아득하게나마 위로가 된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쓰기 중에서도 계획이 있었다. 색이 바랜 벽지에 한 번도 자리가 바뀌지 않은 채 걸려있던 유난히 숫자가 커다란 달력이 기억난다. 그 굵고 큰 숫자 밑에 할머니는 농사 스케줄을 적어놓곤 했다. 씨 숨는 날. 할머니는 '심다'를 '숨다'로 발음했다. 그래서 씨 숨는 날이다. 이외에도 받침을 빼먹거나 소리 나는 대로 쓴 단어와 문장들이 그 달력 위에 여럿 있었다. 연필로 힘주어 눌러쓴 글씨에 어딘가 단호함도 느껴져서 나는 틀린 맞춤법도 모르는 척 감상했다.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쓰는 일이 필요한가 보다. 쓰기는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득 할머니가 필사가 아닌 본인의 이야기를 종이에 쓴 적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직 그러지 않았다면, 다음에는 일기를 써 보시라고 권해봐야겠다. 할머니와 나의 쓰기에 교집합이 생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