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초를 기록한 화가 : 알브레히트 뒤러

프라도 미술관 투어_아담, 이브, 자화상

by rimiya

2011.04 - 2019. 05 스페인 여행 지식 가이드/ 미술관 도슨트 활동, 그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는 글.

완벽하게 남겨진 기억은 아니지만 더 휘발되기 전에 기록합니다.

스페인 미술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여행 투어












독일 최초의 실물 크기 누드



Albrecht Dürer (1471-1528), Adam(좌) Eve(우), 1507, Oil on panel, 209x81cm(each panel)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딱 떠오르는 제목이 있을까요?

힌트는 남녀가 벗은 상태로 사과를 들고 있고, 여인 곁에 뱀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죠. 바로 성경의 아담과 이브를 그렸습니다.


제가 앞서 드린 이 힌트를 사람들은 *도상학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화가들이 아담과 이브를 비롯해서 성경의 인물, 신화 속 인물을 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릴 순 없습니다.

아무리 같은 인물을 그려내도 각자의 화풍에 맞게, 시대에 맞게 바뀌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물건을 갖고 있으면 이것은 누구다!'라는 일종의 약속이 있고 이게 바로 도상학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까만색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 떠오르나요? 우리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자, 이제 도상에 대해 쉽게 이해됐을까요?


그래서 고전 미술을 관람할 땐 성경,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림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한마디로 그림 속 등장인물의 지물을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거죠.

이건 그 시절의 화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완벽하게 고전 지식이 있어야 그림을 제대로 구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화가들은 그림 그리는 재능뿐 아니라 문학, 수학, 과학, 철학, 음악 등 다방면으로 박식해야 했고 모든 분야를 이해해야만 했어요. 그래야 그림을 주문했던 귀족들과 대화가 통했을 것이고,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만능 천재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천재였기에 화가를 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죠.

대표적인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가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 태생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처음엔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받았었지만 이탈리아 베니스로의 두 번의 여행을 통해 르네상스 예술의 비밀을 발견하고 발전시킵니다.


예술기의 암흑기였던 '신 중심' 중세시대의 몰락으로 다시 고대 그리스의 '인간 중심'으로 옮겨온 르네상스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르네상스의 뜻이 바로 재생, 부활을 의미합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또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이상적인 인체 비율을 연구합니다.

뒤러의 연구노트를 보면 신체 비율뿐 아니라 손 마디마디의 비율까지도 꼼꼼하게 그리고 적어놓습니다.


뒤러의 연구 노트 중에서.


뒤러의 연구 노트 중에서.


위의 아담과 이브도 1496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와서 그린 인체의 이상적인 비율에 관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앞의 작품 아담과 이브는 크기가 거의 같은 두 개의 판넬에 각각 따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각 작품마다 서명이 따로 그려져 있어요.

아담은 발 밑의 바닥 오른쪽에 이니셜로.

이브는 나뭇가지에 걸린 종이에 (알브레히트 뒤러, 1507년 이것을 만들었다) 화가의 서명이 각각 따로 그려져(적혀) 있습니다.

따로 그린 그림이지만 나란히 두고 감상하면 아담의 머리가 이브 쪽을 향해 있어서 우리 눈에는 마치 연결된 그림처럼 보입니다.


뒤러의 아담과 이브는 독일 최초의 실물 크기 누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당시 뒤러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남녀의 모습을 그린 것이죠.

아담을 보면 한쪽 발을 살짝 들어 짝다리를 짚고 있습니다. 이를 콘트라포스토 자세라고 부르는데요, 한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자연스럽게 서서 몸에 곡선을 만드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도 지금 잠깐 짝다리 자세를 해볼까요? 한쪽 발이 들리니 자연스럽게 반대편 다리에 힘이 실리게 되죠.

그래서 아담의 왼쪽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간 근육을 표현할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브는 아담보다 더 하얀 피부를 가졌으며 오른손으론 지식의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고 왼손에 든 사과는 뱀과 가까이 들어 결국 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브의 한쪽 발이 다른 발 뒤에 있는 꼬인 자세를 취하며 망설임과 호기심을 동시에 표현했죠.


뒤러의 아담과 이브 이 작품을 미술관에서 유심히 살펴보면 그림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어요.

마치 종이 양쪽 끝을 살짝 말아놓은 모습인데요.

이유는 종이나 천에 그린 게 아닌 떡갈 나무판에 그렸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수축과 팽창으로 인해 휘어진 모습입니다.

작품의 뒷면 _ (왼) 복원 후 (오) 복원 전
(오) 복원 후


휘어짐과 잘못된 복원 방법으로 훼손된 작품은 결국 프라도 미술관의 큰 결심으로 약 2년 동안 복원에 들어갔습니다.

복원 작업은 프라도 미술관과 게티 재단,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협력으로 이뤄졌는데요

2011년 다시 작품을 꺼내어 4개월 동안 그림의 뒷면도 감상할 수 있게 갤러리 중앙에 전시했습니다.

2011년 4월부터 가이드를 했던 저는 실컷 아담과 이브의 복원된 뒷모습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거죠!


네 맞습니다. 이건 자랑하는 겁니다.

(지금은 벽에 붙어 전시가 되어 아쉽게도 뒷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최초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


Self-Portrait, 1498, Oil on panel, 52x41cm



아담과 이브 왼쪽에 웬 남자의 초상화가 있죠?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 화가의 자화상입니다.


뒤러는 최초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프라도 미술관의 뒤러 자화상은 그의 26살의 모습입니다.

그림 속 창가 밑에 독일어로 적힌 서명을 볼 수 있습니다.

"1498, 나는 내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는 26살의 알브레히트 뒤러입니다."


최초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 뒤러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본인의 자화상을 그려내며 높은 자존감을 드러냅니다. 마치 화면 밖의 관객에게 "나는 위대한 예술가다."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입니다.

뒤러의 자화상 (왼) 13살 (중) 22살 (오) 28살



뒤러가 젊은 시절, 아직 독일인들은 화가들을 예술가보다는 그저 장인 즉 생계를 위해 손재주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젊은 화가는 그런 점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항상 자신의 모습을 고귀한 신사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이 그림에서도 그는 풍성한 머릿결, 금으로 수놓은 테두리가 있는 셔츠, 오른쪽 어깨에 걸친 갈색 망토엔 파란색과 흰색의 실크 끈이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지금 뒤러는 방 안에 있는 모습이지만 창 밖의 푸른 들판을 통해 자신은 한정된 공간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영역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존심만 높았던 게 아닌 실력에서 오는 그의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은 눈빛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죠






가끔 저는 제 스스로가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뒤러의 자화상을 떠올려요.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사고, 증명해 보였던 사람.

화가를 그저 손 재주꾼이라고 생각했던 독일 누렘부르크 사람들을 향해 예술가의 가치를 뽐내줬던 사람.

뒤러 덕분에 저는 제 가치를 스스로 낮잡아 보지 않고, 조용히 내공을 쌓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가끔 거울을 보며 안광을 뽐내 보세요. 그리고 조용히 소리를 내어 이야기해보세요.

"나는 내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이 자화상은 영국의 찰스 1세가 먼저 인수했지만 훗날 그가 처형당한 뒤 1651년 매각됩니다.

스페인의 대사 Alonso de Cárdenas가 Don Luis de Haro를 위해 인수했고, 후에 펠리페 4세에게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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