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는 학교 정문 앞에서 5분 넘게 서 있었다.
어제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정문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한참 망설이던 현우는 결국 학교를 빙 둘러 후문으로 등교했다. 전교생이 아름이의 죽음을 알았는지 학교가 어수선했다.
현우가 학교에 들어가자 이미 봄이, 지연이, 민규가 등교해 있었다.
“이현우 왔어? 빨리 와서 앉아 봐. 우리 지금 이야기하는 중이야.”
“무슨 이야기 중이야?”
“아름이 얘기 중. 우리는 아는 게 없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못 해. 빨리 와서 앉아.”
김민규랑 이 봄은 어제 분명히 싸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또 붙어있다. 서로 미운 정이 든 것일까? 나 같으면 이미 말 안 하고 지냈을 텐데. 현우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뭘 빤히 쳐다봐! 싸운 건 어제 싸운 거고! 아름이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내가 그 생각하는지는 알았나 보네. 하여간, 이럴 때는 또 합이 잘 맞아요. 그래, 너희들이 지금까지 이야기해 본 건 어때?”
“우리도 잘 모르겠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곧 봄이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이야기 나눠 본 걸 정리하면 첫째, 아름이가 옥상에서 모르고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둘째, 누군가가 고의로 죽게 했다. 우리가 아는 아름이는 절대 죽음을 생각할 아이는 아니야.”
그 뒤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름이의 죽음은 생각만으로도 먹먹한 일이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분명 무언가 억울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의 태도도 그렇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름이가 없는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있잖아….”
봄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아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건 어때?”
“뭐?”
“아니, 우리가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아름이 덕분이잖아. 뭘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친한 친구인데.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좋은 생각이긴 한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내?”
그때 지연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희 우리 학교에 보석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어?”
“보석? 들어 본 적 없는데?”
“나는 들어 본 적 있어. 선생님께서 전에 얘기하셨잖아. 아멜리아 중학교에는 신기한 보석이 있다고.”
“맞아. 나는 말하는 동상에게 들었어.”
“에이 진짜 있겠냐. 그거 그냥 학교의 전설 아니야?”
“아니야, 진짜라니까. 말하는 동상이 분명 보석에 관해 이야기했어.”
“야, 그 허풍쟁이 동상의 말을 믿냐?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해 준 적도 없잖아.”
봄이와 민규는 보석의 존재에 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은 항상 저런 식이다. 늘 있는 일인 듯 지연이와 현우는 두 사람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고 필통만 뒤적거렸다.
“그래, 그럼 보석이 진짜로 있다고 치자. 그 보석이 어딨는데?”
“글쎄….”
“저… 얘들아, 전에 경비아저씨가 학교 뒷산 창고에 들어가는 걸 봤는데…. 혹시 거기 아닐까?”
“나는 교장 선생님이 창고에서 나오는 것 본 적 있어. 창고를 찾아볼까?”
“진짜 보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진짜 보석이 있다면 말하는 동상이 우리 학교의 보석이 신기한 능력이 있다고 했어. 그 보석을 찾으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어.”
민규가 말했다.
“우리 부모님도 보석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 두 분이 심각하게 보석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더니, 이야기를 멈춘 적이 있어. 그 뒤로 몇 번 물었는데 대답은 안 해줬어.”
“그래? 만일 보석을 찾으면 보석의 힘으로 아름이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학교 로비에 있는 말하는 동상은 종종 보석 이야기를 했다. 아멜리아 중학교가 세워지는데 중요한 보석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보석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이 그 보석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말하는 동상은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뿐 아니라 학교에 늘 붙박이로 있는 동상이면서 자신이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모험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동상의 이야기는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야기할 때마다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지고 막상 질문을 하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동상의 말에 신뢰를 갖지 않은 지 꽤 되었다. 그 때문에 말하는 동상이 이야기했던 학교의 보석 이야기도 믿을 수 없었다. 말하는 동상은 학교의 보석이 정말로 있다고 매번 떠들어댔다.
믿을 수 없는 아름이의 죽음 앞에서 그 허무맹랑하게 들리던 학교의 보석 이야기가 생각난 것이다. 만약 학교의 보석이 진짜 있고, 그 보석을 다 모아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라는 건 아름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아름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연이가 결심한 듯 말했다.
“우리 학교 보석을 찾아보는 건 어때?”
“보석을 찾아보자고?”
“괜찮은 생각인데?”
“나도 보석을 찾아서 아름이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다면 찬성.”
현우와 민규의 마음이 정말 오랜만에 맞았다.
“너랑 나랑 진짜 오랜만에 맞는ㄷ….”
“너랑 나랑 진짜 오랜만에 맞는ㄷ….”
“어, 뭐냐! 너희들 왜 이리 잘 맞아?”
“야! 찌찌뽕이네! 빨리 서로 귀 만지고 소원 빌어!”
“아, 뭐래. 그런 게 어디 있냐.”
“아니야! 진짜 소원 이루어져. 빨리 서로 귀 만져!”
현우는 봄이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안 하면 계속하라고 잔소리할 것 같아서 민규와 서로 귀를 만지고 소원을 빌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소원을 빌려고 하니 간절해졌다.
‘제발,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지금 이 모든 게 꿈이게 해 주세요. 아니면 아무 일 없었던 거처럼 행동할 테니까 다시 아름이가 나타나게 해 주세요. 아름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발이요.’
현우는 평소 믿지 않던 온갖 신들 이름을 불러가면서 정말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뭐야, 안 한다더니. 무슨 소원을 비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려?”
“그런 게 있어.”
“에이 뭐야. 알려줘!”
“소원 빈 거 말하면 안 이뤄져.”
그 모습을 보던 지연이가 갑자기 웃었다. 지연이를 보던 봄이와 민규도 같이 웃기 시작했다. 모두 신나게 웃었다. 고작 하루였는데 정말 오랜만에 듣는 웃음소리 같다. 이제야 옛날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하지만 웃음소리가 평상시보다 작은 것 같다. 아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정말 그랬다.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아이들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보기로 했다. 보석을 찾기 위해서 보석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보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보석에 대해 들은 것이라곤 말하는 동상에게 들은 내용이 다였다. 우선 그 허름한 창고부터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