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모두 학교 교문 앞에서 모였다.
선생님들이 출근도 하기 전, 이른 시간이었다. 아름이의 일기장을 읽고 나니 학교와 선생님들을 믿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들끼리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첫 번째, 위험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기. 두 번째, 배신하지 않기. 세 번째, 비밀 발설하지 않기.
각자 역할도 분담했다. 민규와 봄이는 교무실에 가서 아름이와 관련된 정보를 더 알아보기로 했고, 지연이와 현우는 선생님들의 사물함을 뒤져보기로 했다. 민규는 교무실 문 앞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오는지 망을 보고 봄이는 교무실에 들어갔다. 봄이는 과학 선생님으로 모습을 바꾼 뒤 교무실로 향했다.
보석을 몇 번 사용한 봄이는 이제 보석을 꽤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민규는 과학 선생님으로 변한 봄이를 보며 이제는 과학 선생님을 봐도 봄이라고 착각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의 어색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봄이는 과학 선생님인 척 교무실에 들어가 과학 선생님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물건을 찾는 것처럼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 녹음기가 있었다. 봄이는 주위를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호주머니 안에 녹음기를 챙겨 넣었다. 서랍을 더 뒤졌지만, 그 외에 별것 없었다. 봄이는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지연이와 현우는 수학 선생님의 사물함을 뒤졌다. 수학 선생님의 사물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연이는 그 옆에 있는 한문 선생님의 사물함을 열었다. 한문 선생님의 사물함도 눈에 띄는 건 없었다. 한참을 찾고 있는데 문밖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재빨리 사물함을 닫았다. 선생님의 사물함을 뒤진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것을 찾는 시늉을 했다.
“너희들 거기서 뭘 찾고 있니?”
“어, 안녕하세요? 친구가 곰 인형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같이 찾고 있어요!”
“곰 인형? 교무실에는 없던데. 아, 아까 공터에 곰 인형이 하나 있던데…. 혹시 그건가? 저기 보이는 곰 인형 맞니?”
경비 아저씨가 창문 밖으로 가리킨 곳에는 낡은 곰 인형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맞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가져갔다는 곰 인형이 틀림없었다. 아름이 부모님께 곰 인형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인형을 가지러 갔다.
곰 인형이 좀 이상했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곰 인형 심장 쪽의 털에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었고, 재봉선을 따라 인형의 가슴 부분이 뜯어져 곰 인형 속의 동글동글한 솜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인형의 두 눈은 무언가로 뜯어낸 듯 반쯤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거 아름이 곰 인형 맞는 것 같은데?”
“맞는 것 같아. 발바닥에 S.A.R.이라고 쓰여 있잖아. 아름이의 이니셜 아닐까?”
“근데 곰 인형이 왜 이렇게 되어 있지?”
“그러게. 불에 그을린 자국들은 마법 지팡이로 마법을 사용한 흔적 같아. 곰 인형 안에 뭔가가 있는지 찾았나 봐. 그걸 가져가고 필요 없어서 여기에 버린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다. 마음이 되게 급했나 봐. 내가 마법을 사용해도 이것보다 낫겠다. 이렇게 갖다 드릴 수는 없어.”
지연이가 곰 인형에서 나온 솜을 곰 인형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법을 사용하자 곰 인형은 언제 뜯겼냐는 듯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름이 어머니께 곰 인형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 각자 자신들이 찾은 것들을 들고 다시 모였다.
먼저 봄이가 녹음기를 틀었다. 녹음기 속의 교장 선생님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송아름 학생이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아름이는 제가 입단속시키겠습니다!”
수학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선생님이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네,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송아름 학생이 가져간 … 도 반드시 찾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을 말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름이가 뭘 가져갔다는 걸까? 녹음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치치치칙. 녹음기가 꺼졌다.
“설마… 아름이의 죽음에 교장 선생님도 연관이 있는 거야?”
“도대체 어디까지 연결되어있는 거야?”
“와, 소름. 아, 맞다. 아름이 곰 인형! 민규야, 곰 인형에 손 가져가 봐!”
민규는 한 손에 에메랄드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곰 인형에 손을 가져갔다. 민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집중했다.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 속에서 민규는 아름이가 되었다. 아름이는 곰 인형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하지? 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런데 이 일을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 친구들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그나마 곰 인형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아름이는 곰 인형을 끌어안고 울었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그날, 아름이는 평소처럼 학교 수업을 듣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교무실을 지나가는데 아름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도덕 선생님이 보였다. 도덕 선생님께 인사하려고 교무실에 들어가려고 교무실 문 앞에 서서 자기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옷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이거 잘 부탁해.”
“지금까지 우리 노력의 결실이 농축된 거니까 조심해서 다뤄야 해.”
수학 선생님과 사회 선생님이 대화하며 작고 투명한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유리병 안에는 맑은 물 같은 투명한 액체가 찰랑대고 있었다.
아름이는 그 작고 투명한 유리병을 보는 순간 그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이한영 선생님과 그 남자가 대화할 때도 저것과 똑같이 생긴 작고 투명한 유리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그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아름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학 선생님은 소리가 나는 곳을 보고, 교무실 문 앞에 주저앉은 아름이를 발견했다.
아름이는 실수로 넘어졌다며 억지로 웃으며 수학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평소 명랑한 아름이 모습 그대로였다. 다행히 수학 선생님은 그 자신들의 대화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수학 선생님 책상 위에 투명한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아름이는 수학 선생님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 아름이는 투명한 유리병을 가지고 급하게 교무실을 벗어났다.
여기까지가 곰 인형이 들려준 아름이의 기억이다. 누리가 했던 이야기가 이거였구나.
민규는 곰 인형에게서 손을 뗐다. 아이들은 민규의 기억을 통해 선생님들, 특히 수학 선생님이 아름이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혹시 수학 선생님이 아름이가 그 유리병을 가져간 걸 알게 된 거 아닐까? 그리고 교장 선생님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 그게 학교나 교장 선생님한테 굉장히 중요한 건가 봐.”
“아름이 집에 왔다는 그 선생님이 수학 선생님인 것 같지? 수학 선생님을 좀 더 자세히 조사해야 할 거 같아.”
“곰 인형 가슴이 뜯어진 것도 그 유리병 때문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