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이의 꿈에 아름이가 나왔다. 기뻐야 할 꿈인데 깨고 나니 찜찜했다.
그리웠던 아름이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한달음에 달려가서 아름이를 껴안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름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지연이의 반가움에 비해 아름이는 지연이를 보고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표정 없는 아름이 얼굴을 보자 아름이의 죽음이 새삼 실감 났다. 지연이는 아름이를 더욱더 세게 꼭 껴안았다.
“아름아. 너무 보고 싶었어. 나 보러 내 꿈속에 온 거야?”
아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픈 표정으로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지연이는 아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안개 사이로 한 사람이 희미하게 보였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누구인지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도대체 누구지?’
한참을 쳐다보았다. 안개가 약간 걷혔는지 흐릿하게 그림자가 드러났다. 남자인 것 같았다. 키가 좀 작고, 나이도 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저 사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누구지?
한참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었다. 꿈이다. 그런데 꿈같지 않고 아주 선명했다.
잠에서 깬 지연이는 꿈에 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낯이 익다는 느낌만 있을 뿐.
“너희 혹시 키가 좀 작고, 통통한 체격의 나이가 좀 있는 남자 알아?”
“그런 사람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그 사람이 누군데 아름이와 함께 너의 꿈에 나온 걸까?”
분명히 어디선가 본 사람인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굴까? 지연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아무리 해도 꿈에서 본 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꿈을 꾼 지 이틀이 지났다.
그날 이후 아름이는 지연이의 꿈에 나오지 않았다.
아름이가 꿈에 한 번 더 나와서 궁금한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그 남자의 정체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지연이가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아름이는 꿈에 나오지 않았다.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 지연이는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며 등교하고 있었다.
“지연아! 너 왜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안 해?”
봄이가 지연이의 등을 치며 아는 체했다.
“아, 미안해. 생각 좀 하느라고. 봄이 너 학교에 일찍 오는구나.”
“아, 나 이 봄! 우리 학교 최고의 모범생 아니겠니?”
“어이구. 칭찬을 못 해요.”
봄이와 지연이는 중앙 현관에서 실내화를 갈아신었다. 그때 지연이 눈에 어떤 사람이 들어왔다. 어디서 봤지? 굉장히 낯익었다.
“야, 서지연. 너 무슨 생각해? ㅋㅋ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구나?”
“아니야. 저 사람 어디서 본 거 같아서….”
“누구? 아~ 아까 그 선생님? 3학년 국어 선생님이잖아.”
“그래? 저 선생님 어디서 봤는데…. 생각났다! 내 꿈에 나온 사람이 저 선생님이야!”
지연이가 꿈에서 봤던 그 남자는 3학년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렇다.
꿈에서 아름이가 가리켰던 사람이 3학년 국어 선생님이었다. 2학년인 지연이는 3학년 국어 선생님은 가끔 복도에서만 봐서 기억나지 않은 것이다. 아름이가 3학년 국어 선생님을 가리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연이의 꿈은 조금 특별했다. 예언가인 어머니의 능력을 물려받았는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으면 그 방법을 꿈속에서 찾곤 했다. 이번에도 아름이가 알려준 것이 틀림없다. 확신했다.
3학년 국어 선생님에게 가면 분명 아름이의 죽음과 관련한 답이 있을 것이다. 지연이는 봄이에게 점심시간에 3학년 교무실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3학년 교무실에는 수학 선생님도 있었다. 녹음기의 내용이나 곰 인형을 통해서 본 기억을 생각하면 수학 선생님은 믿을 수 없다. 수학 선생님이 있으면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다. 만일 수학 선생님이 있다면 그냥 교무실을 나오기로 했다.
점심시간 3학년 교무실에 도착했다. 수학 선생님과 국어 선생님이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 중이었다. 지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대화보다 싸우는 것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언성이 꽤 높았다.
“저기요, 국어 선생님. 선생님이 이러는 거 교장 선생님이 알면 어떻게 될까요? 협조 좀 하세요. 조심하시라고요.”
“협조요? 협조 같은 소리 하네. 아멜리아 중학교에서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죄책감 안 들어요? 다시는 그런 일에 협조해달라고 하지 마세요.”
국어 선생님은 문을 '쾅' 하고 닫고 나왔다.
지연이와 봄이는 숨었다가 국어 선생님 몰래 따라갔다. 교무실을 나온 국어 선생님은 교사 휴게실에서 울었다. 왠지 마음이 짠했다. 한참 울던 국어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국어 선생님과 지연이와 봄이의 눈이 마주쳤다. 국어 선생님은 눈물을 닦고 두 사람에게 휴게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너희들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다니 부끄럽구나. 그런데 혹시… 너희들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들은 거니?”
“…네.”
“너희들 아름이랑 단짝 친구였지. 너희도 알고 싶겠구나. 아름이가 왜 그런 일을 겪었는지 설명해줄게. 그 모든 일은 교무실에서 일어났어. 아름이가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말을 들었나 봐.”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건….”
그때 갑자기 휴게실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 휴게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휴게실에 들어온 사람은 담임 선생님인 김혜림 선생님이었다.
“어? 지연이랑 봄이구나.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과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 좀 비켜줄래?”
“네.”
아이들은 머뭇머뭇하며 휴게실을 나왔다. 결국 지연이는 국어 선생님에게 아름이에 대해 들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