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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Jun 15. 2021

불합격 딜레마

Dilemma : 선택해야 하는 길은 고통의 두 갈래

우선 나의 최근 불합격에 대하여 소개한다.

이번 연도 4월 17일에 본 국가직 9급 시험(검찰직) 저기 불합격 보이지?


영어 80, 한국사 80, 형법 80, 형소법 85 그리고 기가막힌 국어 60점이라는 겨우 과락을 면한 최악의 점수로 불합격하였다. 심지어 국어 OMR 잘못 색칠한 건지 시험지 채점과 비교해서 15점은  틀렸는지도 모른다( 홈페이지에서  번이 틀렸는지는  알려주기 때문). 국어를 마지막에  탓인가? 시험감독관의 발소리가 거슬린 탓인가? 그날 아침을  먹어서 그런가? 아니..


이번 공무원 시험 불합격은 내게 아주 소중한 기회를 주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불합격'에 대한 고찰이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유치원 때부터 28살인 지금까지 아주 숱한 불합격을 마주했고 가뭄에 콩 나듯 합격을 받았다. 결과를 마주한 순간의 기쁨과 슬픔은 한 단락이다. 그다음 단락은 결과 너머의 삶이다. 불합격 이후에 내가 과연 굉장히 불행했던가? 합격 이후 엄청난 행복이 지속됐던가?


한국 10대들에게 주어진 최종의 숙제, 대학 입시 때로 기억을 더듬어본다. 5개월간 목포(집)와 광주(입시학원)를 오가며 매월 차비, 식비, 학원비 대략 70만원씩 돈을 투자하고, 매일 밤 12시까지 땀 흘리며 준비하여 간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합격순간은 기뻤고 국립대여서 부모님께 당당하게 효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 인천에 가서 내가 보고 느끼고 먹고 마신 모든 우울은 생애 첫 지옥이었다.


그렇게 자퇴하고서 재수를 준비하였고 실패했다. 이렇게 한 줄로 정리되니까 약간 섭하지만, 수능 성적이 한 줄로 정리될 수준이었다(이상하게 고3 때 받은 성적보다 더 낮았다). 그래서 원래 가려던 대학에 불합격하였다. 이왕 떨어진 거 조용한 신학교에 가자 싶어서 한일장신대학교 NGO학과에 입학했다. 그 학교에 다닌 삶은, 혈관인식으로 출입을 통제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있는 인천대학교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행복했다. 건물은 낡았고 아무도 모르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 대학이었지만,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자치활동 기억은 매번 나를 살게 할 만큼 여전히 값지다.   


입시 이후에 이제 취업 시기로 거슬러 가보자. 이전 글인 <면접장의 철학>은 3년 전, 회사에 입사하기 전 실제로 면접을 본 날 쓴 글이다. 다행히도 합격하여 그 해연도 마지막 면접이었다. 첫 출근의 순간은 짜릿하고 모든 게 완벽할 것만 같은 회사원으로서의 일상이 기다려졌지만, 2년 3개월 뒤 끝내 자진하여 퇴사했다. 귀중한 인연을 만난 동시에, 여러 사람을 잃기도 해서 지금은 회사를 떠올리면 후회에 더 가깝다.  


기분이 더러운 것 빼고는 불합격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생각해보면 역으로 다시, 합격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합격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을 생각한 다음에는 합격을 통해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해야 한다. 고민해놓지 않으면 반복되는 인생의 굴레에서 헛바퀴 치는 햄스터와 비슷한 뇌 상태로 변한다. 왜냐하면 합격을 위해 달려온 그 삶이, 합격 이후 천국 문이 열려 곧바로 Happy Ending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불합격을 받았다고 지옥문이 열려 곧바로 염라대왕을 마주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조언>에서 말한다. 스토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성공 스토리는 어쩌면 합격을 받은 사람이 순간의 벅차오름을 느낀 그 흥분 상태에서 쓴 합격 후기 글, 카메라 앞 가면을 쓴 인터뷰에 불과할지 모른다. 불합격자는 합격자를 부러워하지만 합격자는 곧바로 은퇴자를 부러워하고 은퇴자는 불합격자의 다른 도전 기회를 부러워한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마주해야 하는 건 고통이 존재할 두 갈래뿐, 이것이 피할 수 없는 불합격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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