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메리 Jun 23. 2021

노인과 은행

노인과 바다 말고

2년 전, 계절은 한여름, 시각은 대략 오후 3시쯤. 회사에서 회계 관련 업무를 맡던 나는 보조금어쩌고 카드를 발급받고 통장정리를 하기 위해 은행에 들른 참이었다. 곧 은행이 문을 닫을 시간대라 은행 안은 사람들로 붐볐고 특히나 노인이 많았다. 에? 뭐? 뭐시?를 반복하는 할머니들이 은행원을 잡고 놔주지 않고 있었다. ATM기 앞도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지했다. 한 3분가량 줄을 서다가 끝도 없겠다 싶어서 은행 고유의 푹신한 회색 의자에 앉았다. 휴대폰, 통장, 각종 서류를 의자 옆에 놓고선 천천히 은행 안을 둘러보았다. 25초쯤 응시하자 내가 아주 흥미로운 환경에 접속했음을 알아챘는데, 이곳엔 인간을 괴롭게 하는 모든 원소의 집합이 있다는 거다. 늙음과 숫자, 그리고 인간관계가 그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늙다는 동사다. 그래서 어느 날 거울 속 얼굴에 검버섯이 피었다고 하여 형용사로서 늙은 얼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수 십 년간의 활동에 지친 세포들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특유 냄새를 풍기며 ‘늙다’가 시작한다. 그래서 아기의 달콤한 향기와는 달리 노인에게는 커피 프리마 향 같은 구수한 향이 난다. 노인의 향을 맡고 노인의 손을 바라보고 저 멀리서 은행원과 싸우고 있는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생각이 많이 복잡해진다. 저들이 스스로의 늙음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견뎌내야 했을까. 그리고 머지않아 다가올 내 차례에서 나는, 나의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은 나보다 반세기 정도를 더 먼저 경험한 자다. 그러나 여전히 먹고사는 돈 문제로 은행원과 치열하게 논쟁한다.  돈 문제는 곧 숫자 문제다. 철기시대 이후 시작한 물물교환 체계는 곧 화폐를 발명했고 금융으로 발전하여 우린 이제 모바일 뱅킹 시대에 살고 있다. 계좌 잔액, 적금 총액, 주택청약금액, 대출상환 날짜, 카드 이용금액 모두 숫자다. 이 숫자가 뭐길래, 탄생한 후부터 죽음까지(어쩌면 죽음 후까지) 이 숫자 감옥에서 인간은 해방되지 못할까? 인간은 숫자를 먹을 수 없고 입을 수 없으며 숫자에 기대서 잠을 자지 못 한다. 역으로 이 숫자 없이는 그 어느 것 또한 하지 못한다. 숫자는 형이상학인가 형이하학인가. 뭔진 몰라도은행에 오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매우 다중인격적인 것은 맞다. 1. 았싸 적금이자!(신남) 2. 이제 요만큼 갚았다고?(절망) 3. 저 돈좀 잠시 빌릴ㄹ수…(굽신)


이 은행은 동네에 몇 없는 은행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동네 이웃을 오다가다 만나기 딱 좋은 장소다. 노인들은 서로 다 아는 듯이 인사는 생략한 채 서로에게 질문부터 한다. “뭐 사러 왔디야?”(은행 앞에 뭔가를 내다 파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어디 갔다 온디?” 이후엔 본론을 꺼낸다. 주로 자식 이야기를 포함한 가족 문제, 이웃을 포함한 타인 문제다. 노인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대화 주제가 아닌 대화 형식에 있었는데, 한참을 이야기하다가도 본인 번호표 순서가 뜨면 정말 쿨하게 하던 말 끊고 자리를 떠난다는 점이다. 간다. 다음에 보자. 이런 말은 이 구역에서는 생략한지 오래인 듯 했다. 상대방 또한 대화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휴대폰을 꺼내 큰소리로 다시 누군가와 대화 환승을 시도한다. “응~나여, 밥 잡솼슈?”


늙음, 숫자(돈), 인간관계


과연 내 삶은 이 세 원소의 집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처럼 변종 거미에게 물려 한순간에 몸속 기관이 날로 진보를 거듭한다면, 늙음은 생각지 않아도  날이 올까? 나만의 농촌진흥운동을 내세우며 온갖 금융을 거부한  오직 대지열매와 각종 곡식만을 주워먹는다면, 자급자족 라이프를 이룰  있을까? 또는 모든  내던지고 폭풍의 언덕으로  함께 노년을 보낼 만한 운명적 사랑을 발견한다면, 후회 없을 가족 구성원을 꾸릴  있을까?


내 미래를 무조건 밝을 것이라고, 또는 늘 지루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삶이 이 은행 안에 있는 노인들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비껴나갈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하겠다. 한나 아렌트는 생에 마지막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은 삶을 단조롭게 만드는 일상의 리듬(굴레라고도 표현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말했다. 내가 묻고 싶다. 한나, 가슴에 손을 얹고 늙는 것, 돈 걱정, 인간관계 걱정, 이 굴레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난 적, 당신은 있어?


이 어찌할 수 없는 생명력을 지닌 채 노인과 은행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슬프겠지만, 내 미래가 지금 ATM기 앞에서 대략 25분간 기계를 두더지 잡기 게임하듯 두드리고 있는데 내가 과연 반세기를 못 버틸 이유가 뭘까 싶다. 어쨌든 40분 만에 내 번호표 숫자가 뜨자 뇌를 스톱시키고서 은행 업무를 마쳤으며 회사를 향해 차를 돌려 그렇게 다시 굴레 속으로 들어간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불합격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