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카르마에 대하여
가려운 피부를 긁는다.
긁힌 피부를 바라본다.
긁히고 아무는 피부
끊임없이 긁히고 아무는 피부
수분이 다 빠져 건조해진 피부를 습관처럼 긁는다. 상처 난 피부에 새살이 돋으면 다시 상처를 낸다.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상처와 재생은 무한히 반복된다.
끝도 없는 재생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나에게는 그저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은 대가로 내려지는 형벌인 것만 같다.
기어이 올려 놓은 돌이 다시 떨어지는 것처럼. 다시 상처를 내기 위해 새살은 계속해서 돋아났다.
무기력하다.
무의미하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다.
[번외]
카르마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직 완전히 이 개념을 이해하진 못했으나 주위에서 설명해주길,
‘전생에 지은 죄를 씻기 위해 지금의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아토피가 과거도 아닌 전생에 내가 행한 어떠한 행동에 대한 대가로 겪는 벌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업보라는 것이다. 인과응보..
안 그래도 부끄러운 내 삶이 얼마나 더 비참하고 수치스러워져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 말은 나를 두 번 죽이는 말이었다.
나는, 그 개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 명상을 하는 또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카르마'라는 단어가 다시 화제로 올랐다.
나는 말했다.
“이 개념이 너무 싫어요. 이게 ‘벌’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그러자 그 분은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개념을 좀 더 다르게 이해하게 될 거예요.”
그 후로 또 3-4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카르마를 다시 네이버에 검색해보았다.
카르마 ([산스크리트어]karma)
1. 명사 전세(前世)에 지은 소행 때문에 현세에서 받는 응보(應報). 음역어는 ‘갈마2(羯磨)’이다. (=업2)
2. 명사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음역어는 ‘갈마2(羯磨)’이다. (=업2)
카르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쌓이고 있다고 한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 매 순간마다.
가령 지금 가려운 부위를 긁으면 순간적으로 시원함(카타르시스)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 뒤에는 따가움, 화끈거림, 고통이 찾아온다.
내가 저지른 행동,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
인과응보.
(물론 예시가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러나 그 이상, 시공간을 초월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여전히 이 질병을 통한 고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전생, 윤회.
나는 종교가 없으니..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종교를 떠나서 생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관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주는 넓으니 내가 모르는 어떤 세계가 정말로 존재할지도 모르고.
다만, 나의 사례처럼 만약 또 누군가가,
모든 약자, 환자, 인간보다 하위 단계라고 믿는 동물들, 불운을 겪은 이들이
어떠한 인과관계(카르마)에 의해 받아 마땅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굳게 믿는 이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시간이 지나면’ 카르마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될거라는 그 분의 말씀대로
카르마의 진짜 의미가 이와 다르고, 그것이 납득이 되는 날이 오면,
어설프게 전달되어 상처 받은 시간에 대한 보상이 조금은 되지 않을까.
그 사이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