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by hyesae

또 누군가의 소개로 유명한 병원을 찾아갔다.

긁은 흔적을 의사에게 보여준다.

의사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한다.

“커서 화장을 못할 수도 있겠군요.”

화장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서럽게 울었다.


-


긁어 얼룩덜룩해진 피부를, 직접 옷을 걷어 보여주는 일은 그 상대가 아무리 의사여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질병으로 야기되는 가려움이라 해도, 어쨌든 그것을 참지 못하고, 내가, 내 손으로, 내 몸을 긁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보여주는 결과물은 나의 실수 그 자체인 것만 같아 부끄럽다.

옷을 걷어 드러난 상처는 사진으로 찍히고 그 사진은 컴퓨터 화면에 크게 띄워진다. 나는 옷을 내리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

화면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의사 선생님도 있고, 덤덤히 마주하는 의사 선생님도 있고, ‘어우 이거 너무 심한데요?’라고 말하며 어떤 처방을 내리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는 의사 선생님도 있다.

누가 되었든, 나에게 돌아오는 건,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하는 약, 대용량 로션, 노란색 통에 평평하게 채워져 있는 연고다.

병원에서는 매번 새롭고 더 발전된 연고를 제안한다.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말하기엔, 내 몸이 형편없다. 그렇게 받아온 길고 복잡한 이름의 값비싼 로션과 연고들. 분명 더 좋은 약이었겠지만, 그때는 전혀 체감되지 않았다.


‘아토피’라는 병명을 쓴 건 중학교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그냥 알레르기라고 불렀다.

좁은 내 세상에서는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실제로 아토피 환자가 지금보다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모두 신기해했다. 상처를 보고 왜 이런 건지 묻는 사람이 많았다.

하나의 사례로, 병원 갔다가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낯선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은 적이 있다. ‘이거 왜 이런 거예요?’ 1990년대라 가능했던 일이다.

그때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대답은 또 했다. ’알레르기예요.‘

돌아오는 말은 ‘아’ … . 대부분 대화의 마지막 말은 ‘아..’인데, ‘아’ 뒤에 이어지는 여운은 못 견디게 힘들다.


그렇게 병명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나는 여기저기 증상을 보여주며 치료를 받다가, 14살 즈음, 한의원 치료를 본격적으로 받게 된다. 그때 설명으로는 ‘체질을 한 번 뒤집어엎어보자(바꿔보자)’는 것이었는데, 치료 시 초기 증상은 소위 온몸의 ‘독’이 한 번에 쫙! 뿜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점차 가라앉으면서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기대를 안고 학교 마치면 병원으로 곧장 가서 얼굴과 손, 발에 침을 맞았다. 뼈와 가까운 곳에 침을 놓으면 정말 아팠는데, 심지어 한 번에 ‘톡’ 놓는 것이 아니라, 침을 천천히 돌려서 넣었다. 한의원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매번 갈 때마다 진짜 잘 참는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소심해서 소리 한 번 못 지른 것뿐이었는데, 칭찬을 계속 들으니 나중에는 뭔가 대단한 걸 해내는 것 마냥 열심히 아픔을 참았다.


치료 과정에서 나는 정말로 온몸이 빨갛게 물들었다. 온통 빨개진 얼굴로 중학교 학생증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 사진을 목에 걸고 3년 내리 학교를 다녀야 했다.

뒤집어엎었으니 이제 가라앉는 일만 남아야 하는데, 슬프게도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바꿨고, 그다음 간 병원에서 나는 ‘커서 화장을 못할 수도 있겠네요’라는 의사의 말을 들어버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굳이 그 단어를 말해야 했을까 싶다.

그 시절 나에게 ‘화장’은 여성을 상징하는 어떤 것이었던 것 같다. 마치 너는 커서 여자가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처럼,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엄마, 아빠 사이에 앉아 서럽게 울었다.


그 이후로 지금도, 어제도 병원을 다녀왔지만, 이제는 잠깐의 가려움을 해결하는 용도로 갈 뿐이다.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완치라는 것이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나를 스쳐 간 숱한 병원들, 옷을 걷어 올려 상처를 내보였던 수많은 순간들. 여긴 진짜 유명하다고_이번엔 진짜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여러 번의 기대와 이어지는 실망.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내 몸에 박혀 착색되었다.

그러니 그저 수치로만 여기지 않길. 내가 했던 수많은 노력의 흔적이라고 생각해 주길.


그러니까 결국 이런 끔찍한 기억들을 들추어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는 것.’ 이것 하나고,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커서 화장을 못할 수도 있겠군요>, Oil on canvas,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