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 4.
ep 1.
그림을 시작하고 6년 차에 접어들었을 즈음, 나는 펜화에서 페인팅(회화)으로 넘어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다.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그림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유독 고전 회화 화풍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카라바조의 그림은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게 했다. 이상적일 정도로 부드러운 살결 표현이 너무나 근사했고, 그들처럼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하얀 피부를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마침 노트폴리오에서 정중원 작가의 아크릴 페인팅 클래스가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바로 등록해 수업을 듣기도 했다.
(정중원 작가는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을 그린다. 민음사 디 에센셜 시리즈 표지에 들어가는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부드러운 살결을 표현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캔버스에 몸을 바짝 붙이고 붓을 조심스럽게 다뤄가며 덧칠을 거듭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조금의 잡티도 허락하지 않았다. 물감은 컨실러가 되어 피부를 매끈하게 가다듬어나갔다.
그렇게, 주제와 상관없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인 것처럼, 흰 살결에 매료되어 여러 작품을 완성했다.
ep 2.
그 후 2-3년이 지났고, 나는 '고유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나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 말고, <나만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것>을 가지고 싶다. '근데 내 것이 뭐지? 내가 그리면 다 내 것인가?'
'나의 고유성은 무엇일까?' 등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질문들을 매일 같이 쏟아내고 반복했다.
책상을 보니 다양한 재료,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제각각으로 펼쳐져 있었다. 빨리 한 방향을 정해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그래서 7월 여름, 작업실을 오픈해 사람을 초대하고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들을 종류별로 파일링하고, 몇몇 캔버스 작품들을 벽에 걸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8월, 오픈 스튜디오가 시작되었다.
예약한 손님들이 하나둘 작업실을 방문했다. 질문이 오면 답을 했고, 칭찬을 받으면 쑥스러워했고, 응원을 해주면 눈물이 콸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던져주고 간 귀하고 소중한 질문과 피드백을 열심히 수확했다. 오픈스튜디오는 다음 작업에 큰 동기부여를 주었고, 제각각 다른 그림들도 소중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픈 스튜디오가 끝나고 모든 반응들이 양분이 되어 몸으로 흡수되고 있을 즈음, 도저히 흡수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굳이 고전회화 화풍을 선택했나요?'
질문을 받았을 때 분명 대답을 잘했음에도, 계속해서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치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밀며,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주시죠!' 하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그래, 다시 답을 해보자.
근데 사실 거창한 거 없고, 그냥 그 느낌이 좋아서 그런 거지 뭐.
우아하고 고풍스럽고 부드럽고.. 이상적인 인간 또는 신의 표현에서 오는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움, 경이로움 !
그래, 그래서! 그런데,
이미 지나간 과거의 화풍을 굳이 지금 다시 현대에 가져와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작품에 할애하는 시간도 너무 길고, 그럴 만큼 가치 있는 작업인가?
이 작업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에게
어떤 의미..
ep 3.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내가 피부에 유독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실은 곧바로 아토피와 이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토피가 그림의 주제 선상에 떠올랐다.
그전까지 그림과 아토피는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었다.
그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고, 아토피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 둘은 절대 연결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둘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겼다. 철커덕하고 걸렸다.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고운 피부-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평생 가지지 못할 테니까.
아름답고 부드러운 피부를.
그렇게 해서라도 가지고 싶었나 보다.
왜 그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까.
결론적으로, 나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나의 고유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고유성은 '아토피'에 기반한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답이 왜 하필 아토피여야 하는지, 그게 왜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부분인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토피를 빼놓고는 나를 설명할 길이 없다.
5년 내도록 섬세하고 가느다란 펜 선으로 아름다운 여자들을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붓으로 한 땀 한 땀 부드러운 살결을 표현해도 그 근원엔 얼룩덜룩하고 꺼끌꺼끌한 내가 있다.
굳이 내가 끄집어내지 않아도, 긴 옷으로 상처를 가리고, 숨기고 또 숨겨도, 기어이 파고 들어가면 그 근원지는 모두 아토피다.
지독하게 틈틈이 그 기억들로 파생된 내가 떠오른다. 악취처럼 새어 나온다.
나의 과거는 도저히 펼쳐 보고 싶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데, 그 기억들이 쌓여서 결국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ep 4.
한 번은, 인생에서 딱 한 번은 반드시 이 이야기를 그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다시는 펼쳐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딱 한 번이니까.
이건 그냥 해야만 하는,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밀린 숙제 같은 거였다.
이 문을 열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렸다.
2022년 12월, 작은 드로잉을 시작으로 천천히 그려나갔다.
부모님께 이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많이 슬퍼했다.
나 또한 그리는 내내 좋았다가 슬펐다가 했다.
그래도 계속 그렸다.
브런치북 <긁고 있는 모든 시간>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그린 그림과 그리는 동안 머리에 맴돌던 여러 생각들을 모은 기록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