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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Feb 08. 2023

특별한 호캉스

# 1 나는 계획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가 폰에 찍힌다. '누구지?'


"여보세요"

"아 네, 000 님 보호자이시죠?"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는 00 병원 수간호사 000입니다. 오늘 혹시 몇 시쯤 오시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습니다."


"글쎄요, 몇 시쯤 가야 되나요?"

'12시쯤 출발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이른가?'

순간 호텔 체크인 시간이 보통 오후 3시 이후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아 네, 오늘 '집밥데이'라서요, 혹시 오전 중에 오시면 함께 식사할까 해서 여쭤보려고 전화드린 거예요."


'??? 집밥데이는 뭐고, 식사를 같이 하자는 건 뭐지?'


혹시 스팸 전화가 아닐까 싶은 수간호사의 밝은 목소리와 이해하기 힘든 질문에

"10시쯤 갈게요" 성의 없이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조심해서 오세요. 있다 봬요" 

호스피스 병동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는 뭐고, 같이 식사하자는 거는 뭐고, 기다린다는 건 뭔지.

'나 지금 점심 초대받은 거지?' 뭔가 이해는 안 되지만 우선 짐이나 싸자.


몇 주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지난 일주일은 거의 자지 못했다. 그래도 입실해서 안정시켜 드리는 것까지만 하면 되니까, 어려운 건 거의 다 끝났다. 조금만 참고 힘을 내보자...




양쪽으로 열리는 유리문 앞에서 인터폰으로 '도착했음'을 알리자 퉁퉁하고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작은 눈의 수간호사와 이쁘장하고 세련된 어린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자 이제 들어갈까요?"

어느 특급 호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진심이 담긴 미소로 극하게 우리를 '환영'하는 직원들,


밝은 우드톤의 인테리어, 책꽂이에 빽빽한 신간 소설,

그리고 고급진 커피머신과 그것에 맞는 알록달록한 캡슐, 각종 차 종류가 선반 위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예쁜 여대생들만 모여 살 것 같은 하숙집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방 안내해 드릴게요."


해가 잘 드는 넓은 방이다. 원래는 4인실이었던 방을 2인실로 쓰고 있다고 한다.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간호사들과 사회 복지사가 아빠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


"귀가 안 들리세요. 여기 노트와 매직펜으로 써서 소통하시면 돼요."

간호사들에게 글씨를 크게 또박 또박 써서 보여드리라고 부탁을 했다.


'아빠, 여기 어떠세요? 환하고 좋지요? 저는 일요일에 출국하구요, 간병인 아주머니는 토요일 저녁에 오시기로 했어요. 잘 지내실 수 있죠? 필요하시면 저희들에게 카톡 하세요.'


노트에 쓴 내 글을 보고 아빠는 고개만 끄덕끄덕 하시곤 산소 호흡기를 끼우자마자 편한 얼굴로 잠이 드셨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힘이 많이 드셨던 모양이다.




"오늘 집밥 데이 메뉴는 초계탕입니다."

수간호사가 큰 그릇에 초계국수와 끓인 닭날개를 가득 담아 내왔다.

"한 달에 한번 '집밥 데이'라 해서 특별 메뉴를 준비하는데 오늘이 마침 '집밥 데이'라 오전에 전화드렸었어요. 같이 식사하시면 좋을 거 같애서요."

"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와 아빠가 왜 여기에 와서 큰 그릇에 담긴 국수를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인원에 포함되었는지,

그리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먹는 게' 바깥세상 사람들만큼 그렇게 중요한 건지.


3인분은 될만한 양의 국수를 간이침대 끝에 걸터앉아서 혼자 먹기 시작했다.

아빠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떠나야 한다는 복잡한 마음에 속상했지만 의외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 위안이 되어 큰 유리그릇에 담긴 음식을 휘저으며 젓가락에 건져지는 대로 깨작거리고 있는데 앞에 환자와 보호자는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 놓고 막장 드라마의 여배우 소리보다 더 크게 국수를 후루룩 쩝쩝 먹고 있다.

지독한 마늘 냄새가 풍기는 냉장고를 열어 집에서 가져온 듯한 반찬까지 꺼내 곁들여 먹는다.

여기에서 지낸 지 오래되었는지 냉장고는 이 사람들의 음식과 반찬으로 꽉 차 있었다.




" 아버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언제 출국하신다고 했죠? "

" 일요일에요."

" 아, 그래요? 간병인 분이 오시는 것보다는 가족분이 곁에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출국도 미루실 수 있으면...."

" 출국을 미뤄야 한다면 얼마나... 미뤄야 할까요?"

담당의는 조심스렇게 말을 이어갔다.

" 생명은 하늘에 계신 분이 주관하시는 거니까 제가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낼모레 출국했다가 아버지 임종을 못 보시게 될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내가 계획하지 않은 호캉스가 시작되었다. 스피스 바캉스, Hospice Va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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