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외할머니께서 70이 되셨던 때로 기억한다.
"다음 달이 윤달이니까, 이번에는 장만해야지."
"봐 두신 거 있으세요?"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의 알 수 없는 대화에 무관심한 척하며 귀를 기울였다.
외할머니께서 가방 안에 들어 있던 꼬깃한 전단지를 펴서 엄마에게 보여 주시는 데 그 안에는 열 살인 내가 처음 보는 옷가지 사진이 들어 있었다. 평소에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하시는 외할머니 스타일 옷이 아니었다.
뭔가 쐐한 분위기의 옷이 어린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외할머니 옆에 붙어서 전단지를 들여다보는 걸 본 엄마는
'얘! 네 방에 가서 공부해.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지 말고." 하며 나를 안방에서 쫓아 냈다.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낮에 본 전단지가 생각나서 옆에 누우신 외할머니께 몸을 돌려 바짝 붙어서 여쭤 보았다.
"할머니. 아까 그 옷 뭐예요?"
"뭐. 수의? 천국 갈 때 입는 옷."
"천국 갈 때는 특별한 옷을 입어야 돼요?"
"응. 여기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갈 순 없잖니.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야지."
"천국이 극락이에요?"
"응. 비슷한 거야."
불교를 믿으시던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장례식장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극락왕생'이 생각나서 여쭤 보았다.
"그럼 우리 친할머니도 그 옷을 입고 극락에 가셨나?"
"그렇지, 여기를 떠날 때는 모두 옷을 갈아입고 가야 되는 거야."
" 할머니, 그런데 왜 지금 '그 옷'을 사시려고 해요? 안 예쁘던데... 그리고 겨울에는 그것만 입으면 추울 거 같아요."
" 죽은 사람이 옷을 어떻게 산다니? 그러니까 미리 사두는 거지. 그리고 윤달에 수의를 마련하면 무병 장수 한단다. 자손들도 잘 되고."
" 할머니는 가톨릭이신데, 그런 걸 믿으세요?"
" 뭐 꼭 믿는다기 보다는 윤달 가까우면 수의 파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띄기도 하고,
내 친구들도 이번에 마련한다고 하기도 하고."
" 할머니, 오래 살고 싶으세요?"
" 안 아프고 오래 살아야지, 오래만 살면 뭐 하겠니? "
" 할머니,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돼요?"
" 하늘로 가지. 하느님 하고 하늘에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 우리 다 결국 '하늘나라'로 갈 텐데 왜 '열심히' 살아야 돼요? 그냥 재밌고 행복하게 살면 안 돼요?"
"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그래도 얼마나 좋은 세상이니. '열심히 살아 볼 기회'가 있다는 게,
우리 세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지, 젊어서 6.25 겪었지,
언제 폭탄이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세상을 살았으니. 다들 고생 많았지.
그래도 나는 오래 살아서 이렇게 좋은 세상 살아보는구나. 얼마나 감사하니. "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사춘기가 되면서 나의 예민함은 '히스테리'가 되었다.
사춘기의 신체적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벅찼지만 내 머릿속에는 늘 '삶과 죽음'이라는 풀지 못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어서 다른 걸 하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학교 생활은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늘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끔 너무 못 참겠을 땐 엄마에게 묻곤 했다.
" 엄마, 엄마는 왜 살아? "
" 너희들 키우려고 살지."
" 그럼, 우리는 왜 낳았어? 살아갈 목적이 필요해서? "
" 아니, 그냥 너희들이 생겨서."
" 그럼, 아무 생각 없이 애를 낳았다는 거야? 책임감 없이?"
" 그땐 그랬어. 애가 생기면 낳는 거고, 그러면 키우는 거고. 그러다 또 애가 생기면 낳고 키우고."
" 아무 생각 없었던 거네. "
"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 너희들 얻었잖아."
친구들과 수다 떨며 아무 생각 없이 놀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왜 다들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목표물이 있는 것처럼 왜 다들 앞으로 향해 뛸까. 거기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는데 '
친구들에게 " 얘들아, 너희들은 왜 살아? " 하고 물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친구들의 나이만큼 어리고 단순했다.
" 너 뭔 일 있어? 엄마하고 싸웠어? "
" 떡볶이 먹을라고 살지. ㅋㅋ. OOO 선생님 보려고 살아. "
" 넌 뭔 이상한 얘기를 해. 할머니냐? "
아무에게도 수긍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가게 됐다.
춤추고 술 마시고 비틀거리고 괜찮은 사람과 연애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는 게 그 나이에 마땅히 해야 하는 걸로 알고 분위기에 휩쓸려 지냈다.
대학 신입생들과 몇몇 선배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대학에 와서 하고 싶었던 게 뭐냐'라고 묻는 선배들에게
" 저는 늘 '삶과 죽음'에 궁금한 게 많았어요. 그런데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엄마도 할머니도 친구들도 '아무도' 답을 모른 채 그냥 사는 거 같아요. 궁금해하지도 않고.
엄마한테 혼도 많이 났었어요.
남들은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혼자 엉뚱한 생각 하면서 허송세월 보낸다고요. 그런 게 왜 궁금하냬요?
저는 남들도 다 궁금한 줄 알았거든요. 대학 와서 시간이 있으니까 찾아보려고요. '답'. "
몇 초간 적막이 흘렀다.
한 선배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 야, 너 왜 답을 못 찾은 줄 알아? 답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못 찾았지.
엄마도 답을 모르는 데 자꾸 물어보니까 얼마나 짜증이 나셨겠니. 그러니까 혼나지."
하며 나를 향해하는 말에 일부는 자지러지게 웃고, 일부는 ' 우리 과에 뭔 또라이가 왔구나. ' 하는 눈 빛으로 보기도 하고, 그러다 다들 자기 하고 있던 거 하며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아무 생각 없는 듯 술 취한 선배의 말이 맞았다.
' 그렇지!!! 답을 찾으려면 답을 아는 곳에서 구해야지. 연세 많은 할머니라고,
뭐든 척척 대답해 주던 엄마라고 답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그럼 그 답은 어디에서 찾아야 될까'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호스피스 병동은 면회가 전면 금지되어 있었다.
방문객이 들어올 수도 환자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유리문을 통과해 나갈 수도 없었다.
보호자를 교대하는 것도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꼼짝없이 이 안에 갇혀 버렸다.
" 어머, 어떡해.", " 언니도 그렇지만 형부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
몸이 불편한 언니, 새로 일을 시작한 동생, 어린아이 셋이 딸린 워킹맘 막내보다는 딸린 거 없는 백수인 내가 여기에 갇혀있기에 '적임자'이긴 하다. 그래도 장기간을 염두하고 온 여행이 아니라 집이 걱정되기도 하고 이 안에서 과연 폐소공포증과 공황의 전력이 있는 내가 잘 갇혀 지낼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 그래도 모르는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아빠 곁에 있는 게 마음은 편할 거 같아."
" 그래두. 언니 미안해. 어쩌지?"
"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어. 할 수 없지. 내가 너무 힘들어지면 연락할게.
그동안 읽고 싶었던 한국소설이나 실컷 읽으려고.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나 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