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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Feb 10. 2023

특별한 호캉스

# 3 고통완화, 슬픔완화, 불안한 것도 화나는 것도 모두 완화..

사회복지사와 작은 테이블이 놓인 작은 방에  마주 앉았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아버지 성격이나 좋아하셨던 것, 하셨던 일,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나시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아빠요? 아빠는 3개월 전에 소세포 폐암 4기 판정을 받으셨구요. 평소에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목이 답답하다 하시더니 쉰 목소리가 나다가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서 정밀검사를 했는데, 폐암 말기에 이미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된 상태였어요. 항암 치료 3번 받으셨어요. 심장에 무리가 와서 더 이상 치료를 못 받으시게 됐어요."

나는 병원 의사와 상담하듯 아빠의 최근 병력을 생각나는 대로 읊어대기 시작했다. 

질문과 다른 엉뚱한 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 뇌에서 입으로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셨고, 활동적이셨구요. 평생 공직에 계시다 정년 퇴직 하셨어요. 담배는 많이 피우셨지만 술은 안 드셨어요. 도박이나 게임 같은 것도 안하셨구. 처자식 먹이고 뒷바라지하는 것에 충실하셨던 것 같애요. 성실한 아버지셨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하고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셨구요."


투명한 피부에 깔끔한 스타일의 사회 복지사는 나이가 많아야 30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게 아빠 치료에 도움이 되나요?"

이 젊은 친구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왜 이런 걸 묻고 답하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 물었다.


사회 복지사가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보호자님. 이곳은 완화 의료 기관입니다."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말기암 환자의 남은 여생과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도록 도와드리는 곳입니다. 저희들은 환자와 가족분들의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는 총체적인 돌봄을 하고 있습니다. "


'그래, 여기는 치료하거나 받는 곳이 아니지.' 완화기관 : 고통완화, 슬픔완화, 불안한 것도 화나는 것도 완화..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떠셨나요?"

"엄마요? 돌아가신 지 벌써 25년 지났네요."

"아, 그럼 그 후로 계속 혼자 생활하셨나요?"

"아뇨, 재혼하신 지 20년 정도 되었어요."

"그럼 새어머니 분은 이 모든 상황을 잘 받아들이시고 계신지, 많이 힘들어하시나요?"

"글쎄요.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 그런지, 그러려니 하시는 거 같애요."


"사실 이런 상황을 가장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배우자 분들이세요. 젊은 부부들도 그렇지만 연세 많은 부부들도 한쪽 배우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사망하시는 경우 그 슬픔과 아픔을 가장 못 견뎌하세요. 자식들은 배우자 분들에 비하면 오히려 '슬픔'을  빨리 극복하는 편이에요."


"그건 '보통' 그렇다는 거고, '그분' 같은 경우는 좀 틀려요.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독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환자실에 계실 때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신 후에도  '당신'은 뒤로 물러나 관망만 하길 원하세요. 죽어가는 남편보다는 당신의 일상이 중요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환자의 배우자' 혹은 '어머님'이라 지칭하시는 분을 병원에서도 자꾸 안 찾으시면 좋겠어요. 저도 아빠가 임종기 접어들었으니 오셔서 함께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씀드렸었는데 당신은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안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내가 Father's Wife라 부르는 '새엄마'에게 화가 나있던 터라 단단히 못을 박듯 말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간호사, 의사, 복지사가 계속해서 '환자 분 배우자'를 찾을 테니.

"그분에 대해 묻지도 찾지도 마세요! 그쪽으로는 신경 안 써주셔도 돼요."




병실로 와보니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주무신다.

산소 호흡기가 조금만 빠져도 숨 쉬기 힘들어하시지만 그 외엔 누구를 찾지도 필요한 걸 달라고 하지도 않으신다. 이곳에 오시니 많이 편하신 가 보다. 마음도 몸도.

모든 걸 다 내려놓으신 듯한 표정으로 쌕쌕 소리를 내며 편한 얼굴로 주무시다 꿈을 꾸시는지 손을 허우적거리다 찡그리다 미소를 지으시기도 한다. 신생아를 들여다보듯 아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빠가 귀가 안 들리시니 다행이야. 밤낮으로 얼마나 시끄러운지 민폐야. 그것만 빼면 지낼 만 해. 저 사람들 뭔지 모르겠어. 불륜도 부부도 아닌 거 같은 데. 남매 같기도 하고. 그런데 호칭이 '최사장님', '여사님' 이런 거 보면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자매들에게 이곳 상황을 '카톡'에 올리며, 앞의 민폐 환자와 보호자에 대해서도 전했다.


"암 말기환자의 몸이 아니야. 우량아 같애. 나이는 60쯤 되어 보이는데. 사래 들어서 먹다가 '쾍쾍'거리고 가래를 수십 번 뱉어.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먹어. 밤에 자다가도 배고프다고 보호자를 계속 깨우네."

"그러면 보호자는 환자한테 지금 밤이라고, 빨리 자라고 소리 지르면서 혼 내. 좀 자는 척하다 또 그러고 반복이야. 보호자가 참다못해 등짝인지 허벅지인지를 한 대 후려갈기면 포기하고 자. 다행히 아빠는 못 들으시니까 잘 주무셔. 어쩌다 산소호흡기가 빠지면 숨쉬기 힘드셔서 깨시는 거 외엔."


인정 많은 동생은

"그 사람은 그게 병인가 보다. 먹는 병.. 불쌍하다.." 한다.




커튼을 휙 돌려서 우리 쪽 침대와 소파를 가리고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삶의 끝에 내몰린 위태로운 청년이 호스피스 병원에서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힐링 드라마

라는데... '그래, 얼마나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의 실상을 잘 반영했나 보자.'

드라마 내용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를 보듯 '실제와의 GAP', '에러'를 찾아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긴 소파에 누워서 폰의 작은 화면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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