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만나고 싶었던 작가

헤밍웨이

by 리나

누군가 나에게 '유명인 중 꼭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헤밍웨이'라고 답할 거다.

물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한 작가를 만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헤밍웨이를 만난다면 듣고 싶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밤이 새는지 모를 거다. 왠지 나와 꿍짝꿍짝 취향이 잘 맞을 거 같다.

헤밍웨이는 친구로, 작가로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만약 내가 1,2차 대전을 겪은 그와 같은 세대의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처럼 살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기도 하는 그런 인물이다.


어렸을 때는 헤밍웨이를 필독서로 읽어야 하는 소설의 작가 정도로 밖엔 여기지 않았지만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그의 삶의 흔적을 마주치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작가이다.




처음 그를 만난 곳은 20년 전에 여행 갔었던 'Key West, Florida'에서다.

그가 두 번째 아내인 폴린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Key West 집을 방문했을 때 가이드 분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의 흔적을 설명하는지 그가 아직도 어딘가에서 '모히토'를 마시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했다.

위치상 쿠바와 가깝기도 하지만 괴짜가 아니면 적응하기 힘들 것 같은 Key West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봐서 헤밍웨이와 폴린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Famous Pool'로 알려진 헤밍웨이 집의 수영장은 이만 불(현 가치로 4억 원 정도)의 돈을 들여 만든 당시 흔치 않은 'inground pool'인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폴린이 '헤밍웨이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공사를 마쳐 깜짝 놀라게 해주려 했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슬프게도 그때 헤밍웨이는 다른 여자와 여행을 하고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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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ingway House in Key West. 6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를 다시 만난 곳은 스페인의 '론다'였다.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아슬아슬한 산길을 따라 한없이 올라가서 2시간 만에 도착한 론다에서는 코스타 델 솔에 흔한 사치스럽게 꾸민 관광객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쟁 중 종군 기자로 스페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했던 '론다'는 어지러운 세상과 이념을 잠시 접어 두고 머리를 식히기에 적합한 곳이었을 거다.

더구나 '론다'에는 그의 '마초' 기질을 만족시켰을 '투우'가 있었으니 헤밍웨이로서는 뭘 더 바랐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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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도시 론다. 투우장과 근처의 헤밍웨이 동상




그는'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파란만장하게 모험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

끝없는 염문과 4번의 결혼,

사는 동안 작가로 인정도 받고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 부유한 생활을 했던 사람.


막말로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가고 싶은 곳 다 다녀 본 사람'이 왜 자살했을까.

더 이상 해보고 싶은 게 없어서였을까?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가족력이었을지도.




헤밍웨이가 여행을 많이 다녔던 건 알지만 한국에 왔었다는 건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제 반포천의 피천득 산책로 지도를 보니 고속터미널 역에서 이수 교차로를 지나면 '헤밍웨이 길'

이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다.

피천득 님의 동상과 그의 시를 써 놓은 벤치를 지나 걷고 걸었다.

날씨도 좋고 산책길도 쾌적하고.


'서초구! 나는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산책길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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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내가 잘못 읽었던 건가, 아니면 서초구 행정 공무원의 장난에 놀아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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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도에서 '헤밍웨이 길'이라 읽었던 건 '허밍웨이 길'이었다.

산책로 끝에 세워진 석상에 새겨진 '허밍웨이'를 보고 나서야 내가 잘 못 봤다는 걸 알았다.

이런 이런,,


지도에도 '길'자를 빼고 '허밍웨이'라고만 써놨더라면 잘못 읽지 않았을 텐데, 아.. 어쩐지 뭔가 좀 이상했어..


'서초구! 산책로를 만들어 준 건 고마워. 그렇지만 당신한테 뭔가 속은 기분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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