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Apr 07. 2023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됐을까?

"굿모닝"

"리사코! 오갱끼~~~ㅠㅠ, 도모다찌, 도모다찌.... shh, shh,,, It's ok, don't cry sweetie.."


나는 아기 이름을 부르며 내가 아는 일본어 몇 마디로 아기를 달래 보려 하지만 아기는 '스마일' 하며 최대한 '예쁜 척' 하는 내 얼굴을 보고 도깨비를 본 듯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어린 아기이지만 앞으로 두 시간 동안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방에서 낯선 봉사자들과 있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생큐"

엄마는 일본 발음의 영어로 인사를 하곤 매달린 끈을 잡고 놓지 않는 아이의 손을 냉정하게 떼어서 아이를 나에게 넘겨주고 서둘러 나간다. 큰 소리로 울면 엄마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지 아기는 뒤로 버티며 콧물, 눈물, 땀 범벅하며 울어 젖힌다. 한 명이 울면 옆에 있는 아이도 따라 울고,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아이들, 우는 아이를 내려놓고 나가는 엄마들의 줄이 이어지자 문 앞에서 방 뒤편에서 여기저기에서 소리 지르며 울어대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들은 땀을 뺀다. 이 모습이 바로 '아수라장', '수요일 아침 교회 유아실' 모습이다.


나는 화요일과 수요일 아침에 교회에서 '유아 돌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교회 여전도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ESL 수업을 '종교와 상관없이 여성이면 누구나'에게 개방하고 있어서 누구든지 학기 시작 전에 등록만 하면 레벨 테스트 후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무료지만 레벨에 따른 수업 내용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다.


남편과 내가 싱가포르에서 다니고 있는 교회는 2,000명 정도의 등록 교인이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교회지만 매주 주일 예배에 모이는 성도들의 국적이 50개국 정도 되는 이름처럼 'international'한 교회이다. 설교와 예배 진행은 영어로 하고 있고 다른 언어로 동시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다른 언어의 예배가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성도들은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비영어권 출신들의 경우 영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료 ESL 수업은 교회 여전도회에서 '싱가포르'라는 타지에서 생활하게 된 여성들에게 '가르치는 일''배우는 시간'을 제공하며 강사는 재능 기부의 보람을, 배우는 학생은 영어를 익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엄마'들이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유아 돌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어서 어린 아기와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잠시나마 육아에서 해방되어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며 정보 교환과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나도 '유아 돌봄팀'에 속해서 수요일 아침에 아기들을 돌본다.

아기들은 겨우 안정이 되었다. 리사코는 나에게 껌딱지 처럼 붙어서 디즈니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돌보는 아기들 중 8명은 일본인, 몽골리안 1명, 중국인 1명 총 10명이다.

전에는 영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 중 대부분이 일본인과 한국인 주부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인 학생들이 거의 없다. 평균 학생들의 나이 대가 30대 중반인데 그 세대 한국인 주재원 와이프들의 영어는 수준급이다. 20년 전,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영어 사회 공포증'으로 한국 사람들과 한국 커뮤니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했던 세대와는 다르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전형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영어 유치원을 거쳐서

초등학생 때 조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방학 때는 엄마와 영어권 나라에 체류하며 영어를 배운다.

초, 중, 고 때 여건만 된다면 몇 년간 엄마와 영어권 나라로 유학을 가서 학교를 다닌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교환 학생을 다녀오고

방학 때는 호주, 캐나다, 영국, 미국에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한다.

대학 졸업할 때 토플과 토익 성적은 거의 만점에 가깝다.


나는 중학교 입학 전 초등 6학년 겨울 방학 때 처음 영어를 배웠다. 문방구에서 영어 공책을 사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순서대로 써서 외우고 Apple, Bed, Car 같은 명사를 읽고 쓰면서 외웠다.


누가 시킨 것도, 학원을 다닌 것도,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가면 초등학교 때는 없던 새로운 과목인 '영어'가 있다는 걸 알아서 혼자 '예습'을 했던 거였다.

'영어' 단어 몇 개 외운 게 고작인데 레코드 가게 앞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에 귀가 기울어졌다.

집 앞 큰길에 있는 서점에서 '팝송책'을 사서, 뜻도 모르면서 한글로 소리 나는 대로 쓴 가사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어른인 척 영어 좀 하는 척하기도 했다.


당시에 'culture club'의 리드 싱어인 'Boy George'의 독특한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어서

나보다 4살 많은 사촌 오빠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오빠, 나 요즘 컬치 크럽 좋아해."

하며 아는 척을 했다.

영어라면 알파벳에 명사 몇 개 아는 주제에.


"뭐라구?"

"컬치 크럽. 오빠 몰라? 여자처럼 화장하고 나오는 가수..."

"아,, 컬처 클럽 ㅋㅋ. 컬처 클럽, 컬처가 '문화'라는 뜻이야."


키친 Kitchen치킨 Chicken 발음도 구분 못했던 나에게 고등학생이었던 사촌 오빠는 컬처 Culture를 설명해 줬다.


에라 모르겠다. 영어가 안되니 귀에 잘 들어오는 팝송으로 밀어보자.


"내가 라디오에서 듣다가 좋아서 테이프에 녹음한 노래야. 들어볼래? 제목이 '호랑이 눈'이야."

"호랑이 눈?"


음악을 틀자 오빠는 웃으며

"이 노래 제목을 누가 '호랑이 눈'이라 그래. 'Eye of the Tiger'라는 거야."

알파벳을 알고 나자 빨리 더 알고 싶었던 영어,

엄마나 아빠도 영어를 일본식 문법책 정도로만 배우셨던 분들이라 나에게 영어 공책과 팝송책 살 돈을 주셨을 뿐이지 그 외엔 별다른 도움을 주시진 못했다.

그저 둘째인 내가 언니는 관심 없어하는 '영어'과목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예습'하는 모습을 기특해하셨고 팝송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며 팝송 책에 쓰인 한글 가사를 보며 따라 부르고 있는 나를 보시고 "우리 딸 다 컸네.", "우리 딸은 미국에서 살건지, 영어를 좋아하네." 하시는 게 전부였다.


'맨투맨 기본 문법'을 거쳐 '성문 종합영어', 대학 가서는 vocabulary 22,000 책 보는 척하다 졸업했다. 그때도 돈 좀 있는 집 친구들은 캐나다나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흔치 않았다.

80년대 고등학생들에겐 바이블 같았던 영어 문법책, 맨투맨과 성문 영어

외국 친구의 조크도 아니고 조롱도 아닌 우스갯소리,

"달나라 사람들의 공식 언어가 '영어'래."

"응? 뭔 소리야."

"거기에서 처음 마주치는 지구인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글쎄."

"ㅋㅋㅋ 한국인. 영어 배우러 왔대."


늘 배움에 열정적인 한국사람들,

나이가 든다고 영어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는 듯하다.


한인교회에서 만난 70대 어른께서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저기, 집사님. 영어는 어떻게 해야 잘해요?"

"왜요? 영어 공부 하시려구요?"

"영어를 못하니까 답답해. 손주들이 나중에 할머니 영어 못한다고 무시할 까 싶고. 학원을 가고 싶어도 어디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학원엔 젊은 사람들만 있을 거 같아서."

"집에서 TV 보시는 거 좋아하세요?"

"그럼, 그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면 채널을 돌려 보세요. EBS로."

"응? 그러면 돼?"

"그럼요. 아침드라마나 건강 정보 프로만 보시지 말고, EBS 보세요. 영어 프로그램 쉽고 재밌는 거 많아요. 항상 틀어 놓고 들으세요. 그리고 큰 소리로 따라 하세요. 그러다 보면 저절로 귀도 트이고 말도 트이고, 금방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럼요!"


'영어 교육에 많은 돈과 시간을 썼는데 한국 사람들 아직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의 영어 수준을 영어를 모국어,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와 비교하니 그럴 수 있겠다.

내가 볼 땐,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오바마도 부러워했던 한국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 늘 자신을 채찍질하는 학구, 안 하면 뒤처진다는 절박함, 엄청나게 쏟아부은 사교육비, 양질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

이 모든 것이 복합된 산물일 거다. 요즘 한국 사람들의 영어 실력!


















매거진의 이전글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