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snobbish 하지 않아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Coffee Snob", 사람들이 이 말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누가 정의를 내렸는지, 언제 urban dictionary에 등록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남편은 나를 coffee snob이라 부른다.
나도 인정한다. 내가 coffee snob인 것을.
나는,
-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에스프레소 머신을 켠다. 원두의 상태를 체크한 후 뜨겁게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서 "룽고"를 만든다. 여유 있게 룽고 두 잔을 마신 후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 원두는 로컬 로스터가 직접 볶은 신선한 싱글 오리진으로 구입한다.
- 원두 소비량은 일주일에 250g 정도다.
- 맛없는 커피를 마시느니 차라리 물을 마신다.
- 길에 흔히 보이는 프랜차이즈 커피는 공장 커피로 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누군가 묽은 보리차 같은 커피, 캡슐 커피, 오래되어 기름 쩐 냄새가 나는 커피, 인스턴트커피를 권하면
화가 난다.
- 여행할 때는 모닝커피 마실 카페 위치를 염두해서 체류할 호텔을 정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커피는 내 삶의 큰 일부가 되었다.
급격한 기후 온난화로 인해 지구에서 커피콩이 사라진다면?
원두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밥이냐 커피냐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치과의사는 커피로 누렇게 변한 내 이빨을 보고 매력적인 스마일을 위해서 치아미백을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미백한 하얀 이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커피, 차, 레드와인, 초콜릿은 끊는게 좋다고 권한다.
내과의사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면 에스프레소 계열 커피보다는 필터 커피를 마시라고 한다.
내가 수전증과 두전증이 있다고 카페인 좀 줄이란다.
아직은 뭐 누렇지만 튼튼한 이빨이 있고, 착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나쁜 콜레스테롤과의 평균이 좋은 편이고, 떨림이야 물 많이 마셔서 카페인을 몸 밖으로 배출하면 되는 거니까 괜찮다.
그냥 이대로 살란다. 내 입에 맞는 커피 마시면서 ~
마실 수 있을 때 마시련다. 환경으로 인한 것이든 내 건강 상태로 인한 것이든 언젠가는 커피를 못 마시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테니 마실 수 있을 때 맛있게 만들어서 많이 마시련다.
싱가포르에서 동남아시아 특유의 진하고 걸쭉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된 나로서는 한국에 올 때마다 묽게 내린 원두커피를 마시는 게 성에 차지 않아 거기에 인스턴트커피가루를 추가해서 넣어 마시곤 했었다.
그때는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이 있던 때도 아니라서 내 입맛에 맞는 커피가 있는 카페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요즘은 한국 여행이 훨씬 수월해졌다. 커피를 염두에 두지 않고 호텔을 정해도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호텔 주변에서 찾으려고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인은 평균 하루에 1잔 이상 커피를 마시며 한국에서 커피나 커피 음료를 판매하는 업소의 숫자는 치킨 판매업소보다 많다고 한다. 경험상 스타벅스가 태어난 시애틀보다 명품 커피 산지인 코나, 하와이 섬보다 한국의 카페에서 맛난 커피를 마실 확률이 훨씬 높다.
수입품을 구하기 힘들었던 70년대에 엄마는 미군 부대에서 물건을 어찌어찌 빼내서 시중에 파는"PX 아줌마"를 통해 미국에서 마신다는 인스턴트커피를 샀다. 집에 손님이 오실 때면 엄마만의 환상 조합 1:2:2로 달달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타서 촌스러운 컵받침이 있는 커피잔에 내오면 손님들은 엄마의 커피가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우리들은 이 구수하고 달콤한 커피를 한 방울이라도 맛보고 싶어서 어른들이 커피를 마실 때면 옆에서 턱을 받치고 있곤 했다. "애들은 이거 마시면 나중에 공부 못해." 하며 티스푼에 묻은 커피 흔적까지 쪽쪽 빨아 드시던 어른들을 쳐다보며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러다 손님 접대로 바쁜 엄마 눈을 피해 동생과 찬장 속에 있던 "프리마"를 꺼내 밥숟가락으로 퍼 먹곤 했다.
차가운 촉감의 "프리마"가루는 침과 뭉쳐서 입속과 이빨에 척척 붙었다. 그래도 자꾸 먹고 싶은 맛난 가루였다. 나도 빨리 어른이 돼서 커피가루에 백설탕 그리고 프리마를 타서 맘껏 마시고 싶었다.
대학 때 시험 기간이 되면 벼락치기하느라 유리병에 든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스푼으로 떠먹으며 밤샘을 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날 때면 종로에 있는 쟈뎅이나 도투루에서 퐁퐁 커피라 부르던 카푸치노를 마시며 트렌디한 척 하기도 했다. 지하 커피숍에서 단체로 미팅을 할 때는 맥심이냐 초이스냐를 놓고 서로 맘이 통하는지 아닌지 따져 파트너를 정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국의 커피 문화가 변한걸까?
미국 대형 프랜차이즈 국내 유입과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진 국내 프랜차이즈, 고집스럽게 커피에 목숨 건 장인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순진한 퇴직자들이 쏟아부은 창업 자금, 해외 유학파 부자집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으로 차린 수익성 없는 팬시한 브런치 카페, 이 모든게 발판이 되어 소비자인 우리가 만족스러운 커피 한잔을 어렵지 않게 찾아 마실 수 있는 곳이 된 건 아닐까?
밍밍하고 맛없는 커피를 일회용 컵에 성의 없이 따라주는 게 일상인 미국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면 남편은 적당히 하라는 눈치를 나에게 주곤 한다.
작년 몬트레이에 있는 Acme coffee roasting company에서 얼굴에 피어싱을 덕지덕지한 바리스타에게 이렇게 이렇게 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blah, blah, blah,,, 장황하게 설명하자
앳된 바리스타는
"You like 'Proper + cano' not 'Americano' " 하면서 씽긋 웃어준다.
그래 마시려면 제대로 마셔야지. Proper + Americano !
지난 크리스마스에 조카가 사준 파자마 세트에 쓰인 문구를 보면 웃음이 난다.
나만 유난인 것 같지 않아 웃음이 나고, 또 이 파자마를 보자마자 남편과 내가 생각났다는 조카가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Well Dressed and Coffee Obs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