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 시장에서 모카 한 잔 할 거야!

아빠 생신은 음력 12월 22일이다

by 리나

"아빠 생신 어떻게 할까?" 조심스레 언니가 카톡방에 올린 한마디에,

" 나는 경동 시장에서 모카 한 잔 할 거야." 답변했다.

"????", "????" 물음표가 올라왔다. "~~~~ 아,, 장 봐서 생신상 차려드리게?"

"아니, 호텔방에서 어떻게 요리해? 경동 시장에서 모카 한 잔 할 거야!"


음력 12월 22일, 아빠 생신은 음력 12월 22일이다.

엄마는 아빠 생신 한참 전부터 상차림 준비를 시작했다. 오실 손님 명단을 쭉 적은 다음 그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토대로 메뉴를 정해서 요리할 재료를 달력 뒷장에 모나미 볼펜으로 적어가며 계획을 세웠다. 사실 오시는 손님들은 늘 같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해마다 "이거 잘 잡수시더라, 작년에는 이게 인기였어, 김장이 맛이 없을 때라 봄동 겉절이를 해볼까." 혼잣말을 하며 준비를 했다.


소주와 맥주 대병, 사이다를 동네 슈퍼마켓에 주문하고, 손님들께 드릴 담배도 몇 보루 사서 안방 벽장 안에 쟁여 두고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던 우리들을 깨우고 달래서 경동 시장에 짐꾼으로 데려가곤 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찬바람이 연탄 불에 구운 군밤 냄새와 범벅이 돼서 무거운 겨울 잠바에 배여 들기 시작한다. 추위에 얼굴이 시퍼렇게 언 시장 상인들에게 가격을 흥정해 가며 장을 보다 보면 장바구니와 야채 박스가 감당하기 힘든 만큼 쌓인다. 그때쯤이면 지게 짊어진 아저씨들이 "짐 보관해 드릴까요?" 하며 따라 붙는다.

" 아저씨, 저 골목 한 바퀴 돌고 올 테니까 이것 좀 맡아주세요. 이따가 택시 타는 거까지만 도와주시면 돼요"

물건을 내려놓고 마른반찬거리와 북어, 더덕, 곶감, 잣, 실고추까지 꼼꼼하게 리스트를 체크해 가며 쇼핑을 하다 보면 시장 길의 축축한 가마니와 그 위를 덮은 배추 쓰레기 더미 위를 질척 질척 밟고 걸어 다닌 발은 감각이 없고 딱딱해진다.


짐 많다고 냄새난다고 투덜거리는 택시 기사에게 엄마는 " 우리 애들 아빠 생신이라... " 얼버부리며 박스와 비닐봉지를 차에 욱여넣고 우리들도 짐짝처럼 찌그러져 가시방식 같은 택시 안에서 눈치를 보면서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시장 바닥에서 얼었던 발가락은 간질간질하게 감각이 돌아오곤했다.


어렸을 때는 아빠 생신 준비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어울리고 어른들께 용돈도 받고. 기름냄새와 수정과, 고기 볶는 냄새가 범벅된 잔칫집 냄새도 좋았던 거 같다.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생일상 차리다 초상 나겠다고 엄마를 타박하곤 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며 준비하던 피곤에 찌든 엄마 얼굴이 싫었었다.


이제는 생일상을 받으실 분도, 준비하실 분도, 생일 선물로 메리야스 박스를 들고 오시던 고모할머니도, 거북당에서 촌스러운 '생일케키'를 사 오시던 작은할머니도 안 계시다. 어른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어린 나도 없다. 추억인지 기억인지를 공유하며 ㅠㅠㅠ, ㅋㅋㅋㅋ를 연발하며 수백 개의 카톡을 주고받는 나와 자매들은 50대가 되었다.

"아빠 생신은 해마다 왜 그리 추워",

"그때는 옷이 요즘처럼 따뜻하지 않아서 더 했겠지",

"밖에 내놓은 생굴봉지 얼었던 거 생각나?"


올해 아빠 생신은 한국에서 지내게 됐다.

마침 경동시장에 그곳의 역사와 특색을 잘 살린 스타벅스가 생겼다는 기사를 읽고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던 터라 이번 아빠 생신에는 경동시장에 가 보려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빠가 좋아하시던 "모카"를 마실 거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따뜻할 거라는 일기예보를 보았다.

"사람이 고약하니 해마다 날씨가 이리 춥다.",

"용띠가 겨울에 났으니, 추워 웅크리고 있어서 너희 아빠는 출세를 못했다."

아빠 생신 때마다 엄마가 되풀이하던 말이다.


엄마가 맞을지 기상청이 맞을지... 아님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날씨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

내기하듯 다음 주 날씨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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