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이면 뭔가 큰 결실을 얻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인데 왜 나에게는 아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남들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냥 출발점 '그 자리'에 있었고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우리는 분명 출발점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불안감과 함께 의미 없는 일에 애쓰고 힘들이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냥 이렇게 살다 끝나는 건가?
혹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잘못된 거라면 이제부터라도 다른 방식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아침에 출근할 땐 비참했고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 아침이면 오늘과 같은 하루가 반복될 거라는 생각에 우울했다.
우울하던 그때 우리가 찾았던 곳이 '빅 아일랜드'였다.
커피의 명품이라는 '코나 커피'가 생산되는 섬, 활화산으로 섬 어딘가에서는 용암이 흐르고 있는 곳.
그때 우리에게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휴가 때 '빅 아일랜드' 여행 가는 거 어때? 가서 화산도 보고 코나에서 커피 농장도 가고."
"그래, 기분 전환도 하고 일상에서 벗어나 보자. 물론 휴가 중이어도 이메일이나 컨퍼런스콜을 피할 순 없겠지만."
화산과 커피가 여행의 목적이었다면 가까운 '인도네시아'를 생각했었을 수도 있는데 왜 '빅 아일랜드'였을까
가 보기도 전에 마음에 들면 '거기에 가서 살아 보자'하는 무모한 모험심과 사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절실함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빅 아일랜드는 우리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았다. 근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지는 섬이었다.
뜨거운 용암이 바닷물과 만났을 때 품어내는 연기, 시커멓게 굳어 버린 용암의 자국으로 펼쳐진 해변, 쏟아져 내릴 듯한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었던 Mauna Kea, 커피 농장에서 본 나무와 야생 동물.
재충전을 하려고 떠난 휴가였는데 일상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더 힘들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애인을 두고 멀리 떠나 온 마음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싶게 빅 아일랜드가 그리웠다.
"그곳은 살아 움직여. 그런데 여기는 다 죽은 거뿐이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세상에 도움이 되거나 의미 있는 일인가 계속 생각하게 돼. 내가 하는 일이란 게 결국 경쟁 회사를 누르고 우리 회사 물건을 소비자에게 파는 거잖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의사나 목사가 되겠다는 건 아니야. 그런데.. 잘 모르겠어. 이게 맞는 건지."
다시 가자. 빅 아일랜드
"다시 가면 알게 될 거야. 우리가 정말 그곳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냥 우리가 상상하고 꾸며낸 천국을 가장한 피난처인지"
다녀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빅 아일랜드에 왔다.
"우리가 상상 속에 만들어 낸 천국이 아니었어."
"인생 허비하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여기에서 커피 농장을 사는 거야."
"좋아!"
어떻게 우리 둘은 찰떡같이 '그래 이거야' 인생의 해답을 얻었다고 100퍼센트 서로 동의를 했을까.
'덤 앤 더머'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부동산 에이전트를 찾아 연락을 하고 같이 농장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매매가 거의 없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에이전트는 인터넷을 보고 연락한 전혀 안면도 연고도 없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서 꽤 많은 부동산을 보여줬다.
평생 가꾼 커피 농장을 주인이 나이가 많아 농사일이 힘들어져 팔려고 내놓았다해서 에이전트와 보러갔다.
"너희들 농부 같이 안 생겼는데. 농사 너희들이 직접 지을 거야?"
농부 할아버지의 투박한 말투에
"농사는 안 지어 봤지만 이제부터 배워서 하려고 하는데..."
하며 대충 대답을 했다.
"너희들 솔직히 말해봐. 너희들 Moonies (통일교 광신도)지?"
"아닌데요."
"며칠 전 우리 옆 농장, 건너편 농장. 다 Moonies가 와서 사버렸어. 나는 코나가 Moonies 천국이 되는 걸 원치 않아."
에이전트는 우리에게 할아버지 대신 사과를 했다.
평생 이 땅에서 농사를 지었기에 애착이 많다고. 농장을 사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땅을 사랑하고 정성들여 작물을 재배해 주길 바라는 게 농부들의 마음일 거라고. 그래서 땅이 종교단체나 기업체에 팔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무례하게 했어도 이해해 달라고.
그러고 보니 커피 농장 할아버지가 충분히 오해할만했다.
누가 보아도 남편이나 나는 농사짓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을 테고, 내가 한국 사람인 거에 근처 농장을 사들였다는 통일교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에이전트와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와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농장을 사는데 드는 투자비용, 운영비, 인건비 등.. 손익계산을 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 커피빈을 직접 로스팅해서 소매로 판매하면 그나마 손해는 덜 보겠지만 농사라는 게 사람의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니, 그걸 다 감안하면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쓰는 사업이 될 게 뻔했다. 계산기를 두들기다 보니 우리가 회사를 다니며 버는 돈이 얼마나 쉽게 버는 돈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그런데 당신은 집에서 전구도 못 갈아 끼우잖아. 망치질을 못해서 못도 못 박고."
"너는 화초킬러잖아. 싱싱하고 예쁜 화초도 우리 집에만 오면 다 죽어 나가잖아."
빅 아일랜드를 너무 사랑하지만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절대 우리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오늘 오전에 마우이에서 빅아일랜드로 왔다.
우리의 말도 안 되는 미친 꿈을 시도하지 않았던 게(잠깐 미쳤다 실행에 옮기기 전에 제정신을 차린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그때 얼마나 젊었던가 40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나이였음을 지나고 보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