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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an 23. 2023

인도 사위와 대만 장모

가까이 있으면 너무 힘든 사이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커플이 있다. 바랏과 루이스


바랏이 남편의 전 직장동료여서 자연스럽게 루이스와도 알고 지내게 됐다.

우리는 바랏과 루이스의 집을 '루이스 카페'라고 부른다.

루이스는 요리하는 것과 손님 접대를 좋아한다. 요리를 정말 잘한다. 너무 맛있게 잘한다.

나는 엄두도 못 낼 이색적인 요리도 척척 해낸다.

그래서 루이스가 식사 초대를 하면 가슴이 설렌다.

식탁에 앉을 때까지 메뉴 공개도 하지 않아 뭘 먹게 될지 너무 궁금해서 더 설렌다.


손님들이 앉을자리도 정해주고, 모두 식탁에 앉으면 오늘 먹게 될 음식을 소개해 주고, 그 음식이 생소한 손님이 있으면 음식 소개와 함께 먹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세상의 모든 요리가 루이스 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루이스 카페'에는 별별 음식이 다 있다.


6년 전 싱가포르에 집을 구할 때 마침 바랏과 루이스가 사는 콘도 바로 옆에 빈 집이 있다 해서 친한 친구들과 가까이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계약을 했다. 참 잘한 일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루이스에게 산해진미를 많이 얻어먹고 산다.ㅎㅎ



바랏과 루이스는 시애틀에서 만났다고 한다. IT회사의 신입직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친해졌고, 7년 연애 끝에 결혼해서 늦둥이 아들 둘을 키우며 잘 산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바랏은 다혈질, 성격 급한 인도계 미국인이다.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일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고 한다.

루이스는 느긋한 성격에 말 없는 타이완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만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취업해 살았다고 한다.

둘의 시민권이 같다는 거 빼면 자라난 환경, 문화, 성격, 생김새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는 긴 한국 여행에서 돌아와, 크리스마스트리도 채 치우지 못한 먼지 쾌쾌한 집을 청소하느라 설 준비는 커녕 장을 보러 나갈 시간조차 없었다.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하고 있는데,

저녁에 Lunar New Year Eve Dinner 먹으러 오라는 루이스의 메시지를 받았다.

'아싸! 좋다 좋아, 우린 정말 럭키한 사람들이야.', '역시 요리 잘하는 친구 근처에 살아야 돼.'


바랏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남편이, "그런데,,, 루이스 부모님이 오셨다네?" 하며 "흠..." 하고 나를 본다.

" 그래? 오랜만에 뵙겠네, 코로나 땜에 한참 못 오셨었잖아. 설 이브니까 북적거리면 좋지 뭐, "


바랏과 루이스의 집, 걸어서 3분 거리 ㅎㅎㅎ. 좋다 좋아

오랜만에 만난 루이스의 부모님은 말로는 '좋아 보이신다'라고 했지만 전보다 부쩍 연로해 보이셨다.



이런저런 대화로 분위기가 한참 좋았는데,

"바랏, 애들 통장은 있나?"

"아직이요."

"애들한테 저금하는 걸 가르쳐야지. 애들이 용돈 받은 거 책상 서랍 안에 구겨 넣어 놨던데,

 통장 하나씩 만들어 주게."

 한마디 하시고 나서 장모님이 주방 쪽으로 가신다.

 눈을 굴려 가며 한숨을 푹 쉬는 바랏..

 

"바랏, 이샨 과외 수업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축구, 수영, 탭댄스, 피아노에 요즘은 수학 올림피아드도 준비한다며?"

"다 이샨이 좋아하는 거예요. 다 잘하고 있어요."

"겨우 2학년인 아이가 일주일 내내 너무 바쁜 거 아닌가, 줄이게."


이쯤 되니 바랏은 화가 났는지,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거실을 들떠서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혼내기 시작한다.

" 이샨, 레이안! 양치질하고 잠 잘 준비해. 지금 잠 잘 시간 훨씬 지났어. 내일 아침에 축구 수업 있잖아~"

화가 나서 벌건 얼굴의 바랏과는 다르게 장모님은 우아한 모습으로 정치, 경제, 외교 다양한 소재로 우리와 대화를 이어가신다. 반면 루이스의 아버지인 바랏의 장인어른은 레드와인만 홀짝홀짝 드시며 듣기만 하신다.



루이스가 저녁 준비 다 되었다고 식탁에 앉으란다. 울랄라! 오늘은 뭘 먹는 거지?

8인용 식탁의 왼쪽에는 루이스, 루이스 부모님 그리고 내가 앉고 내 오른쪽으로 남편이, 그 옆에는 바랏, 바랏의 앞에는 지원군으로 온 듯한 바랏의 사촌형이 앉았다.

그런데,

어라???~ 이건 뭔 시추에이션.


식탁의 왼쪽에 앉은 사람들은 '상하이 크랩'을 시작으로 중국음식을 먹고, 크랩 알러지가 있는 남편과 바랏 그리고 사촌형은 식탁 오른쪽에 앉아서 인도음식을 먹을 거란다.

알러지가 있는 남편이 내 옆이지만 멀찍이 떨어져 앉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겨 식탁 한가운데는 텅 비게 되었다.


식탁 왼쪽에 앉은 사람들은 지푸라기에 묶여 살아있는 크랩을 찜통에 쪄서 만든 상하이 크랩을 생강을 넣은 식초에 찍어 먹었다. 크랩이 찬 음식이라 조화를 맞추기 위해 매실주를 따뜻하게 해서 함께 마시는 게 '제대로' 먹는 방법이지만 술을 안 마시는 나는 따뜻한 생강차와 함께 먹었다.

식탁 오른쪽을 보니 인도식 닭죽과, 양고기 브리야니, 민트를 넣은 요거트 같은 게 놓여 있다.

남편은 알러지가 있어서 못 먹는다지만 바랏과 사촌형은 왜 크랩을 안 먹느냐 물었더니,

살이 많고 껍질이 연한 스리랑카 크랩에 익숙해서 상하이 크랩은 너무 작고 껍질이 억세서 먹기 싫단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다들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하하 호호 맛있어, 맛있어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빠질 수 없는 미국 정치 이야기가 시작됐다.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들, 왜 미국은 아직도 무조건 그 아이들한테 미국 시민권을 주지?

 트럼프가 그거 폐지할 거다 했던 거. 그거 하나는 나도 동의해"

 라는 바랏의 말에, 나는

"미국이 영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무조건 시민권을 주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지.

 그것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데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거 보면 이해 안 돼.

 아무리 이민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라가 미국이라지만 폐지할 때도 됐는데" 하며 맞장구를 쳤다.


저녁 내내 조용히 계시던 루이스의 아버지께서

"루이스도 미국에서 태어났어. 우리가 미국에서 박사과정 하고 있었던 때거든." 하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바랏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루이스를 빗대서 한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루이스 아버지의 과민한 반응에  'Oops...'


" 올해 크랩이 유난히 맛있네. 이 귀한 걸 우리끼리만 먹어서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루이스의 아버지께서 인도밥상을 힐끗 보시며 조용히 중국어로 말씀하셨다.


루이스의 집을 나서며, 싱가포르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시라는 나의 인사말에

루이스 엄마는,

"우리 여기 3주 있을 거야. 여기 있는 동안 또 보자" 하신다.

 아.. 3주.. 갑자기 남편과 엄마 사이에 서 있는 루이스가  측은해졌다.


남편은 바랏의 장모님이 너무 심하단다.

특히 손주들 교육에 딸과 사위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도가 지나치단다.

내가 보기엔 루이스 엄마는 그냥 전형적인 아시안 '할머니'이며 딸 가족을 염려하는 '친정 엄마'이며 '장모'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그 사랑의 방식이 서로 달라서 문제다.

이 둘이 서로 친해지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Shanghai Hairy Crab
Mutton Biryani and Chicken Lentil Por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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