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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ul 24. 2023

핫도그 하나에 50원 주고 사 먹던 사람이

20년 만에 노래방에 간다면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조카 연이가 우리 가족 단톡방에 지어준 별명은 '단체 독백방'이다.


'단독방'

처음엔 하나의 주제로 톡을 시작하지만 자연스럽게 각자 독백을 하듯 주제와는 동떨어진 자기 이야기를 하며 세 갈래 네 갈래 나뉜다. 그러다 결국엔 'ㅇㅇ'하며 모두 만족하는 해피엔딩으로 어찌어찌 마무리된다.


단독방 시작은 나를 포함한 울 네 자매였다.

조카 연이가 제 엄마가 이모들하고 하는 톡 내용을 옆에서 지켜보다,

"엄마, 이모들하고 하는 톡 내용을 보면 독백 같아. 다들 자기 얘기만 하고 있잖아."

"그런가? 그래도 대화가 흐르는 강물처럼 잘 흘러가는데?"


이렇게 해서 생긴 별명 '단체 독백방'에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20대 조카 세 녀석이 언제부터인지 슬며시 포함되었다.


주로 우리 네 자매 중 한 명이 톡을 시작하고 독백이건 대화건 주고받고 있으면 조카 녀석들은 관망만 하다 한 마디씩 댓글을 달아 주거나 대화 내용에 적절한 '짤'을 올려 대화를 마무리해 준다. 조카들은 단톡방에 맛을 더해 주는, 없으면 허전한 요리를 마무리할 때 뿌려주는 통깨, 후추, 허브가루 같은 역할을 한다.


주로 톡의 시작은 일상 중 겪은 황당하거나 화가 나거나 웃기거나 그런 별 거 아닌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톡을 하다 보면 어느새 다들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뭘로 왜 톡을 시작했었는지... 뭐 그걸 굳이 생각할 필요도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지금 자기가 속한 일상의 이야기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내 얘기 한참 써서 올리다 남의 얘기 답글을 해주고, 그 사이 내가 올린 글에도 답글이 오고. 주거니 받거니, 이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순식간에 수백 개의 톡이 방에 남는데 뭐 딱히 중심된 주제는 없다. 나 잘고 있다. 너도 잘 사냐? 대충 이런 내용이다.



며칠 전 단톡방에 올라온 스무 살 조카의 사진을 보니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패션이 생각났다.

'어머, 이거 내가 대학 다닐 때 유행하던 남학생들 패션인데.'

'아,,, 이모. 제발.'

'진짜야. 딱 신입생 MT룩이야.'


자연스럽게 대화는 대학 MT로 흘러갔다.

당시 유행하던 패션, 음악, 가수로 시작해서 순진한 신입생이 선배에게 '강요'당해 마신 술 때문에 일어났던 해프닝까지...

'나 과동기 애 중에, 걔 워낙 조용한 애였는데. 지금은 이름도 생각 안 나. 1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 가서, 나 4학년 졸업 마지막 학기에 복학했으니까 마주칠 일도 거의 없던 애였거든. 신입생 환영회 겸 첫 MT 때 술 마시고 토했는데 검은 게 나와서 다들 위출혈인 줄 알고 겁먹고 한밤중에 응급실까지 데려갔잖아. 아휴,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까만 게 '짜장 컵라면'이었던 거야. 왜 있잖아. 100원인가 200원인가 했던 그거.'


'요즘도 그런 애들 있어요. 술 마시다 토하고 그런...'

'그렇구나...'


어느새 음식 가격 얘기로 대화가 흘러

'싱가포르에서 한국식 핫도그가 한국 돈으로 하나에 4500원에서 5000원 정도 하더라고.  맛있다고 소문났는데. 글쎄 나는 하나에 5000원이나 주고 핫도그를 먹고 싶진 않다... 예전에 핫도그 하나에 50원 아니었어?'


'...'

'....'

'......'

'지금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전에 학교 앞에서 소시지 하나 넣고 두 번 튀겨서 케첩 뿌려주던 거. 가짜 소시지에 반죽 튀기면서 나던 냄새 좋아했는데. 하나에 50원 맞지? 100원인가?'


'한국에서도 핫도그 하나에 2000원 정도 해. 요즘 핫도그는 예전의 싸구려 소시지 끼워 만든 그런 길거리 음식이 아니야.'


'.... 그렇구나.'


예전에 할머니께서 쌀 한 가마니에 000원이었는데 요즘은 00000원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은 핫도그 가격으로 한국의 물가를 '주제'로 톡을 이어갔다.


8월 25일

조카 녀석 둘이 대학을 졸업한다.

사촌지간인 두 녀석은 고등학교도 선후배로 같은 학교를 다니더니 대학도 같은 대학 선후배, 졸업까지 같은 날 한다.


작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서 외손주인 두 녀석의 졸업식에 함께 하고 싶으셨던지, 마침 이 날은 아버지의 첫 기일이기도 하다.


남편과 나는 조카들 졸업식과 아버지 기일에 함께 하기 위해 한국에 가기로 했다.


8월 26일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을 헤쳐온 우리 가족들,

단합대회 겸 자축하는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1차는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레스토랑

2차는 노래방

3차?

4차?


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음치의 대명사이다.

아버지 장례식 때에도 내가 부르는 찬송가를 듣다 조카들이 울다 웃었다는... (나쁜 놈들)


조카 녀석 준이가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그래도 이모보다 낫지?'를 연발한다는 걸 보면 그 녀석도 노래에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 다 나와. 내가 상대해 주마. 점수는 객관적으로 판정해 줄 기계에게 맡기자고...

헉, 그런데 나 노래방 안 가본 지 20년도 더 되었는데... 아마 연이 한글 막 떼었을 때 화면에 나오는 가사 읽을 수 있다고 그랬을 때. 그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은데...'


'으악'

'ㅋㅋ 아는 노래나 있어?'

'신청곡 받아요? '


'신청곡? 음.. 갯바위, 개똥벌레, 종이학, 만남. 뭐 그 정도에서 골라봐.'

'으악~~~'


'준이랑 듀엣 신청이요. 노래는 내 귀에 캔디'

준이는 택연이 되고 나는 백지영이 되어 듀엣으로 노래해 달라는 가족의 요청.


나는 들어본 적 없는 모르는 노래지만,

시간이 한 달이나 남았으니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다.


한다면 한다!!!

준아~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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