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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May 03. 2023

할아버지는 천국에서 배달을 하고 있어.

미국에 사는 막내 동생의 늦둥이 딸이 며칠 전 다섯 살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내려 주신 선물 같은 아이라 태명도 '선물'이, 이름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선물이는 다소 과하다 싶을 만큼 외모 꾸미기를 좋아하고 가끔 엉뚱한 말을 해서 우리들을 웃게 해 준다.


작년 이맘때였다. 친정아버지께서 암 선고를 받으신 때가. 이미 소세포 폐암 말기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연세가 있으신 데다 심장이 좋지 않으시니 항암 치료를 해도 득 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모두들 '기도'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막내 동생은 휴가를 내서 선물이와 한국에 와서 2주 동안 친정아버지와 시간을 함께 했다.

손주들 중 할아버지와 가장 적은 시간을 보낸 막둥이 손녀 선물이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 2주가 다 일 텐데 지금도 할아버지 얘기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한다고 한다.

"엄마,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천국 가셨지?"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 할아버지가 콩순이 뺏으려고 장난치셨지?"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서 내용물을 톡톡 손으로 털어 넣으며 "할아버지처럼"이라 하기도 해서

동생은 '이 아이가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구나' 감사하기도 하고 어린 딸 덕분에 매일 친정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엄마, 할아버지는 천국에서 배달을 하고 있어."라고 해서 동생이 조금은 황당했다 한다.

"배달?"

"응"

자매 단톡방에 올라온 얘기에 우리들은 "아마존에 취직하셨나? ㅎㅎㅎㅎㅎ"하며 많이 웃었다.


친정아버지는 운동을 좋아하시고 장난치시며 농담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여가 시간에 책을 보는 것보다는 산책이나 등산을 하시는 활동적이신 분이셨다.

딸들에게는 다소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셨지만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할아버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딱 한번 내 꿈에 나오셨다.

"심심해"라고 하셔서

"엄마하고 같이 노세요." 했더니

"같이 안 놀아줘." 그러셨다.

꿈을 깨고 나서, 꿈이지만 너무 '아버지'같아서 웃었다. 무료한 걸 못 참으셨던 아버지. ㅎㅎ


"심심해서 취직하셨나 봐."

"선물이가 배달해 주는 아저씨를 좋아하잖아. 아마 천국에서 좋은 일을 하고 계시다는 뜻일 거야."


아기 때부터 아마존이나 UPS트럭을 보면 '선물 주는 아저씨'라고 좋아하는 선물이.

외할아버지는 천국에서 선물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계신가 보다.


화려한 스탈을 좋아하는 5세 선물이, 할아버지의 영원한 토깽이 큰 손녀와 셀카 놀이 중이신 아버지, 암선고 받으신 후 병원에서 찍은 아버지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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