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
손바닥 추억
아빠는 산신령이었다.
대학시절 동굴탐사대 부대장으로 활동하며 전국 팔도 산 꼭대기에 깃발은 죄 꽂고 다녔다고 한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남아있는 그 남자의 자부심이란, 에베레스트 정복자 허영호 좌와 함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다녀왔다는 전적.
그 시절 도파민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채 가족을 위해 생업에 뛰어들었더랬다. 영끌해 구매한 첫 아파트 역시 해발 600M에 이르는 백봉산 코앞에 자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아빠를 산신령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속세 하고는 먼 답답한 취향도 한몫했다. 주말 TV 앞에서 국민 여신 김태희를 보고는 “쟤가 전지현이냐?” 전지현을 보고는 “쟤는 송혜교 맞지?” 오답을 남발할 때 엄마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너는 삼식이냐? 어디 좀 나가라”를 외치면 아빠는 배낭 하나 메고 백봉산으로 도망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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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도망 대열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우울증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실연까지 겹치자 나도 삼식이가 된 거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아끌고 그의 놀이터로 나를 초대했다. 녹음綠陰으로 꽉 찬 시야 속에서 손가락을 바삐 휘두르는 눈빛이 반짝였다.
김태희 전지현은 못 알아보면서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의 잎가락 차이와 진달래와 철쭉은 단박에 구분했다.
요즘 노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던 양반이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가수가 누구고 멜로디는 어떤지 기가 막히게 알아맞혔다.
아빠에겐 계곡 물소리가 곧 ASMR, 새소리가 유행가기에 너튜브는 필요 없었다. 알록달록 물든 꽃들과 바위 절경은 인별그램을 마다하게 했다.
그런 아빠의 뒤를 따르던 나도 어느새 ‘등파민’ 맛을 알아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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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산등선을 타고 오를 때 풍기는 낙엽향은 밥 짓는 내음과 똑같다는 걸 아는가?
정상에 올라 초코파이를 으깨 손에 올려 하늘을 바라보면 박새 한 마리가 손끝에 날아와 빵가루를 쪼아 먹을 때의 교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산이 주는 도파민은 비단 자연의 신비만이 아니었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가 뇌를 타고 들어올 때 떠오르는 삶의 영감들 역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극강의 도파민이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고통을 참아내 오른 정상의 달콤함은 잠시, 더 혹독한 하산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굽이진 산길을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는, 동반자와 갈림길 앞에서 때때로 헤어지곤 하지만 결국 한 곳에서 다시 만나는 원리도 자연이 말하는 '인연'임을 깨달았다.
얇았던 발목이 두툼해지고, 등산화 밑창은 얇게 닳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나 역시 내리막길을 의연하게 마주할 용기와 인연의 오고 감에 덤덤한 마음 근육도 함께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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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 한 켤레의 깨달음이 이 정도인데, 수십 켤레의 신발끈을 묶었을 아빠에게 존경심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매너와 책도 사람을 만든다지만, 산 역시도 한 인간을 멋드러지게 성장시키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아빠를 ‘산신사’라 부른다.
2L 페트병 두 개에 약수를 가득 담고 산을 오르는 아빠의 말벅지핏은 20대 그 자체다.
등산복계 샤넬로 불리는 스위스제 바람막이로 오늘의 OOTD를 완성한 진정한 패션리더. 그 험한 내리막길에서도 노인에게 먼저 길을 양보하는 매너는 등산계의 콜린 퍼스다.
때로는 순수한 소년처럼 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곤충들을 관찰하며 나름의 지론을 재잘대는 아빠의 열정이 붉은 단풍잎을 떠올리게 하는 요즘. 단단히 중독된 등파민을 찾으러 또 다시 산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