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추억
명절날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할머니의 습관은 더 심해지곤 했다.
"저,저기 사,사장.
내, 냉장고에 김치 있어요."
철없는 사촌 동생 녀석이
"할머니는 왜 말도 더듬고 엄마보고 사장이라 그래?" 눈치 없이 떠들어댈 때 꿀밤을 내리치던 중학생 나.
매일 밤 같이 잠들던 할머니가 '말하기'보단 '듣기'에 더 능하셨다는 걸 잘 알았다.
중2병 말기였던 나의 하찮기 그지 없는 고민들을 끝까지 다 듣곤 한 마디 하셨다.
"혜,혜수야 교복은 조,조금만 줄여 입어.
어,엄마가 속상할 거야..."
그 느린 말에 담긴 따듯함으로 내 중2병은 완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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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와서 매일 라면만 드시게 된 습관도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남매 홀로 키운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최애였던 진라면 순한 맛으로 가장의 결연한 의지를 다져오셨다.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다 빠져버린 이빨과 멀어져가는 미각의 안녕 때문인지 몰라도 할머니는 그 라면만 고집했다.
부모님이 몸에 좋고 귀하다는 음식은 상에 모두 올려봤지만 할머니는 고개만 홱홱. MSG 만이 희미해져가는 할머니의 기억 저편의 무언가를 자극할 수 있는 촉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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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할머니 식사를 차려야했던 나에겐 오히려 땡큐였다. 3분이면 되니까.
다 빠진 어금니 대신 앞니로 면발을 씹는 할머니의 입가에 으스러져나온 라면 찌꺼기가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젠 함께 자지도,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내 인생, 내 미래, 취준.
그때 그게 나에겐 최고로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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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호기롭게 들어간 울산항 굴지의 대기업. 서울집에 할머니는 제쳐두고 새 인생 살아보리라 경부선에 몸을 실었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처음 수천명의 구성원 앞에서 사회를 보게 된 그때 나에게도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다음으로는 사,사장님 강연이 이,있겠습니다."
퇴근하고 기숙사서 도보 300M로 가닿는 모래사장에 앉아 사발라면을 눈물로 삼켰다. MSG맛이 바닷물보다 짜디짜게 느껴졌다. 노포에 홀로 앉아 라면을 먹는 기분이 혹독하고도 고독한 젊은 날의 할머니를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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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땐 할머니는 실어증을 앓고 계셨다. 감정도, 표정도 읽기 어려웠다. 나를 알아보는가도 확실치 않았다. 이젠 할머니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은데, 더듬는 말도 듣지 못한다.
유일히 남아있는 할머니의 습관이라함은 매일 라면 먹기. 찬장 빽빽하게 들어찬 파란 봉지 하나를 꺼내 라면물을 올린다. 그리고 자문자답한다.
"할머니 나 이제 어떡할까요?"
귓가에 들려오는 할머니의 눈빛을 읽었다.
"나, 나한테는 우,우리 혜수 마,말 더듬는 거,
주,중요치 않아"
그날도 할머니는 상에 놓인 라면이 팅팅 불을 때까지 나의 흐느낌을 끝까지 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