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그곳에서 전생의 죄를 씻으면 망각의 약을 먹고 환생할 수 있다. 나도 이 과정을 거쳐 지금의 엄마 뱃속으로 들어왔다. 이번 엄마가 몇 번째 엄마인지는 모른다. 전생에 대한 기억을 잊고 내려왔으니까.
하지만 매일 아기집을 어루만지며 부르는 엄마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번 생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안심이 든다. 내 옆에서 손가락을 빨며 자고있는 이 놈만 빼면 말이다.
그렇다. 나는 쌍둥이로 환생했다. 아기별에서 읽었던 <환생 가이드북>에 따르면, 쌍둥이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으며 자란다. 부모님의 사랑을 두고 자기들끼리 은근한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이라는데, 그 싸움은 뱃속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듯하다.
“야, 그만 자고 일어나서 나랑 자리 좀 바꿔줘. 나 거꾸로 있던 게 151일째야. 머리에 피 쏠려.”
아직 다 떨어지지도 않은 발가락으로 놈을 툭툭 쳐 깨웠다. 한 배에 맞물려 있으려면 태아 한 명은 거꾸로 있어야 한다. ‘나가는 문’쪽으로 머리를 두어야 첫째로 태어난대서 자리를 선점하긴 했는데, 이젠 한계다.
“싫어,
요즘 엄마가 기침도 심하고 매일 병원 가는데,
우리 때문에 약도 못 드시잖아.
너 편하자고 움직이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겠어?
난 엄마 한숨 소리만 들어도
내 탯줄도 쪼그라드는 기분이야.”
나보다 작은 놈이 따박따박 말대꾸는. 넌 동생으로 태어나면 기대해라.
그나저나, 엄마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이다. 임신중독증이라는데, 그게 뭐지? 엄마가 임신에 중독됐다는 건가? 엄마는 분명 첫 임신이라고 했는데... 그때 엄마와 주치의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와 녀석은 벽에 귀를 바짝 댔다.
“이대로 버티시면 산모와 아이들 모두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임신중절술을 고민해 보시는 게...”
이윽고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빠 장례식 때도 듣긴 했지만, 그때보다 더 서러운 것 같았다. 엄마의 슬픈 감정이 탯줄을 타고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우리를 둘러싼 양수가 출렁이고 온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벌벌 떨렸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눈을 감고 탯줄만 꼭 쥐고 있었다. 내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깊은 잠에 빠지는 게 우리가 유일하게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일이었다.
‘툭’
이리저리 꿈을 꾸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쌍둥이 녀석이 자기 배에 달려있던 탯줄을 뜯어낸 채 울고 있었다.
“야 미쳤어? 너 뭐하는 짓이야!”
믿을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눈물만 흘렀다. 그 녀석 배에 탯줄을 다시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뜯겨진 탯줄은 말려 올라가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도 알잖아, 내가 너보다 훨씬 작은 거.
나 며칠 전부터 곰곰이 생각해봤어.
그런데 아무래도 엄마를 살리려면,
우리 둘 중 한 명은 사라지는 게 맞는 것 같아.
넌 꼭 나가서 엄마 곁을 지켜.
난 작아서 태어나도 얼마 못 가서
아기별로 돌아가게 될 거야.”
동생의 몸이 점점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나는 사라져가는 동생을 붙잡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아기집은 휘청였고 밖에서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혜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