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달팽이

손바닥 소설

by 안혜수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우포늪 풀잎학교에서 만난 민달팽이와 집달팽이는 모두가 알아주는 커플이었다. 축축하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풀만 먹는 식성부터 느긋하고 아둔한 성격까지 죽이 척척 맞았다. 학교가 끝나고 연꽃 노래방에서 패닉의 <달팽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언젠가 늪을 벗어나 바다로 갈 거라는 꿈까지 함께 꾸곤 했다.


그러나 민달팽이는 내심 집달팽이 등에 항상 얹어져있는 등껍질이 늘 부러웠다. 그것은 집안 대대로 물려져 내려오는 집달팽이만의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집을 등에 업고 태어나는 그 아이와는 반대로 민달팽이네 가족은 비만 오면 몸이 떠내려갈까 나뭇잎 바로 아래 군락을 형성하며 갈치잠을 자야했다. 비온 날 아침이면 거지꼴을 하고 풀잎학교에 가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민달팽이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달팽이에게 이별을 고하고선 홀로 바다로 떠났다. 어차피 집달팽이에게는 집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떠날 용기도 없다는 걸 알았다. 바다로 이어지는 좁고 험한 길은 오직 집이 없는 민달팽이만의 특권이었다. 5개월을 빗물에 쓸리기도, 날카로운 돌 부리에 살점이 뜯기기도 했지만 민달팽이는 이미 떠나온 풀잎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겨우 바다에 도착해 소라공인중개사 사장에게 얻은 한뼘자리 소라 속에 몸을 뉘였다. 그러나 험한 바다 생활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소라집은 편안한 보금자리는 아니었다. 계약이 만료되면 살던 소라를 떠나 다른 소라로 전전하며 바다 생활을 이겨내야 했다. 내집마련이란 늪에서나 바다에서나 민달팽이에겐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내집 없는 바다 생활은 민달팽이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다. 짜디짠 바닷물에 민달팽이의 피부는 점점 두텁고 단단해졌다. 시도때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적응해 헤엄칠 수 있는 양팔과 다리도 생겼다. 거친 모래밭 생활은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갑옷을 입혀주었다. 내 몸이 곧 집이 된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바닷속을 마음껏 헤엄치며 이제껏 맛보지 못한 것들을 먹었다. 돌고래, 문어, 플랑크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해류에 몸을 맡겨 오대양을 넘나들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 자신을 믿고 몸을 누일 수 있었다. 그것은 육지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10년 후 완전한 거북이가 된 그가 풀잎학교를 다시 찾은 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우포늪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였다. 10년 전 늪에서 바다까지 5개월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거북이의 몸으로 바다에서 늪까지는 50분이면 가닿을 정도의 능력이 된 자신이 놀라웠다.


다시 돌아온 그곳에는 풀잎학교 졸업생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급작스러운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 중에는 첫사랑 집달팽이도 있었다. 그는 집만큼은 버리지 못해 바다달팽이가 되어있었다. 그의 등에 얹힌 집은 10년 전의 것보다 월등이 커져있기는 했으나 그 무게가 그를 짓눌러 여전히 느리고 답답한 성미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유롭게 3차원의 공간을 누비게 된 민달팽이와는 다르게 2차원의 땅위 세상을 기며 평생토록 수면 위 태양은 바라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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