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박살난 안경을 고치는 주문은?

손바닥 추억

by 안혜수

안경 쓴 사람이 부러웠다.


그땐 왜 그런지 몰라도 그게 이지적이고, 멋져 보였다. 진지한 생각을 할 땐 손가락 하나로 안경을 추켜올리는 포터 군을 보면 당장이라도 호그와트로 전학을 가고 싶었으니까. 볼드모트와의 접전 끝에 안경을 떨구는 것 보면서 '해리가 이제 각성하겠군'이라는 예상으로 승리의 클리셰를 느꼈다.

그러나 어린 나의 눈은 안타깝게도 시력 2.0에 머물러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기를 쓰고 TV 앞에 앉아 <꼬마마법사 레미>를 시청해도, 어두운 방구석에서 <해리포터 불의 잔>을 읽어도 똑같았다. 매년 실시하는 학급별 시력 검사에서 선생님이 “우리 혜수는 평생 안경 쓸 일 없어서 좋겠다! 껄껄!”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하셨더랬다.


*네뷸러스 (Nebulous) :

안개를 뿜어내어 시야를 가리는 주문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만나게 된 나의 첫 스마트폰 ‘베가레이서’는 나의 마음을 알아준 걸까? 그 친구는 ‘닉값’ 하듯 내 시력을 초고속으로 떨어뜨려줬다. 그 애 뱃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예인 가십거리, 화려하고 자극적인 아이돌 뮤직비디오는 화면 밖 세상을 시시하게 만들었다.


푸른 하늘과 친구 얼굴 대신, 파란색 얼굴책에 내 홍채를 고정시킨 사이, 목은 구부정해졌고, 친구 마음도 몰라주는 내 마음 역시 옹졸해져만 갔다. 그뿐이랴, 카페에 가면 메뉴판 글씨가 맨눈으로는 안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열어 양손으로 줌인한 채 음료를 겨우 시켰다. 그렇게 모든 걸 폰에 의존해서 바라봤다.


* 레너바이트 (Rennervate) :

정신을 잃은 대상을 깨우는 마법


고등학생이 되어 맨 앞에 앉아도 칠판에 글씨가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자 그토록 염원하던 이지적인 여자가 됐다. 엄마 손을 붙잡고 처음 안경점에서 안경을 고를 때 기분이란, 마치 호그와트 입학 전 지팡이 상점에서 딱총나무 지팡이를 골라잡는 해리포터의 심정이었다.


첫 안경을 얼굴에 얹고 엄마를 돌아보며 “어때?”를 외치는 순간, 내 눈앞에는 당황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엄마 얼굴에 주름살이 이렇게 많았던가?’ 늘 자동 블러처리로 바라봤던 엄마의 얼굴 속 눈가에서 깊은 세월의 협곡들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열일곱에 안경을 쓰고 나서야 엄마도 늙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바보 중에 바보. 그게 나였다. 해리가 어린 나이에 그토록 성숙하고 비범했던 이유도, 불편한 진실과 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순간 주머니 속 고개를 내민 ‘베레기’가 까꿍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여행을 할 때도 베가레이서의 쓰레기 같은 뱃속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내 주변이 어떤지도 살피지 못한 내가 더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오큘러스 레파로 (Occulus Reparo) :

박살난 안경을 수리하는 마법


대학에 입학해 지하철을 밥 먹듯 타게 되며 매일 아침 나와 같은 바보들을 발견했다. 양쪽 귀는 에어팟 노이즈캔슬링 모드로 막아버리고 두 눈은 스마트폰이 가리고 있어,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앞에 서 있는 줄도 모르는 바보. 열차 안에 시비가 붙어도 말리기는커녕 카페 메뉴판 보듯 카메라 렌즈로 방관만 하는 바보. 휠체어에 앉아 불편한 몸으로 반듯하게 써 내린 호소문보다, 유명 연예인의 휘갈겨 쓴 듯한 삐뚤빼뚤 자필 사과문을 더 면밀하게 보는 바보까지. 스마트폰이 사물을 보는 시력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야까지 퇴화시켜 버린 것만 같았다.



자문할 때 아닌가. 스마트폰 속 재미있는 ‘썰’ 말고, 우리 주변에 소외된 사람들의 ‘설움’은 없냐고. 내 주변은 과연 건강하고 행복한지 불편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시력을 가지고 있냐고. 그것도 안된다면 안경을 고쳐 쓰고 해리가 세상을 구했듯, 우리도 누군가의 작은 삶을 구할 수 있길 바라며 주문을 외워보는 건 어떨까.


오큘러스 레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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