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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22. 2021

자존심의 덫

강미래는 팔씨름에 이겨서 도경석을 선택한 게 아니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넷플릭스로 보고 있다. 여주 강미래를 사이에 두고 얼천 도경석과 젠틀맨 연우영이 팔씨름 한 판 대결을 벌인다. 팔은 물론, 붉어지다 못해 파래진 목과 얼굴까지 투두둑 힘줄이 솟는다. 당연히 남주 도경석이겠지, 싶었는데 최종 승자는 연우영. 도경석은 한껏 풀이 죽어 설거지를 자처하고, 어깨뽕이 잔뜩 들어간 연우영은 경석의 어깨를 툭 치며 “아프면 병원 가 봐”라고 한다. 승리의 미소 대 패배의 미간 주름.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두 남자의 자존심은 빨간불과 파란불이 교차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경쟁자와 겨루는 게임. 승패의 결과가 참여자의 자존심으로 직결되는 이런 게임은 어쩌면 인생에 놓인 수많은 난관 중 하나일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다.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보다 다른 사람과 친한 느낌을 받을 때, 열심히 한 프로젝트의 결과가 노력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내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지 못할 일로 상사에게 나쁜 말을 들을 때, 아랫사람 업무의 부족함을 이야기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기분 나빠할 때, 아이들에게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는데 새겨듣지 않을 때, 브런치에 올린 나의 글이 댓글 없이 썰렁할 때….     


수없이 자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당할 때마다 상대방을 마음으로 탓하며 화가 나곤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요샌 생각의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친하다고 생각한 건 나지 그가 아니니 기대를 많이 한 내 잘못이요, 내가 상사의 말을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듯 아랫사람도 내 말에 다 수긍할 수는 없으며, 내가 부모 말씀을 다 듣지 않았는데 아이라고 나와 다르겠는가. 내 마음을 고쳐먹으면 자존심 상할 일도 없는데 마음을 옹졸하게 가지고선 괜히 힘들었다. 강미래가 팔씨름을 잘해서 도경석을 좋아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만든 자존심의 덫들을 어여 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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