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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Jun 09. 2022

초등 6학년의 파자마 파티

봉이가 친구들을 사귀고 목구멍 아래 가슴 사이를 늘 두들기던 습관이 사라졌다. 아마 그곳을 누르지 않은 게 한 달 정도인 것 같다. 찾아보니 굽네치킨 고추바사삭 두 마리를 시킨 게 4월 중순이니, 그로부터 2주 뒤부터, 그러니까 5월 한 달 정도 봉이를 보며 안쓰러움에 무거워진 마음을 두드린 게 없어졌다.


“엄마, 이번 주 금요일에 파자마 하기로 했어.”

“정말? 누구 집에서?”

“정준이 집에서.”

“정준이가 초대를 했어?”

“음…. 그런 셈이지? 아직 백 프로는 아닌데, 거의 확실해.”


렇게 말하고 봉이가 하루하루 기대와 설렘에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며칠을 보내다 문제의 ‘이번 주 금요일’이 당일이 되었을 때다. 언제나처럼 고양이 세수를 하고 3분은커녕 30초 양치를 끝낸 뒤 어젯밤에 빨아서 마르지도 않은 옷을 빨래건조대에서 가져가 후다닥 입는다.


“봉아, 오늘 정준이 집에서 파자마 하는 거 맞아?”

“음…. 거의 그럴걸?”


‘거의’라는 말에서 풍겨져 나오는 불안함을 나도 이렇게 크게 느끼는데 당사자인 봉이가 모를 리 없다. 다만 ‘거의’니까 반올림해서 ‘진짜’가 될 거라고 수학적으로 믿고 있는 듯했다. 1년은 기다려왔을 친구들과의 파자마 파티니까, 새드엔딩이 아니라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봉이는 믿고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봉아, 만약에 말이야, 정준이네 집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오늘 파자마를 못 할 수도 있어.”

‘못’이라는 단어에 이미 눈물이 맺힌 봉이였다.

“그럴 때 친구들에게 말해. 오늘 파자마,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다고.”

순간 미간에 맺힌 눈물이 어느새 증발을 하더니 “정말? 진짜? 와~ 나 안 되는 줄 알았는데….”라면서 봉이는 슬슬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 될 것인가. 파자마는 하는 것인가 마는 것인가. 새로 사귄 친구라 부모님 연락처를 모르니 나는 봉이가 하교해서 오는 2시 30분까지 하릴없이 기다렸다.   

  



“엄마, 파자마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어. 나까지 다섯 명이야.”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으며 하는 말이다. 정말 한다고? 우리 집에서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든 감정은, 아이들도 봉이와 똑같이 파자마를 기다렸구나 하는 것, 그리고 정준이네 집이 안 될 것을 대비해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학교를 보낸 봉이 엄마, 나에 대한 뿌듯함!이었다. 봉이 혼자 설레발이면 어떡하나, 아이들은 생각도 없는데, 이런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봉이가 내민 작은 쪽지 속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파자마 멤버 중 한 명의 부모님과 통화를 한 결과, 그분도 당신 아들이 혼자 기대하는 거라고 흘려들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로 연락하던 사이의 친구가 아니었으니, 다섯 집 풍경이 우리 집과 똑같았었나 보다.


봉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야식으로 피자가 좋을지 치킨이 좋을지, 잠은 봉이 방에서 다 같이 잘 수 있는지 거실에서 넓게 자는 게 좋을지 기분 좋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봉이는 아이들을 집 앞 공원에서 만나 8시 30분에 벨을 눌렀다. 봉이를 포함해 아이들은 수학여행도 없는 6학년을 기념하고 훗날에 추억할 첫 파자마 파티에 달뜬 얼굴들이었다. 봉이한테 몇 차례 들은 바에 의하면, 아이들은 수학여행도 가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서글픈 6학년에 대해 푸념을 했고, 누군가 한 명이 “우리 반 전체가 파자마를 하면 좋겠다.” 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파자마 기원 열풍이 불었고, 쉬는 시간에 같이 피구 하며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끼리 “정말 하자!”라며 결행을 다짐했다고 한다. 누구 집이면 어떠한가. 우여곡절을 거쳐 봉이 집에서 스타트를 끊게 되었으니 아이들은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발그레한 얼굴이었다.


인사 목소리부터 우렁차더니 말소리는 컸고, 봉이 방에서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발걸음들은 아래층을 생각해서 제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까이서 듣고, 하는 놀이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기 주관이 뚜렷했고, 의견을 말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슬슬 배가 고플 것 같아 “뭘 시켜줄까?” 물었더니, “굽네 고추바사삭 두 마리요.”라고 시원스럽게 답했다. 이미 답을 정하고 들어왔나 보다.


식탁에서 치킨을 먹고, 거실 TV로 닌텐도를 하고, 끊이지 않는 수다만큼 시간도 11시가 넘어갔다. 한 아이의 입에서 “너희, 솔직히! 우리 반 여자애들 중에서 관심 있는 애 정말 없어?” 하는 질문이 방 안에서 문 닫고 침대에 앉아 있던 내 귀에 또렷이 들렸다. ‘어허, 이거 흥미진진한데!’ 싶으며 방문에 귀를 대고 싶은 욕망이 들끓을 때 ‘사사삭!’ 소리와 함께 봉이 방문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도 이런 일급비밀을, 밤말을 듣는 두 마리 왕쥐가 있는 위험천만한 거실에서 할 수는 없다 정확히 파악해선지 스스로 밤 쥐가 되어 저기 끝방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중요한 찰나에 봉이 방이 가장 끝방이어서 다들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했을까.) 얼떨결에 왕 밤 쥐 신세가 된 나와 남편은 우리의 신세를 보며 풋! 하고 웃었다.


겨우 시리얼이지만 아이들은 아침까지 야무지게 먹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다시 만나 시내 구경을 갔다. 봉이만 가족 여행이 잡혀서 2부 행사에 불참한 불운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여행 노래를 부르더니, 숙소에 와서도 실시간으로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아이들이 올리는 메시지를 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왜 하필 오늘, 가족 여행이야.”라는 푸념이 마치 작년 6학년 2학기 때 승리의 멘트를 듣는 것 같아서 실소가 나왔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생기며 엄마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던 승리가 여드름 나는 청소년으로 변신한 때가 작년 8월부터였는데, 우리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갈까?라는 엄마 아빠의 제안에 친구들과 놀아야 한다고 못 간다고 했더랬다. 봉이는 이제 시작인가, 아니면 한 번의 이벤트일까. 나는 여전히 파자마 파티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봉이를 보며 걱정스러웠다.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예비 중이라 불리고 청소년기가 시작되는 6학년이 전날처럼 설레는 우정과 추억으로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후로 봉이가 그렇게 소원하던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은 기대만큼 원활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을 때 놀지 못해서 쌓인 욕구불만이 해소되기에는 서로가 맞추어야 하는 절대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러다 몇 주 전부터 파자마를 했던 다섯이 평일 서로의 학원 시간을 공유할 만큼 자연스럽게 친해지자, 점점 저녁 시간에 집 앞에서 노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요새는 아예 대체로 학원이 마치는 늦은 저녁에 셋 이상이기만 하면 모여 노는 걸로 정착이 되었다. 공부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인지라 매일 놀러 나가는 봉이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명치를 콱 누르는 듯한 돌멩이 하나가 녹아 없어졌다. 봉이만이 아니라 봉이를 바라보며 엄마가 갖는 말 못 할 스트레스가 컸다.


물론 할 일이 무언지도 모른 채 그저 핸드폰 연락 알림에 귀 쫑긋하는 봉이를 보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가끔 뒤돌아서서 가슴을 쿵쿵 쳤다. 서둘러 학교에 간 아침이면 봉이 방에서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내린 책상 위에 흐트러진 문제집과 노트, 뒤엉킨 이불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여태 1년이면 300번을 말했을 정리정돈은 여전히 안 된다. 친구들과 노는 것까지는 좋은데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이 늦어진다. 봉이의 행동에서 어떤 단서를 달고 무엇을 규제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봉이를 여유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방 외엔 세상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학원도 숙제도 심지어 엄마도 지나가는 파리처럼 여기는 봉이가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의 연애에 정착이 되어가자 그때부터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노는 시각과 시간의 일정함, 해야 할 일을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 준수, 노는 일과 할 일과의 균형 등. 물론 잘되지 않았고, 지금도 고전 중이다. 그런데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즐겁게 놀 친구가 있으니 귀찮고 짜증스러운 삶에 조금 넉넉해진 듯하다.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엄마에게 먼저 적당히 다가온다. 관계를 응원하니 본인에 대한 응원으로 받아들인다. 아마 이렇게 천천히 성숙해가리라. 엄마만 조급하게 굴지 않으면 말이다. 봉아, 파이팅이다. 너의 인생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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