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 Jan 16. 2023

10년의 선물

체감온도가 영하 5도. 1월 들어 낮 기온 10도를 웃도는 날이 계속되어서인지 오늘 오랜만에 집 앞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자동으로 움츠러드는 어깨에 목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겨울인데 겨울답지 않다고 우습게 여기다가 나도 겨울은 겨울이라며 한껏 내민 1월의 손바닥을 시려 마주 잡기가 싫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새해 인사가 오갔던 1월 첫째 주가 지나고, 열심히 세웠던 새해 계획이 시들해져 가는 데 스스로 채찍질을 했던 둘째 주가 지났다. 1월의 절반이 가고 오늘이 16일이라는 숫자 칸에 타고 있음을 깨달으며 작년(불과 한 달 전의 시간에 ‘작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다니!!) 11월에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음에 허망한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간만 갔구나. 내 손에 잡힐 새 없이 지나갔구나. 새해에는 그 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둬야지, 내 손으로 만지고 움켜쥐어야지, 했다. 그렇게 올해의 허망함을 내년의 계획이란 이름의 새옷으로 갈아입힌 뒤 마음에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입은 지 얼마 안 된 그 새옷이 벌써 추레하게 낡은 느낌이 들다니, 어느새 내가 2023년에 적응을 한 것인가, 결국 새해 결심이라는 것도 계절이 바뀌어 옷을 갈아입고 서 있는 마네킹일 뿐인가.     


작심삼일로 그치기 마련인 새해 결심들 중에서 그래도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한 일이 하나 있다. 하루의 짧은 일기 쓰기.

서점을 하는 친구가 서점에서 자체 제작하는 <10년 다이어리>를 새해 선물로 12월 말에 보내주었다. 인기가 많아서 빨리 주문을 서두르지 않으면 재고가 없다는, 매해 계속되는 베스트셀러 품목인 바로 그 다이어리였다. 나를 위해 따로 하나 직접 주문했을 그 다이어리를 보며 나는 10년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2023년부터 시작될 나의 새로운 10년.

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았던 나는 가장 어려운 일이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가끔 자기계발서를 보면 3년, 5년, 10년의 계획을 세워보라는 말이 나온다. 그것이 각자의 인생 설계에서 필수인 것처럼, 그걸 하지 않으면 안주하는 인간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 뉘앙스가 불쾌해 반발심이 일기도 했다. 흥, 그까짓 계획 따위, 없으면 어때서,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최고야, 라고 내 삶의 패턴을 고수했다.

나에게 계획은 늘 1년짜리였다. 그것은 회사의 다음 해 업무 계획과 일치했다. 연말에 한 해 실적 평가를 하고 다음 해 목표치를 세울 때 그 내용은 결국 내 삶의 목표와 계획과 같았다. 다시 말해, 나는 일터와 삶터를 구분하지 않았고, 그것이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증거라고 믿었다. 한 해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실행하기에도 바쁜데 어떻게 그 이상의 계획을 세우나, 집에서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아프지 않고 별 탈 없이 어린이집에 유치원에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무슨 계획을 여기서 더 세우나, 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면 기말고사 준비를 했고, 한 학기가 끝나면 그다음 학기가 나를 기다렸다. 대학에 가기 위해 대입시험을 준비했고, 졸업을 위해 논문을 썼고, 성인 노릇을 하기 위해 취업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맡은 바 업무를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때론 승진에 필요하다 해서 시험 준비도 했다, 결혼을 해야 독립을 인정하는 어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결혼을 했고, 그다음 관문인 아이를 낳았고, 그다음 관문인 둘째를 낳았다. 양육과 회사 업무 그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기 위해 건강을 담보로 달렸다. 많이 상했다.


이태 전 담보물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물리적 상황을 핑계로 퇴사를 했다.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를 자연스럽게 놓고 나머지 한쪽 공간에 머물며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깨달았다. 나는 눈이 있으되 그것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몰랐다는 걸. 나를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인 꿈이 없었다는 걸.

지금껏 나는 하루하루 견디듯 버티듯 열심히 사는 것으로 내 삶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위해서이냐, 라고 물으면 나를 위해서, 가 답은 아니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살았다면 내 건강에 훨씬 더 귀를 기울였을 테고,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며 그것에 가닿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꽉 쥐고 있어야 할지 명확히 구분했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복잡한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하루하루 자전을 하고 있으되 자전의 원리가 무언지 알려 하지 않았고, 공전을 하고 있으되 내가 무엇을 위해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중심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나의 움직임을 멀리서 객관화해 바라보지 못했다. 나의 지금까지의 이 아둔함이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다행히도 나는 죽기 전에 그 시비를 알아차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3년의, 5년의, 10년의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계획이 아니라 ‘목표’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늦기 전에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말이다. 실패들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내가 도전을 했다는 의미이기에 너무 감사할 것 같다.

이렇게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호흡하는 찰나에 나의 친구에게서 온 <10년 다이어리>는 나의 결심을 응원하는 박수와 같았다. 친구에게 받은 10년의 어느 하루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 3650일이 늘 한결같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쓰기의 원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