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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10. 2023

네 마리 나무새의 쓸쓸한 날갯짓

유디트 헤르만 <허리케인(Something Farewell)>에서

누구나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자신의 땅이 있다. 물과 양분을 제공하고 햇빛과 바람이 있는, 자신이 뿌리 내린 그 땅을 우리는 현실이라 부른다. 땅에 뿌리를 내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무처럼 집과 벌이와 일상이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벗어나지 못하기에 벗어나고 싶어 치는 발버둥이 ‘상상’이다. 상상의 순간에서만큼은 그곳이 이곳이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며 중요한 것이 “사소한” 것이 된다. 시간과, 공간과, 중요함의 전복이 일어나는 세계, 상상. 하지만 짜릿한 상상은 찰나에 불과하여 현실처럼 지속될 수 없고, 결국 돌아갈 곳이 정해진 여행과 같으며, 그렇기에 “나무로 새를 조각”하는 행위처럼 애절하고 무모하다. 땅을 현실로 삼은 나무가 새로 변신해도 날 수 없음은 자명하므로.


여기 네 명의 청춘이 있다. 장소는 자메이카 섬. 일상을 뒤엎을 허리케인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A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토착민. B는 그곳에 묘묙처럼 옮겨져서 새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주민. C는 B의 초대로 여행 왔다가 돌아갈 날은커녕 돌아갈지도 정하지 못하는 방랑자. D는 C와 함께 왔다가 출발지로 돌아가는 여행객. 넷은 한공간에 비계획적이고 일시적으로 모였고, 각자의 나무새를 조각하고 있다.


A. 캣. 뿌리가 굳건한 그는 기다릴 줄 아는 남자다. 화가 나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 아내가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화이트레이디 D에게 “좋아해”라고 말하기까지 17일을 참았고, 모두가 포기하고 떠난 자리를 끝까지 지켜서 행글라이더가 날아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사소한 일도 기다릴 줄” 알아서 현실도 욕망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날아가는 새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돌아온다는 거짓말을 움켜쥐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뿐이다.


B. 카스파. 옛 연인인 C와 함께 있고 싶어 C를 초대했으나 C가 늘 D와 함께여서 소외감을 느끼고, A의 시선이 줄곧 향하는 사람이 C인지 D인지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남자다. 그럼에도 그 섬이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곳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고, C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굳건하다는 걸 지치지 않고 호소하는 뚝심 있는 사람이다. 더불어 결정력과 추진력이 있는데, A와의 관계도 돌아갈 날도 정하지 못하는 D를 대신해 티케팅을 하는 사람이 B이다. 그는 상상(행복 추구)을 현실(자메이카 섬)에서 실현하는 결단력이 있는 단단한 나무새다.


C. 노라. 그녀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땅 위에 서 있다. 사랑 혹은 의무감으로 B 옆에 좀 더 머물기로 하지만 그의 일관된 구애에 “한 번이라도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늘 함께했던 친구고 떠난 뒤에는 보고 싶다며 편지를 쓰지만 D의 돌아감에 동참하지는 않는다. 무엇도 포기하기 아깝다는 듯 사랑도 우정도 놓지 않는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새가 무언지, 정해진 관계인지 새로운 관계인지 관계와의 단절인지 혹은 자기 자신의 변화인지 알기 위해 결정의 시간을 유예하는, 여전히 조각되고 있는 미완성의 나무새다.


D. 크리스티네. 자메이카에 와서 정지된 자연 속 삶을 경험한다. 일주일간의 쾌활한 신기함이 슬슬 싫증과 도시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색될 때 허리케인이 그녀의 마음속에 인다. A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은 허리케인 경보가 하루 네 번에서 열두 번으로 잦아지는 것처럼 점점 더 위험하게 D의 마음을 휩쓴다. A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 D는 그것들을 “사소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사소한 것이 되는 상상에 흔쾌히 빠진다. 그리고 결국 현실로 ‘도피’한다.


현실과 상상의 서로 다른 배합률이 네 명의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현실력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떠다니듯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가진 밀도대로 현실에 굳건히 서 있으려는 구심력과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정해진다. 각기 따로 떨어져 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밀도와 작용력이 다른 존재들이 모였기에 혼란스러움이 생긴다. 각자의 바람이 서로 뒤엉킬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또한 배합이 어떠하든 그들은 새가 되고 싶은 나무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허리케인>에서 바로 그 쓸쓸함을 읽는다. ‘허리케인’이라는 제목이 주는 긴박함 대신 Something Farewell이라는 부제가 주는 아쉬움에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작별’을 유보할 수 있는 기제로써 무서운 ‘허리케인’이라도 바라는 무모함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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