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에게 <지금 이대로 좋다>를 선물한 사연
노안이 온 지 4년 정도 된 것 같다.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으면 되지만 15분 이상 보는 건 무리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최근에 도서관 큰글자책 서가를 알게 됐다. 나도 큰글자책을 편집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글자가 커서 교정 보는 일이 그렇게 수월할 수가 없었다. 아, 맞네, 큰글자책을 빌려 보면 되는데.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큰글자책 서가에 가서 그 자리에서 몇 권 읽고 몇 권은 빌려오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는 <지금 이대로 좋다>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몇 년 전 출퇴근길에 즉문즉설을 계속 들었던 때가 있었다. 하도 듣다 보니 어떤 이의 사연을 들으면 스님이 어떻게 대답할지 예상이 되고, 내가 추측한 답이 실제로 들어맞을 때쯤 되자 자연스럽게 듣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니 스님의 말씀을 책으로 볼 생각은 못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책장을 넘기는데, 큰글자여서이기도 했지만 마치 시집처럼 한 페이지에 짤막한 내용을 여백 있게 구성한 때문인지 내용이 눈에서 뇌로, 다시 마음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아주 쏙쏙 들어왔고,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뿅망치로 맞는 느낌이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고 평소 품었던 의구심을 들여다본 것처럼 혜안 있는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서서 읽다가 아예 대출을 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어젯밤 늦게까지 계속 읽었다. 읽고 넘어갈 수 없는 구절들은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며 마음으로 기억하려 했다. 그러다 ‘화단에 핀 꽃’이라는 제목의 글을 만났다.
식물원에 갔는데
마음에 안 드는 꽃이 하나 있어요.
우리 집 화단이면 뽑아버려도 상관없지만
남의 집 화단이라면 뽑을 수가 없지요.
그럴 때는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 좋다> 161쪽
이 은유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두 분은 아파트 생활을 하시면서 근교에 주말농장을 만들어 텃밭을 가꾸셨는데, 한 해 한 해 농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점차 늘더니 주말농장이 계절농장으로 정착된 지 오래였다. 흙을 밟고 살다 보면 불편해도 자유로운 삶이 아파트 생활과 비교도 안 될 터이니 그 경로는 무척 자연스러웠겠다.
내가 가끔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는 무슨 얘기 끝에 아버지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아니, 이제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양반이 무슨 나무를 심는다고 하는지 몰라. 내가 얼마나 사정사정 하지 말라고 하는데 듣는 게 뭐야, 또 말린다고 화를 낸다. 나 힘든 건 생각도 안 해. 내가 미워 못 살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셔서 나무밭에 풀 뽑고 오신다. 바지에 흙을 털지도 않고 흙 묻은 발로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오신다니까.”
“밤에 자다가 깨 보면 또 술을 한잔하고 계셔. 그렇게 마시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말을 안 듣는다.”
“숟가락만 떼면 바로 코를 골고 주무신다. 아이고, 세상 편한 양반이지.”
“아니, 어떻게 여행 갈 때 자기 영양제만 딱 맞춰서 가져갈 수가 있냐. 내 건 안 챙기고. 숫자 딱 맞춰서 가져가더라. 하이고. 그렇~게 자기 생각밖에 못 하지.”
어머니가 그렇게 아버지 때문에 속상한 일을 말하며 당신 신세 한탄을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아버지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시는 분이야. 하지 말라고 하면 홧김에 더 할걸? 그냥 놔둬요.”
어머니는 분명 당신 편을 들지 않는 딸한테 서운했을 것이다. 편은 아니어도 같이 흉을 봐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잔소리를 하지 말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말이냔 말이다. 흐흐.
그런데 아버지 입장은 또 다른 것 같았다. 한번은 밥을 먹다가 아버지가 분명 식사를 다 하셨는데 다 드신 당신 그릇과 수저를 그대로 두고 일어나셨다. 나는 속으로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우리 아버지가 당신 드신 그릇을 그냥 두고 일어나시나 싶었다. 그래서 상냥하게 웃으며
“아부지, 다 드셨어요? 그릇 싱크대에 두세요.”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네 어머니가 그릇을 싱크대에 두라고 해서 싱크대에 가져다 뒀더니 그렇게 두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 어차피 해도 혼다고 안 해도 혼나니까 그냥 둔다.”
나는 뭐라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당신 뜻대로 하는 건 맞지만, 어머니도 당신이 정한 작은 원칙들에 아버지의 행동들을 가두려고 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남의 집 화단에 핀, 마음에 안 드는 꽃이 어머니에게는 아버지의 몇 가지 태도들일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아버지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며 사시는 분이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 가면서도 아버지 수발을 드는 건 어머니이다. 오랜 습관으로 아버지의 밥을 차려드리고 설거지를 해주시고 옷가지부터 속옷까지 빨래 해주시고 집안청소며 제사 준비까지 모두 어머니 몫이다.
아버지는 그저 밖에 나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나무도 심고, 풀도 뽑고, 자전거 타고 나가 막걸리도 사 오고, 막걸리 한 사발 드시고 까무룩 잠이 들어 주무시다 새벽에 깨면 눈이 안 좋으니 책은 못 읽고 무음의 TV 화면을 보시다 다시 잠이 드는 생활을 반복할 테다. 그 생활에는 당신의 부인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고, 부인의 잔소리를 피해 오늘은 또 어디로 마실을 나갈까 하는 궁리가 있겠다.
누가 지옥에 살고 있을까. 두 분 다이겠지만, 특별히 해준 만큼 받지 못해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남편에게 원망과 미움의 나무를 키우는 어머니가 어서 그 지옥에서 탈출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잔소리만 참으면 생활의 편리를 그대로 유지할 터이니 어머니의 바람과 별개로 지금처럼 사실 것이다. 어머니의 일상도 그대로일 것이다. 두 분이 드실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버지 흉도 보고 원망도 하고.
다만 어머니는 당신의 불편함을 언젠가 감사한 마음으로 보상받겠지 하는 기대를 버리셨으면 한다.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해봐야 소용이 티끌만큼도 없을 것임을 수용하고 그냥 그 마음을 버리셨으면 한다. 나는 어머니가 너무도 안쓰러워 아버지라는 사람이 남의 집 화단이라는 것을 어머니가 빨리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찾아보니 <지금 이대로 좋다> 큰글자책을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비매품이어서 시중에 없으면 어쩌나 했다. 나는 바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문을 했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온 선물이니 소중하게 한 장 한 장 유심히 읽을 것이다.
1년 전에 당신 마음 풀어내라고 무선 일기장과 볼펜을 선물하니 그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언젠가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몰래 가 읽어보니 “오늘은 예쁜 딸이 왔다. 미역과 생선을 사 들고 왔다. 오랜만에 와서 반가웠다.”고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도 사용하실 줄 몰라 법륜 스님 유튜브도 시청 못 하시는데 이제라도 눈 나쁜 당신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큰글자책을 보내드리니 다행이다.
어머니가 스스로 굳게 닫은 마음지옥의 문을 열고 나오시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남은 생애 동안 정말 당신만을 위한 하루하루, 일분일초를 아주 소중하게 꽉 채워 사시기를 기도한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가 예쁘고 행복하게 당신의 날들을 마음껏 가지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