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연희동 골목 후미진 곳에서 영업을 했던 <밤의 서점>이 대신동으로 이사를 해 처음 방문을 했다. 그곳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하면, 이전보다 넓은데 분위기는 여전히 (혹은 더) 좋다는 리뷰가 있어서 도착할 때까지 설레었다.
이 골목이 맞나?
이전 <밤의 서점>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서점에 도착할 때까지 세 번의 의심이 필수였다. 이 골목이 맞나? 하며 골목에 들어서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이 골목이 맞나? 두 번째 의심을 하고, 오르막길 중간쯤에서 왼쪽으로 꺾을 때 이 골목이 진짜 맞나? 하며 세 번째 의심을 한다.
첫 번째 방문 때는 골목에 들어섰다가 다시 큰길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되돌아갔고, 두 번째 방문 때는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되돌아 내려갔고, 세 번째 방문 때는 오르막길 중간쯤에서 왼쪽으로 꺾다가 몇 걸음 안 가 다시 발길을 돌려 오르막을 더 올랐다.
방문할 때마다 내 안의 의심과 동행했던 장소였는데, 그래서 거의 마지막에는 ‘의심’을 버리고 이 골목이 맞다는 ‘확신’을 데리고 갔었는데, 이제 ‘의심’도 ‘확신’도 필요 없다니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서점 운영과 이사에 고양이 손만 한 도움도 주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다. 그저 서점이 어디에서 어떻게 새둥지를 틀었을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집들이에 가는 기분으로 ‘의심’과 ‘확신’ 대신 ‘응원’이라는 친구를 옆구리에 끼었다.
새둥지로 새처럼 날아서
연대 동문길에서 그곳을 향해 걸었다. 그래도 약속 장소로 가끔 다니던 동네 어딘가에 서점이 자리를 잡았다니 끝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지도가 여기라고 가리키는 곳에 다다랐다.
헉!
이곳은 예전의 장소와 비교하면 근접성 면에서 번화가나 다름없었다. 연희동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면 늘 지나치던 ‘이대부고’ 정류장 앞 건물 1층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나 입구 쇼윈도는 예전의 두 배, 아니 세 배, 아니 다섯 배는 되는 거 아냐?
나는 놀란 눈으로 일단 사진을 찍고 보았다.
너무 경탄한 탓인지 쇼윈도 안 내용은 보이지 않고 유리에 비친 바깥세상만 커다랗다.
출입문을 열어 들어섰다.
와!
경탄은 계속되었다.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의자가 벽을 따라 빙 둘러져 있는 것이 커피숍 같았다. 점장님 말씀으로는 북토크, 세미나 등 행사 장소로도 예약이 많다고 한다.
잠깐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공간에서 눈을 떼고 앞쪽 서가로 향했다. 책장들이 여유롭게 공간을 두고 서 있었고, 책장마다 콘셉트를 가지고 책들이 진열되고 있었다. 점장님들의 손글씨 책소개 글은 역시나 이곳이 <밤의 서점>이라는 걸 증명했다.
넓은 서점에서 책장들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고, 그런 만큼 진열된 책들이 쏙쏙 눈에 잘 들어왔다. 이전 공간에서는 내 몸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조심스러웠다면, 지금 공간에서는 서가에서 서가로 내 몸을 돌리고, 이동해 걷고, 책을 꺼내 펼쳐보는 모든 행동이 제약을 받지 않아 한결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나만의 공간에 들어왔다는 안정감은 그대로인 채 말이다.
버스데이 블라인드 북
공간이 바뀌어서일까, 내 마음이 일 년 새 달라져서일까.
내가 <밤의 서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은 유일한 종목은 ‘생일문고’였다. 서점에서 공식적으로 소개한 생일문고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밤의서점 생일문고는 작가의 생일 외에 아무 정보도 적혀 있지 않는 블라인드 북입니다.
인생이 모험이듯 생일문고도 모험이다.
생일을 맞은 지인에게 블라인드 북을 사서 선물하면 선물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포장지를 풀 때까지 자신의 생일이 어떤 작가의 생일과 같을지 몹시 궁금할 것이다. 때론 내가 아는 유명한 작가일 수도, 때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는 작가이든 모르는 작가이든 그 책이 내 취향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발상은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구매자는 되지 않았다. 책이야말로 취향이 있고, 나랑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그 작가의 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지 않나? 내가 이 책을 선물했을 때, 받는 이가 자기 취향의 작가나 책이 아니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어쩔 것인가. 이것이 작년까지의 내 완고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홀린 듯 생일문고 서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 생일 날짜의 블라인드 북이 있는지 찾았다. 빈 날짜도 있으니까.
오, 있었다.
그것은 자그마했고,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는 곧 다가올 내 생일에 나를 위한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계산을 했다.
집에 돌아와 포장지를 뜯을 때까지 얼마나 궁금했을지는 정말 사본 사람만이 안다. 뭐가 그리 궁금했을까. 나에게 운명의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내게 지금의 내가 잘하고 있다고, 너는 작가가 될 운명이라고 그의 온 생애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나는 빌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연
떨리는 손으로 포장지를 뜯었다.
마침내 운명의 책이 등장했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었다.
나는 익숙한데 낯선 책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 책장에 갔다.
역시.
나는 <인연>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펼쳐본 책이었다.
다만 내가 가진 <인연>은 샘터에서 1996년에 출간된 초판의 1998년의 27쇄본이었고, 블라인드 북에서 만난 <인연>은 민음사에서 2018년에 출간한 전면 개정판의 2023년의 19쇄 판본이었다.
1996년의 <인연>과 2018년의 <인연>
‘인연’
나는 이 단어가 참 좋았다.
어쩌면 그 단어에 이끌려 어린 시절 그 책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제목을 모르고 샀는데도 이 책이 내게 다가왔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이것이 정말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쳤다.
목차와 내용은 그대로여서 첫 장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체로 다 아는 ‘수필’이었다.
나는 마치 처음 그것을 대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얼마나 많이 읽었던 구절인가.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청초한 느낌은 더하면 더했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게 수필이라는 장르는 이 한 구절이 주는 느낌으로 정의되었다. 손에 잡히지 않고 전혀 알 수도 없지만 왠지 느낌만은 알 것 같은 그런.
운명을 바랐던 내게 이 책은 ‘인연’으로 대답한다. 무어 그리 대단한 게 있겠냐고, 뭐 그리 힘을 주고 로또 당첨되듯 기대하냐고, 힘을 빼라고. 그저 너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이 좋은 인연이라고 대답한다.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로 초코파이에 초를 하나 꽂았다. 나의 좋은 인연들이 나의 생일을 축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