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잠들어서인지 새벽 공기가 어깨를 시리게 감쌌다. 창문을 닫으려 일어났다가 어두컴컴한 밖을 보았다. 해를 기다리는 새벽의 어둠은 한밤의 어두움과 달리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 중년 여인이 팔을 저어가며 부지런한 양발을 서로 경쟁시키고 있다.
새벽 어둠은 밝다. 아침 해가 세수를 다 끝낸 듯 맑은 기운이 사알짝 위를 향한다. 하늘로 떨어지는 땅속 별똥별 같다. 침대에 누우려다 말고 화장실로 가서 치솔에 치약을 짰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엔 저 별똥별을 잡으러 가야겠다. 분명 여전히 여름 속에 있는 나를 유혹하는 몸짓이렷다.
공원 산책로엔 아침잠 없는 노인들뿐일 거라는 예상이 찬란히 깨졌다. 반팔 반바지 차림의 젊은이들이 뛰고 있었다. 젊은지 아닌지 실은 모른다. 뛰고 있으니 젊은이였다, 내겐. 검게 그을린 종아리가 핏빛 반바지 밑으로 단단해 보이는 한 여인이 내 앞으로 뛰어가더니 이내 유턴을 해서 뛰어온다. 속도가 매섭다. 튼튼한 그녀의 새벽이 내게 전해졌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수줍은 양팔을 흔들어 보았다. 느릿한 내 두 다리가 조금 빨라졌다.
초록으로 짙어지려는 연두의 잎들이 무성했던 5월에 이곳 공원에 왔었다. 여름은 낮이 뜨거우니 밤에 두어 번 온 것 같다. 밤이기도 했지만 나뭇잎 색에 눈을 맞출 여유를 줄 만큼 이번 여름이 만만치가 않았다. 헉헉대며 온전히 집에 돌아가기에 바빴겠지. 그런데 오늘 이 아침.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는 떨어진 진갈색 잎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에 흩날리기까지 했다. 무성했던 숱이 다 빠져 내 머리칼처럼 숭숭 비어 있었다.
대체 언제였던 것이냐. 너희는 언제 가을을 맞은 게야.
나는 나무들에게 물었다.
노랑과 주황이 그라데이션된 나뭇잎들이 대답처럼 내 앞에서 흔들렸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요.
그랬나. 나는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잠들어 있었나.
음. 무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눅진하게 달라붙어 있는 잠과 한 몸이었던 듯도.
그래도 단풍들아, 서운하다. 내가 몰랐던 사이에 이렇게 변하기 있기 없기.
나는 괜히 시비였다.
얼마나 친했다고 서운한 척을 했다.
찾아오지 않은 건 나였으면서, 나 몰래 너희는 변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단풍의 색이 너무 어여뻐서였나.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가 눈앞에서 가을을 확인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나. 나의 사라진 시간들이 알고 보니 빼앗은 녀석들이 있어서였다고 변명하고 싶었나.
부지런히 가을을 보러 와야겠다. 아침저녁으로 단풍잎들을 살펴야겠다. 나뭇잎들에 내가 더 살갑게 굴어야겠다. 수많은 방문자들을 품는 그들의 넉넉함 속에 30여 일의 내 가을도 맡겨야겠다. 내 가을을 한 자락 한 자락 포개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