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재 구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랑 Sep 10. 2020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이 쌓아 올린 평범함에 의문을 던지다. '디디의 우산'을 읽고


며칠 전에 심하게 가슴이 아파서 응급실을 찾아갔다.


숨을 쉴 수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에 어떻게든 자세를 바꿔보았지만 아무리 자세를 고쳐보아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응급실에서는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가 심장 부근이라 심장 관련 질환을 검사하기 위해 피를 뽑고 가슴에는 무엇인가 전자음이 많이 나는 기계를 주렁주렁 달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심박측정기가 내 머리 위에 달려있었다. 주삿바늘이 무서워 약만 먹으며 버티는 나에게 응급실에 홀로 누워 링거를 꽂은 내 모습은 참으로 낯설었다. 옆 침대에는 중년의 여성과 의사가 이런저런 상담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들리는 단어가 심근경색, 마비... 이렇게 심각한 말들이어서 내가 새삼 큰 병일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갑작스럽게 많은 상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만약에 나도 저런 심장병이라면? 정말로 내가 곧 죽는다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평생 동안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면, 응급실 오기 전에 검색해보았던 병명들이 머리를 스쳤다.



두려움.


공포.



무엇에 대한 공포였을까.



이제까지 내가 누리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 좀 더 깊이 생각해보았다. 단지 좀 불편해지는 삶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나는 한 발자국 멀어지는 것이었다.



새삼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하는 한 인간을 떠올리는 평균적인 잣대를 생각해보았다.


건강한 20-30대 젊은이. 정확히는 남자. 어딘가가 아프거나, 다른 성적 취향을 갖거나, 너무 가난하지도 너무 부유하지도 않은 근면 성실하게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적당한 개인 생활을 영위하는 남성. 나조차 머릿속에 떠오르는 평범한 젊은이는 ‘남성’이다.



거기에서 난 가장 기본인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두려웠다. 소외감이 들었다.



단지 삶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들었다.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였다.



‘정상’이라고 말하는 기준에 조금씩 멀어지는 삶.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d.



여성으로서 겪었던 약자의 삶, 거기에 다른 성적 취향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삶.



어떤 삶일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하지만 정작 내가 그 상황이 된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삶을 살아가며 바라보는 혁명은 어떠할까.


민주적인 혁명이라 할까.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에서 ‘악녀 아웃’이라는 ‘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삐딱할까. 얼마나 위협적일까.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랑하는 이와 보낼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공증’이라는 법적 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 조카가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는 삶. 같이 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자신에게 연락 오지 않을 것을 늘 염두에 두며 그 사람의 귀가를 매일같이 기다리는 삶.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소외감.


‘기준’과 ‘범주’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말.



공포.


두려움.


절망감.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내가 과연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받아줄 수 있을까.


사회라는 것이 바뀌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사회는 하나도 변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변화의 흐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 중 한 가지가 사라진다고 가끔 상상하면 ‘평범성’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주 다양한 프레임과 권력과 혐오가 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권력 없음’에 대한 혐오.


‘약함’에 대한 혐오.



우리가 싸워야 할 진정한 상대는 내 안의 나와의 직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내 안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


남을 찍어 누르기 위한, 효율적인 권력을 향한 무의식적 욕망을 인정하는 것.



이 소설은 어쩌면 우리들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은밀한 소설이자 인간이 지닌 배타성과 무리 짓기, 경계선 짓기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혼자 읽기엔 버거웠지만 함께 읽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던 책. 오늘도 내 일상에 감사한다..라고 끝맺을 때의 '일상'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를 이루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