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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May 25. 2017

베이징의 꼬마 청소부는 ‘희망의 출처’가 되었을까?

타블로의 <출처>를 들으며

“한 잔의 커피 그 출처는 빈곤

종이비행기 혹은 연필을 쥐곤 

꿈을 향해 뻗어야 할 작은 손에 

커피향 땀이 차 

Hand-drip

고맙다 꼬마 바리스타”

-타블로 <출처>


‘꼬마 바리스타’라는 표현. 누군가는 귀엽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바리스타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이벤트성 1일 체험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것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종이비행기 혹은 연필을 쥐곤 꿈을 향해 뻗어야 할 작은 손”에 그런 커피는 영 어울리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꼬마 바리스타’라는 가사가 하루 종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 꼬마는 노래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꼬마 바리스타’는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꼬마를 제 마음속으로 다시 호출하였습니다.


10년 전 중국 베이징으로 여행을 갔었을 때입니다. 중국어를 배우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구 치솟아서 신나게 이곳저곳을 홀로 돌아다니며, 중국인들과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하철 노선도 하나에 의지해 종횡하던 중 베이징의 놀이공원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티켓을 사고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장면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점 앞에서 아주 작은 체구의 아이가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해 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던 저는 그 잔인하면서도 슬픈 장면을 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담아야 한다”는 치기 어린 사명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중국의 빈부격차를 고작 지니계수로 배웠던 제게 그 장면이 주는 충격파는 컸습니다. 


아직 ‘노동’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야 마땅한 이 아이는 파란색 바지를 입고 축 처진 어깨로 바닥을 쓸고 있었습니다. ‘꼬마 바리스타’가 아니라 ‘꼬마 청소부’였던 그 친구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특유의 무구함이 아닌 노동자의 피로함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악순환의 순환계 나의 소비는 거머리 

한 사람의 가난이 

곧 한 사람의 럭셔리

저 멀리 내가 신고 있는 신발 

만든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맨발”

-타블로 <출처>


이와는 대조적으로 또래 정도로 보이는 다른 아이는 부모님이 사준 아이스크림을 옆에서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는 햄버거 세트를 두 개 사서 그 아이에게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고작 열 살짜리 꼬마였습니다. 청소구역을 물어보고 같이 걸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 호의에도 크게 고마워했던 그 꼬마의 얼굴을 오랜만에 떠올려봅니다. 


“나 하나 편하기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 thank you. And I'm sorry.

나 하나 숨쉬기 때문에 숨죽인 사람들, thank you. And I'm sorry.

나 하나 서있기 때문에 무너진 사람들, thank you. And I'm sorry.

이 모든 세상의 출처인 사람들, thank you. Thank you.”

-타블로 <출처>


평소에는 ‘출처’가 학교나 회사에서 리포트를 쓸 때나 주로 사용하는 단어지만, 이 노래를 통해 “이 모든 세상의 출처인 사람들”을 한 번씩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스무 살이 됐을 그 친구. 

어릴 적 손에 못 쥐었던 연필로 근사한 미래의 계획을 하나씩 적으며, ‘희망의 출처’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원(希願)합니다.  




‘인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매거진에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부족한 글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글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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