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아들도 고민하는 탈모, 유통업계의 과제는?
“헤어스타일에 변화가 좀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의사표시도 아니고, 사회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인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좀 심하게 탈모현상이 일어났는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속살을 보여 드리게 됐습니다.”
지난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삭발을 한 모습으로 단상에 오른 노건호 씨가 한 말이다. 그의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특유의 위트가 느껴진다.
유통을 주제로 글을 전개하는 이 칼럼에서 정치 얘기를 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탈모’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도 깊은 고민에 빠뜨리게 하는 탈모.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탈모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선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탈모 관리 시장의 규모도 4조원대로 추산된다.
올 상반기 홈쇼핑 업계 1위인 GS홈쇼핑의 판매 분석 결과 탈모샴푸가 주문 수량 1위를 차지했다. 7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인데도 27만개가 넘게 팔렸다. 보통 홈쇼핑 시장에서는 여성 고객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 제품의 경우 남성고객의 비중이 20%에 달하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한방 성분과 단백질 등이 들어 있는 이 제품은 지금까지 100회를 훌쩍 넘는 매진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제과 회사도 탈모 관리 시장에 손을 뻗었다. 롯데제과의 건강기능식품사업부인 헬스원은 탈모관리 브랜드 ‘골든캐치’를 론칭했다. 국산 맥주효모를 활용한 탈모 예방 제품을 선보였는데, 맥주효모는 미네랄과 단백질, 비오틴이 풍부해 모발의 영양보충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LG생활건강은 탈모관리 전문브랜드 ‘닥터그루트(Dr. Groot)’를 출시했다. 닥터그루트는 한국인의 두피와 모발에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을 면밀하게 연구한 브랜드다. 증상에 따른 맞춤형 처방을 제안함으로써 두피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각질과 가려움 등 당장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열감, 기름짐 등 잠재적인 탈모의 원인 요소까지 해소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아울러 유통업계는 한국 시장뿐 아니라 탈모인구가 2억 5천명에 달하는 중국 시장도 함께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중국의 샴푸 주요 수입국에서 한국은 2015년과 2016년에 1위를 차지했다. 일본과 프랑스가 각각 2위, 3위다.
다시 노건호 씨의 얘기로 돌아오면, 그는 자신처럼 탈모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국의 탈모인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와 동병상련의 정을 전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미 다시 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노건호 씨는 유머를 곁들여 표현을 했지만, 실제로 탈모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영국 임페리얼컬리지런던(ICL)의 클레어 히긴스(Claire Higgins) 박사는 특히 남성형 탈모에 대해 집을 나가고 싶지 않아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모발학자 데이비드 킹슬리(David Kingsley) 박사는 더 나아가서 탈모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들에게도 사회생활과 부부관계에 영향을 미쳐 정신적 외상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유방암 선고를 받은 한 여성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그녀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놀랍게도 “내 머리카락을 잃게 되는가”였다. 머리카락을 잃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정체성과 여성성을 상실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탈모 관련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만 보고 무작정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단견의 소치다. 철저한 과학적 연구와 세심한 마케팅이 요구된다. 더불어 개개인의 특성(식단, 건강상태, 생활습관)을 반영한 모발관리 코칭과 심리 상담 등 한 단계 진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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