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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Jan 24. 2018

돌돌핍인의 국가 나르시시즘, 저열한 중화민족주의의 허상

돌돌핍인의 국가 나르시시즘, 저열한 중화민족주의의 허상


돌돌핍인(咄咄逼人). ‘기세가 등등하다’는 뜻의 이 낯선 조어는 최근 중국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당시 중국 경호원들은 한국의 기자를 집단으로 폭행했다. 그 어이없는 뉴스를 본 필자는 10년 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때, 중국 유학생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 기자와 경찰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폭력시위를 일삼았던 그 야만적인 광경. 불유쾌한 기억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당시 중국 경호원들은 한국의 기자를 집단으로 폭행했다. 정말 어이없는 뉴스였다.


10년 전 서울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광기 어린 시위. 이날 티베트 사태에 대해 문제제기하던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폭력을 동반한 거친 항의였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과거 역사에 대한 중국의 독단적인 태도 또한 지난 몇 년간 딱히 바뀐 게 없다. 되레 더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중국은 현재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과거를 직조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정치적 윤간이다.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의 말마따나, 모든 역사는 현대사(現代史)인 것이다. 고로, 동북공정을 단순한 학술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단견의 소치다. 국가의 정치적•외교적 명운이 걸린 이 중대한 사안을 학적 논의의 대상으로만 국한하는 것은 중국의 외교적 전술에 말려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 동북공정 뒤에 자리 잡고 있는 팽창적 중화민족주의의 음험한 의도를 간취해낼 수 있어야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20세기 미국의 헤게모니가 바야흐로 마침표를 찍고, 21세기에 중국이 세계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 말했다. 실지로 개혁•개방 이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일군 중국은 증대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그의 주저(主著) <문명의 충돌>에서 중화와 일본을 각기 다른 독자적 문명으로 분류한 바 있다. 두 강대국 간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헌팅턴은 또 중국이 동아시아의 지배국이 되려고 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중국이 세계를 뒤흔들면 세계는 새로운 균형을 되찾기까지 30년에서 40년이 걸릴 것이다. 중국은 그저 또 하나의 열강일 뿐이라고 깎아 내려도 소용없다. 중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주역이다.” 
리콴유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중국은 세계 역학구도에서 ‘가장 큰 주역’으로 부상했다.

1994년 싱가포르의 전 수상 리콴유는 이렇게 말했다. ‘뒤흔들면’이라는 가정 어법이 현실화됐다. 그의 말처럼 중국은 현재 세계 역학구도에서 ‘가장 큰 주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화려한 웅비는 강퍅한 중화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


중화에서 중(中)은 중심을 가리키고, 화(華)는 문화를 나타낸다. 문화와 문명의 중심임을 의미하는 것. 이렇듯 중화사상의 밑바탕은 자기중심, 자기 도취성 인식이다. 이런 국가 나르시시즘이 폭력성과 결합할 때 주변 국가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다. 


최근 왕왕 드러나는 중화민족주의의 공격성은 모종의 우월감과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함께 G2로 운위될 정도로 높이 비상한 중국은 속으로는 ‘대중국 공영권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주의 깊게 경계하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아울러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의 100여 년을 제외하고, 장구한 세월 동안 패권 국가였던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중화민족주의의 역사 자체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우선 ‘민족’이라는 어휘 자체가 근대에 기획된 발명품이다. ‘민족(民族)’이란 개념은 18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만들어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인 1900년 전후에 일본어로 정착되었다. 


그 후 ‘민족’ 개념은 중국 내셔널리즘의 형성에도 동원되었다. 계몽사상가 량치차오는 1901년~1902년 일본 망명 중에, 한족을 물론이고 청조 영토 내의 소수민족까지 포괄한 새로운 민족 개념으로 ‘중화민족’을 상상해냈다. 요컨대, 중화민족주의의 역사 자체는 100여 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량치차오가 중화민족을 ‘상상’해냈다는 것이 특기할만하다. 여기서 민족주의 사유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민족주의가 한낱 ‘상상’의 결과라면,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고 고안된 정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그 유명한 표현을 빌리면, 중화민족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인 것이다.


흔히 개국시조에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지배의 정당화를 획책하는 치자(治者)의 이데올로기를 슬쩍 은폐하고, 신격화를 통해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 역시 신화와 유사한 기능을 하기에 위험하다. 언제나 공산당에 의해 민족주의가 조장되고 도구화될 수 있다. 이때 오성홍기 아래 모인 중국인들은 동원의 대상으로 지위의 주체성을 상실한다. 객체화되는 것이다. 유독 중국의 민족주의 앞에 ‘관제’ 혹은 ‘관방’이라는 접두어가 많이 붙는 이유를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4월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행사를 지켜보던 중국인들. 물리적인 마찰도 일어났다. 머리에 돌을 맞고 피를 흘리는 한국기자도 있었다.

중국 인민들이 민족주의의 이러한 측면들을 인지하지 못하면, 공산당은 더욱 민족주의를 정치도구로 남용할 것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형용 모순의 노선을 걷고 있는 공산당이 계속 사회주의로 국민들을 통합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민족주의가 악용될 공산이 크고, 공산당에게는 꾀나 달콤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13억 각양각색의 중국인들은 저마다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있을 텐데, 이들 모두를 ‘중화민족’ 네 글자로 치환하는 중화민족주의는 애초에 개개인의 다양한 특성이나 인생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민족주의는 그렇게 섬세한 논리가 아니다. 이 무지막지한 환원주의는 집단(=민족)의 단결과 응집을 촉구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집단을 적대시하는 태도로 전화하기도 한다. 


나치즘처럼 중화민족주의에도 민족 차별의 사고가 함유되어 있다. 중화사상을 흔히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화(華)는 한족이고 이(夷)는 이민족이다. 즉, 한족이 최고로 우수하며 이민족은 천시한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근자에 중국이 주변국들에게 보이는 오만방자함에는 이러한 사상적 연원이 뒷받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화민족주의 입장에서, 중국과 주변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는 애당초 성립될 수가 없다. 중국은 말 그대로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국은 중국이 시혜를 베풀어야 하는 열등한 대상인 것이다. 이런 상하관계의 형식화가 조공관계이다. 

주변국은 중국이 시혜를 베풀어야 하는 열등한 대상인  것. 이런 상하관계의 형식화가 조공관계이다.

그런데 중국의 한 성에 불과한 크기의 작은 나라 한국이 드라마와 가요 등의 대중문화로 중국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중국 청소년들이 한국의 인기 스타에 열광하는 모습에 ‘대국’의 체면이 구겨졌다. 쉽게 말해, 중국 국수주의자들의 배알이 꼴린 것이다.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에 생채기가 나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혐한’이라는 반발심리가 격하게 노정된 것이다. 이 역시 중화의 편협하고 왜곡된 자화상이다.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의 삶을 영위하기 전 한때나마 중국이라는 대상을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했던 사람으로서 중국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애정과 관심도 무척이나 많다. 중국의 민족주의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며 그 정당한 민족정신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 다만 ‘중화의 자부심’을 외치며 이웃 나라의 거리를 점거하고 난동을 부리는 극단의 중화주의는 배격해야 마땅하다. 이유가 뭐가 됐든 다른 나라의 언론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도 거센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중국이 나치즘이나 혹은 자신들에게도 크나큰 상처와 굴욕의 기억인 일본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진정으로 희원(希願)한다. 일본이 경이로운 경제적 성취에도 정치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짐을 지고 있는 상황을 숙려해봤으면 한다. 근린국가들에게 존중받고 지지받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런 고차원적인 박애주의를 백범 김구 선생은 ‘사해동포주의’라 하지 않았던가.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인 노웅래 의원은 <블루 차이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이 진정한 미래의 대국이 되려면 경제력과 군사력 못지않게 정신문화의 대국적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올바를 이해를 통해 이웃을 이웃으로 대접하고 함께 공존을 모색할 때 중국이 진정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탁견이다.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벽된 시각 역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식과 태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노웅래 의원의 전언(傳言)은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다. 우리도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올바를 이해를 통해 이웃을 이웃으로 대접하고 함께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협력과 상생의 한•중 관계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논객닷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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