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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Mar 01. 2018

유통 상식사전 #19. 비엥 비에이르

- 멋진 어르신들의 존재미학(한국교직원공제회 사보 기고)

유통 상식사전 #19. 비엥 비에이르

- 비엥 비에이르(Bien-Vieillir), 멋진 어르신들의 존재미학

(한국교직원공제회 사보 기고)


비엥 비에이르(Bien-Vieillir), 프랑스어로 ‘만족스럽게 나이 들기’를 의미한다. 단순히 세월이 흘러 저절로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만족스럽게(Bien)’ 나이 든다는 것. ‘노화’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개념이다.


여용기 할아버지의 ‘멋’, 박막례 할머니의 ‘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족’과 ‘나이 들기’의 조합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소 초라하고 슬픈 그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신체가 쇠약해지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나아가서는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음울한 과정과도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나이 듦’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멋지고 당당하게 나이 들 수 있다는 믿음, 비엥 비에이르!


만족스럽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일단 ‘멋’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닉 우스터’, ‘남포동 꽃할배’로 불리는 여용기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패션감각을 자랑한다. 마스터 테일러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핑크색 모크넥, 체크무늬 베레모, 롱코트, 빨간 양말 등 다채로운 패션 아이템을 자연스럽고 멋들어지게 소화한다. 감각적인 코디와 당당한 포즈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2030세대에 뒤지지 않는 ‘핏’을 자랑하는 그의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한국의 닉 우스터’ 여용기 할아버지. 그의 남다른 '핏'!!


5만 명에 가까운 팔로어를 거느린 이 ‘패션 인플루언서’에게 도처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구두 전문 브랜드인 탠디는 여용기 씨와 협업해 자사의 크래프트 슈즈인 ‘블랙라벨’을 성공적으로 홍보했고, 롯데백화점은 여용기 씨가 론칭한 수제 정장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그는 그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패션센스와 멋에 대한 철학을 비즈니스에도 접목해 성공한 케이스다.


여용기 할아버지와 구두 전문 브랜드 탠디의 협업


독일의 저널리스트 프랑크 쉬르마허 박사는 “텔레비전, 영화, 광고를 불문하고 노인들이 종적을 감춰버렸기 때문에 개인의 노화는 더욱 눈에 띄는 현상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엔 70대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가 있다. 많은 네티즌들은 그녀의 방송을 보고 ‘귀여우시다’, ‘사랑스럽다’ 등의 댓글을 많이 단다. 언뜻 70대 어르신에게 감히 해서는 안 될 말 같지만, 그만큼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1인 방송을 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에게 쏟아지는 그 흔한 저열한 악플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르신에 대한 공경은 악플러도 숙지해야 할 최소한의 도덕인가 보다.

싱그러운 70대 인플루언서 박막례 할머니가 상품을 설명해주는 롯데홈쇼핑의 '막례쑈'
기존 쇼호스트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친근한 화법


미국 패션잡지 <보그>와 인터뷰까지 한 이 싱그러운 할머니를 롯데홈쇼핑이 모셔 와서 ‘막례쑈’를 연출했다. 기미크림을 직접 바르며 그녀는 “느그들 필요한 대로 짜서 써”라고 말한다. 촬영 현장에 나와 있는 남자 스태프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며 샴푸의 효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전달한다. 손녀딸과 한번 만나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기존 쇼호스트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친근한 화법으로 상품을 설명하는 그녀의 매력에 주문량이 폭증했다.  

미국 패션잡지 <보그>와 인터뷰까지 진행한 박막례 할머니. 손녀에게 스타일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방부터 치워야 한다고 응수한 박막례 할머니의 센스!


자식보다 나은 위메프의 ‘텔레마트’


멋과 쾌를 무기로 예전의 무기력한 노인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은 소비생활도 ‘만족스럽게(Bien)’ 영위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시니어 고객의 니즈와 정서를 면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그들이 불편 혹은 불만을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품과 서비스에 담아내야 한다.


위메프가 보여준 발상의 전환이 좋은 예가 된다. 위메프는 소셜커머스 업체이기 때문에 사실 시니어 고객들은 주타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불편을 외면하지 않았다. 위메프는 모바일 쇼핑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50대 이상 고객들을 위해 유선으로 결제와 배송안내까지 가능한 전화 주문 서비스인 ‘텔레마트’를 출시했다.

'자녀분들에게 귀찮은 모바일 쇼핑 부탁은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에 공감을 한 시니어들이 적잖을 게다.


이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니 자식 뒀다 뭐하나? 자식들한테 스마트폰 사용법 좀 물어보면 되지”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젊은 사람들만큼 IT 디바이스에 대한 이해가 빠르지 못하다. 설명을 들어도 바로바로 흡수가 되는 게 아니며, 자식한테 ‘디지털 문맹’임을 굳이 재확인시켜주고 싶지도 않다. 또 학교 마치고 혹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녹신해진 자식들에게 모바일 쇼핑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 단순히 젊은 사람들보다 스마트폰에 덜 익숙한 게 문제가 아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때론 섭섭하기도 하고, 약간 창피하기도 하고. 이렇듯 여러 복잡한 정서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위메프는 그런 어르신들에게 간단한 해결책을 제안한 것이다. “전화 주세요. 다 해결해드릴게요!” 얼마나 속 시원한가. 자식보다 낫다.


어르신들에게 자존감을!


일본의 한 서점은 시니어 고객에게 컨시어지 서비스(concierge service)를 제공한다. 좋은 책과 음반을 안내하고 추천해준다. 서점에서도 대접 받는 느낌을 선사하는 것이다.


잠실에 위치한 대형 복합쇼핑몰인 롯데월드몰에서는 연중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특히 1층 아트리움은 가장 집객이 많이 되는 장소로서 인기 연예인의 사인회, 신차 전시 등 각종 프로모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톰 크루즈의 레드 카펫 행사가 진행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이 아트리움에서 이색적인 무대가 열렸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로 구성된 시니어 합창단이 멋진 하모니를 선보인 것. 이들은 누가 뭐래도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물건 하나 더 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어르신들에게 자존감과 추억을 안겨 드리고자 했던 지혜가 돋보였다. 무분별한 시니어 마케팅이 판치는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는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라는 가사가 있다. ‘찬란한 미래’는 젊은 세대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다. ‘비엥 비에이르’를 외치는 어르신들도 그들의 멋진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존재미학이리라.     

‘찬란한 미래’는 젊은 세대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다. ‘비엥 비에이르’를 외치는 어르신들도 그들의 멋진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존재미학이리라.


앞으로 ‘비엥 비에이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유형의 어르신들, 이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프로모션 전략을 수립하는 마케터들. 이들 모두에게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들어보길 권하며 글을 마친다.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경영경제 연구공간 ‘비즈코노미’ 대표. <매일경제> 지식우버링 필진, <데일리그리드> 경제전문 필진, <아시아엔> 트렌드 전문기자 등으로 활동 중. 학보, 사보 등에기고하고 있음. 유통산업의 변화상을 주제로 한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기고 및 강연 문의 sbizconomy@gmail.com(hyetak@nate.com)


* 위 글은 한국교직원공제회 사보 <The-K 매거진>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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