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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헤더 Jun 02. 2021

칸이 건넨 말

3부


우리는 칸이라는 큰 꿈을 꾸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 변화는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커진 만큼 새로운 고민도 생겨났다.

주 

주어진 문제가 없어도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게 된 게 가장 크지. 전공 수업 때나 다른 공모전에서 해왔던 건 브랜드랑 과제가 정해져 있는데 이건 해결할 문제부터 우리가 제시하는거니까. 그리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것도 그냥 하면 된다는 걸 느꼈어. 처음 도전할 때 망설였다고 했잖아. 두려웠지만 그래서 배운게 더 많았고, 날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줬어. 이게 아니었으면 큰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나는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일단 해보고 결정하는 스타일인데, 칸 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건 이런 마음까지 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만약 내가 칸을 하지 않았더라면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국제광고제를 처음 시작할 때의 목표는 '수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광고제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이 

상 받으면 좋았지. 일단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으니까. 근데 확실한 거는 다른 것과 달리 이 아이디어 내는 동안은 상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조금이라도 찝찝하면 그 아이디어 끝까지 끌고 가지 않았지. 이거다!!! 싶을 때만 움직였어.


주 

맞아. 우리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런게 심사위원 눈에도 좋을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러니까 상은 동기부여 역할을 해줬지. 칸이 학생부문을 만든 이유는 자발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고민하고, 기술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지 생각하게 하려고 아닐까? 시작을 칸으로 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사실 우린 다른 광고제를 할 생각이 없긴 했지.


이 

맞아. 그랬어.   


지금 이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다. 속상한데 미련은 없고. 그래도 참 멋졌어 뭐 그런 생각? 그 미련이 없다는 게 참 어려운 건데... 그게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고. - 2018년 5월 12일 편지 소연이 혜원에게


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이디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을 때. 그리고 올해 1월에 너한테 다시 하자고 카톡 보낼 때. 힘들었던 건 인사이트가 나오기 전이야. 정말 마른걸레 짜는 느낌. 인사이트 나오면 그 희열 때문에 정말 좋은데 그 이후에 디테일을 다듬는 과정이 또 힘들지.


이 

인사이트 나오기 직전이랑 아이디어 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볼 때. ‘이 아이디어 좋은거 맞나?’ 의심이 들 때 있잖아. 꼭 필요한 부분인데 항상 어려웠어. 근데 그럴 때 꼼꼼히 따져봐도 좋으면 진짜 괜찮았던 것 같아.


주 

맞아. 다음 날까지 아이디어를 묵혀두고 괜찮은지 꼭 확인했지. 그리고 스스로 마음에 안드는 아이디어 낼때?  준비해온 아이디어 말하기 전에 밑밥 한 번 싹 깔잖아. (웃음) ‘저 오늘 진짜 구린데.’ ‘오늘 저 뭐 없어요.’ 근데 서로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건 재밌지. 나는 별로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발전시켜주기도 하잖아.


이 

시너지!! 그리고 우리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내는 게 더 어려웠어. 상 타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인 건 또 아니었잖아. 칸으로 시작해서 기준이 높았던 것 같아.


주 

우린 ‘내 자식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려고 했어. 그게 아니라면 많이 출품하려고 했을거야. 자랑스럽게 내 아이디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힘들었지. 그런데 매번 이 생각하면서 그럴거면 예술을 해야지 왜 광고를 하고싶어하나 생각했어. 나를 투영시킨 아이디어를 만들고 싶은거면 내가 광고를 하는게 맞나.


이 

국제광고제에서 상 받는 광고랑 티비에서 나오는 광고의 갭이 너무 컸어. 지금도 광고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내가 광고업계에서 무언가 바꿔나갈 생각은 왜 안 했을까 싶었어. 웃음을 주거나, 신선한 요소를 넣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제안하려고 애써볼 생각은?근데 이게 그 안에서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이런 접점을 찾아나가는 게 광고인으로서 사회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도 내가 그 안에서 내 역할을 다 해보고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주 

맞아. 광고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게 광고라는 느낌은 아니었지. 우리가 낸 솔루션은 보통 브랜드가 이런 일을 하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브랜드 입장에도 좋다는 것이었으니까. 그 때 창업동아리 하면서 나는 광고가 아니라 프로덕트 만드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 했어. 근데 내가 하고 싶은 건 직업의 일부분일텐데 그동안 그것만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 했던 거 같기도 해. 사실 광고회사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은 아니거든. 어떤 일을 하게되든 국제광고제를 하면서 재밌다고 느꼈던 요소를 만드는 건 내 태도에 달렸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일은 아직 세상에 없을 수도 있어.


이 

맞아. 세상에 없으면 만들거나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주 

‘조직에 들어가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면 어쩌지’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빨리 회사에 들어가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그냥 이런 고민했던 걸 들어가서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맞아. 우리가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봐야지.


주 

4년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이 

‘함께 할 사람이 있어서’야. 처음으로 돌아가도 혼자였다면 해낼 수 없었을 거고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했을 것 같아. 그리고 ‘일처럼 여기지 않았던 것’.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그랬던 걸까?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어.


주 

맞아. 대체할 수 없는 팀원이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지. 나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일단 해보긴 하는데 오래는 못해. 근데 이건 꾸준히 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어. 올해에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에서


마지막 칸을 제출하고 우리는 동대문의 한 카레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첫 칸을 제출한 주말에 함께 갔던 여성 리더의 강연에서 ‘창업할 준비가 돼서 퇴사한 게 아니라 함께 할 팀원이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는 대표님의 이야기가 이제야 조금 와닿았다. 광고제의 키워드는 사실 4년을 한 뜻으로 함께할 수 있었던 서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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