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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Oct 22. 2017

주말의 일일 여행지 한남동에서 Paris를 만나는 방법

네다섯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늘 '함께' 가던 곳에 '혼자' 가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린다.


한강진역에서 내려 쭉 걷다 보면 낡고 페인트 벗겨진 하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현솔이와 나는 그 안에 모여있는 매장들 - MMMG, 프라이탁, D&Department, 앤트러사이트 - 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오늘은 저녁에 이태원에서 약속이 있었던 일정상 오후 시간이 떠버리게 되어 혼자 한남동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상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왔던지라 익숙한 개찰구, 익숙한 장소인데 역 출구를 나서기 전에 마음이 두근댔다. 한 편으로는 걱정도 조금 되었다. 여행할 때의 나는 그 지역의 이방인이기에 혼자 밥 먹고 놀러 다니는 것이 자유롭지만, 오늘은 주말이다. 게다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가을 날씨 덕에 모두가 나들이에 한창이다. 이렇게 핫한 주말에! 서울 한복판 한남동에서! 혼밥, 혼놀족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어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함께 한남동을 거닐 때에는 이런 사진도 찍는다 (하하)



신경 쓰이고 두근대던 마음 때문일까.


익숙하던 그곳이, 또,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맨날 나가던 2번 출구가 아니라 1번 출구를 선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솔이랑 가보았던 샐러드 가게 말고, 전부터 가고 싶었던 새로운 샐러드 가게에 도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롭게 도전한 곳은 아보카도 전문으로, 샐러드 스시가 유명한 '루트(ROOT)'이다. 역시 여행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게 미덕인가. 평소 점심값의 2배를 기꺼이 지불한다. 먹고 싶었던 샐러드 스시는 맘에 쏙 들게 맛있었다. 건강하고 든든하게 먹기 좋으면서 진한 아보카도 맛도 느껴진다. 함께 먹었던 요거트 주스도 아주 맛있었다.




잘 읽지 않던 여행기를 꺼내 들었고,

다른 사람의 여행을 읽으며 내 여행을 떠올린다.


어릴 땐 즐겨 읽던 여행기를 언젠가부터 잘 읽지 않는다. 아마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고 나면 그 글에 얽매이지 않을까, 나만의 글이 안 써지면 어떡하지 싶은 (바보 같은) 우려와 걱정 때문에 무의식 중에 여행기를 피해왔다고. 오늘에서야 조심스레 고백해본다. 그러다 만난 책이 있다. 카피라이터 김민철 님의 〖모든 요일의 여행〗.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무의식 중 피해왔던 여행기를 읽어 내려가자
또 다른 여행이 펼쳐졌다.

바로
내가 했던

여행들이.


맨 처음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을 때, 압축된 문장 안에 꽉 차 있는 여행지들이 팝업처럼 튀어나와 머릿속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의 책을 허겁지겁 구매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즉흥적으로 기획된 오늘 일일 여행의 동반책으로 낙찰되었다.



그녀의 여행과 닮은 내 여행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이 날이 유독.


# 일요일이 있는 여행

"그저 비가 오는 것뿐인데, 세상이 나를 등지는 느낌이 든다. 그저 몇 개의 가게가 문 닫았을 뿐인데, 세상이 나를 향해 문을 닫는 느낌이다. 한 가게 주인이 나에게 불친절했을 뿐인데, 온 도시가 나에게 불친절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저 길을 못 찾았을 뿐인데, 이 여행 전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마음의 과장법은 순식간에 여행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버린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하다는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욕심이 버려졌다. ... 보란 듯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우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네, 라며 낄낄거렸다."

-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그때의 나는 첫 유럽여행이었기에, 매 분 매 초를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욕심에 런던에서의 6일, 파리에서의 6일을 수많은 계획과 실천으로 꽉꽉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파리에서의 다섯째 날, 집시들에게 소매치기를 당할 뻔하고 놀란 마음에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때 든 생각이, '쉬어야겠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당시 나에겐 느긋한 일요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음 날 과감히 늦잠을 잤다. 매일 8시에는 일어나 여행할 준비를 하던 내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고 침대에 누워 밀린 웹툰을 봤다.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 근처 마레 지구를 걷고 또 걸었다. 닫혀있던 가게들도 유리창 너머 구경하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삼켰다.


많은 악사들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이 분들이 했던 음악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홀로 유럽 여행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컨셉진.

그렇게 한참을 천-천-히 걷다 도착한 셰익스피어 공원에 도착해 컨셉진을 읽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을 구경했다. 동네 친구 만나듯, 런던에서 만났던 은준&수경과 재회하여 메르시에 갔다.


친구들을 보내고는 집 앞 노천카페에 앉아 따뜻한 핫초코를 마셨다. 한껏 차가워진 저녁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들어왔다. 마지막 날 저녁 식사로는 새우와 베이컨을 잔뜩 넣은 알리오올리오를 만들어 먹었다. 다운 받아왔던 예능을 보면서 말이다.



이상하게 이 날이 기억에 참 많이 남는다. 집시들 때문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던 파리가, 어느새 마지막날의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파리로 덧대어져 있다. (런던 2페이지에서 끊겨있던 유럽 여행기를 2년 만에 다시 재개하게 해주다니, 역시 여행은 대단하다)



혼자만의 시간은 책 한 권, 음반 하나, 커피와 빵이면 충분하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즐겨 듣는 음반 하나,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가보고 싶었던 베이커리의 빵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물론 장소가 한몫 아니 두 몫을 하긴 했다. 한남동이지 않은가. 외국인들도 많고, 멋쟁이들도 많았어서 책에 한참 빠져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앤트러사이트 안에 펼쳐진 풍경이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오늘의 여행 역시 특별하다. 


일상 중 하나였던 공간에서 여행을 시작했고, 인스파이레이션 넘치는 공간에서  3D 팝업책 같은 여행기를 읽으며, 그 날의 공간과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때의 감정을 다시 한번 만끽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5시간. 그리고 쳇바퀴 같았던 한 주를 또 새롭게 마무리해줄 좋은 원동력.


마지막 사진은 (나름)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리프레쉬가 필요한데 시간이 없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일일 여행지 한남동 이야기를 마칩니다. 일일 여행에 어울리는 좋은 책이나 매거진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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