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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Jul 26. 2017

동피랑이 더 좋아, 서피랑이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같은 질문이지만 난 고를 수 있어.

01. 동피랑

먼저 통영을 여행했던 이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받은 곳이 '동피랑 벽화 마을'이었다. 좁은 골목을 아름다운 그림과 색으로 수놓은 벽화 마을이 사진 찍기도 좋고, 둘러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소문대로 아름다운 벽화가 가득했다.



'피랑'은 절벽의 순수 우리말 표현이라고 한다. 절벽 위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아랫마을의 전경은 꽤나 멋졌다.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등 밝은 지붕 색을 택한 통영의 건축 규칙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알쓸신잡 통영 편에 보면, 김영하 작가가 재미있는 통영 집 지붕 이야기를 해준다. 통영에서 집을 지으려면 건축 심의를 통과해야 하며, 벽은 하얀색 지붕은 주황색, 초록색 등 밝은 색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꽤 많아 시끌벅적했던 동피랑 마을에서 가장 좋았던 두 가지가 있었다.

1)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그려져 있던 벽화: 대부분 눈 앞에 바로 그려져 있는 벽화여서 찬찬히 살펴보지 않았으면 놓칠 뻔했다.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 속 덩그러니 놓여있던 작은 공간 벽에 그려진 벽화가 마치... 문을 열면 앨리스의 원더랜드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어서. 한참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2) 하늘 향해 우뚝 솟은 태평양 여관의 목욕탕 굴뚝: 높은 곳에 있다 보니 되게 멀리까지 보였는데, 자꾸 눈에 밟히는 기둥 녀석이 하나 있었다. 태평양 여관이라고 크게 쓰여있는 옛날 목욕탕 굴뚝. 사진전이나 교과서에서만 봤었던 그 길쭉한 목욕탕 기둥을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했다. 오밀조밀 낮은 주택들 사이에 고고한 학처럼 쭉 뻗어있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던 셈이다.




02. 서피랑


서피랑은 기대하지 않고 갔다. 동피랑이랑 가까운데 이름은 서피랑이어서,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슬슬 걸어가 보았다. 역시 기대치 않은 곳의 기습공격인가. 조용하고 고즈넉-한 서피랑이 맘에 쏙 들어 결국 마지막 날 서울 가기 전 한 번 더 방문했다.


동피랑과 대비되는 조용한 서피랑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서피랑 공원 맨 꼭대기에 '서포루'가 자리 잡고 있다. 나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서포루 난간 한편에 앉아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을 닦아내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 - 천국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 한참을 있다가 어렵사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아름다운 꽃길을 만날 수 있다. 노란 국화와 핑크빛 코스모스가 가득한 길을 나 홀로 걸으며 이 좋은 길을 맘껏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조금은 감격스럽다. 걷기만 해도 좋은 길을 이렇게도 담아보고, 저렇게도 담아보고 하다 보면 이 곳에서의 시간 역시 훌쩍 지나간다. 꽃집에서 보는 해바라기 말고, 나만큼 키가 큰 오리지널 해바라기는 덤이다.




처음 던진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서피랑이 더 좋아.


마지막 날 박경리 선생님의 생가터를 들렀다 가겠다고 배낭과 통영 꿀빵을 바리바리 싸들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어디라고 명확하게 쓰여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주택가에 있는 것 같아서 한참 둘러보다가 포기했다.


대신 박경리 선생님 생가터로 착각했던, 쓰러질 것 같은 폐가 앞 평상에 앉아 계신 할머니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몇 개 남지 않았던 뻥튀기도 손에 쥐어 주시고, 몸빼바지 주머니 구석구석 뒤져 나온 흑설탕 캔디도 주시고, 막내딸이 새우잡이 배 네 척이나 가지고 있다는(!) 성공한 자식 농사 얘기도 듣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처녀 혼자 여행 왔냐며, 큰 - 일 난다고 손을 내저으며 소스라치게 놀라시는 모습도 어찌나 정겨웠는지. 따뜻한 온정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피랑 길 둘러보기
01. 이런 미용실을 보면 지나칠 수 없어 찰칵


02. 우체통 본지도 오래됐잖아.


03. 오랜 시간이 깃든 구둣장인 아저씨의 통나무


04. 똑부러지는 막내딸 김서운의 시 '서운하긴 뭐가 서운해!'


05. 마지막날 서피랑은 반대편 길로 올라가보자.


06. 문학도로서 가슴 쿵하게 와닿은,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이라는 것은...'


07. 난 이 곳이 박경리 선생님 생가터인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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