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약사 Mar 11. 2021

김씨할머니오늘도 안녕하신가요?

오늘은 무더위에 KF94로 숨 막히던 작년 여름의 어느 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다 보니 크고 작은 피부질환으로 약국에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김씨할머니를 처음 만난 그 날은 유달리 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느 때처럼 약국의 문이 열리고 뜨거운 바람과 함께 왜소한 체격의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약국을 두리번두리번 거리 시던 할머니는 제게 다가와서 말씀하셨죠.


 "아이고~ 약사 양반 내가 요즘 여기저기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는데 왜 이러는교"


어르신들은 종종 증상을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시곤 합니다. 그럴 때는 상담을 통해 이 분이 정말 불편하신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을 해야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할머니의 성함이 김복자이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 있으며, 할아버지를 먼저 사별해서 보내시고 혼자 사시다가 지금은 아들과 함께 살고 계시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까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요새는 머리카락도 숨풍 숨풍 빠지는 게 이제 죽을 때가 됐나 싶어서 걱정이 된다 아이가"


말씀을 듣고 할머니의 머리를 살펴보니 군데군데 빈 곳이 눈에 띄네요. 어느 날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많이 빠지는 걸 느끼시고 건강이 염려되어 무언가 도움이 될 것이 없나 알아보러 약국에 오신 분이셨습니다.  

보통 남성형 탈모의 경우는 남성호르몬의 과도한 활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여성형 탈모의 경우에는 영양부족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가 많고요, 김 씨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남성호르몬이 많아지면서 탈모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요.


"여성형 탈모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요. 보통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빠지시는 것이면 두피 쪽에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영양분을 보충할 제품들을 보여드릴게요."


콜라겐 효모 복합제와 종합 미네랄 제제를 함께 드렸습니다. 보통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를 챙겨 먹기 번거롭다고 '하나만 줘'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김 씨 할머니는 그러지는 않으시네요. 충분한 상담이 끝나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영양제 2개 하셔서 OO만원입니다."


"뭐가 그렇게 비싸? 만원만 깎아줘."


"어머님 이 제품은 할인이 되지 않는 제품이에요. 대신 엄청 좋은 제품이니깐 꾸준히 잘 챙겨 드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좋은 건지는 알겠고, 만원만 빼줘."


열심히 상담하고 나서 결제하는 순간! 가격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는 저만의 대처 노하우가 있는데요.


“그러면 일단 오늘은 정가에 가져가시고, 드시고 효과 있어서 다시 오셨을 때 조금 빼드릴게요. 어떠세요?"


보통은 이렇게 말씀드리면 알았다고 가져가시지만 우리의 김 씨 할머니, 강적입니다. 이 정도에 넘어가지 않네요.


"그럼 여기 파스 하나만 끼워줘. 내가 또 올게~"


기어코 파스 매대에서 한방파스를 하나 가지고 가시네요. 그래도 김 씨 할머니 의리는 있으신 분이어서 그 뒤로 한두 달에 한 번씩 약국에 방문해 주십니다.


"거 내가 맨날 먹는 거 있지? 그거 한통씩 줘"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김 씨 할머니의 머리숱이 조금 더 풍성해 보이네요.


"먹어보니깐 좋은 거 같아. 내가 동네 할망구들한테 이야기 잘해 줄 테니깐 만원만 빼줘봐"


그래도 건강하신 거 같아서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언젠가 할머니 동네 친구분들도 꼭 약국에서 뵐 날이 오겠죠? 할머니, 영양제 꼬박꼬박 잘 챙겨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야 니 잘못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