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지 처럼
대학교 때의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다이어트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해서."
"이번엔 포기 안하고 잘하고 있어. 정확히 3주 지났는데 3키로 정도 빠진것 같아!"
"어머머머 대단하다! 너 그렇게 살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매우 예의바른 친구이다. 25년을 알고 지내지만 예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듯 하다. 절대 상처주는 말 못하고, 본인도 상처받는 말을 절대 듣지 못한다. 서로 좋은 말만 해주는 오래된 친구사이이다. 오래된 친구인데 좋은 말만 골라서 한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난 좋은 말만 골라 하는 부류는 아니지만(오히려 촌철살인으로 욕먹기도 하는 편) 이 친구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 이게 최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듯 하다. 이렇게 일상의 대화로 전화통화가 끝나고 난 부지런히 아이 저녁을 준비한다. 냉동실에 감춰진 초당 옥수수를 재료로 초당옥수수 솥밥을 지을 계획이다. 소금 버터에 촥촥 비벼먹으면 아... 넘나 맛나겠지만... 아이만 먹이기로.
금요일 새벽. 6시에 눈이 딱! 떠지는 것은 배가 고파서일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8시55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다. 나 자신과. 아이를 급히 등교시키고 운전을 해서 무역센터 메가박스에 9시5분 도착. 카운터에가서 티켓을 사고(이미 시작한 영화라) 초입부를 놓쳤지만, 무사히 2명이 관람 중이던 영화관에 착석했다. "THE ROSES (더 로즈: 완벽한 이혼)"
우연히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게 되었는데, 딱 내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겠는가. 무슨 내용인지 주인공인 아이비 로즈(Ivy Rose: 올리비아 콜맨)이 요리사인듯 했고,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서 직접만든 거대한 케이크를 손으로 뭉게더니 집어 던지며 각각의 접시에 서빙하는것이 아닌가. 순간 빵 터진 이 매력적인 장면은 영화관에서 봐야겠다 싶었다. 더군다나 남편 역(테오 로즈 Theo Rose)으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오는데 모처럼 꼭 보고싶은 영화가 생긴것이다.
완벽하게 사랑하던 부부, 언젠가부터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바뀌게 되고 갈등은 깊어져만 간다. 갈등의 최고조는 케이크 던지기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진심으로 케어하지 않는 친구들(피하고만 싶은)과의 집들이 파티. 내가 언제 몰락하는지 기대가 큰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앞에서 극의 감정 폭발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 아닐까. 블랙코메디답게 슬퍼야 하는데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은 비주얼과 색감에서도 너무나 완벽했다. 남편(건축가)이 설계한 집 모양으로 부인이 만든 완벽한 케이크를 뭉게버리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던지는 순간 아이비의 인내심 에너지가 바닥이 난 것 같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 라고 했던가. 그들도 늙어가는 사랑, 상황에 적응하는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려하지만...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
영화를 보면서 로즈 부부보다 왠지 친구들과 주변인들에 대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친구들이란... 인간관계란...
좋은 말만 해줄 때는 좋다가고 듣기 싫은 말 한마디에 돌아서더라는... 혹은,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몇 십년 우정이 수포로 돌아 가더라는... 그리고 심심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또 연락이 오고가고.
'위대한 게츠비'에서 그랬던가. 나이 들어 가면서 얇아지는 것은 머리카락과 전화번호부라고. 나도 상처받지 않으려 진심을 배푸는 것에 점점 인색해 지는걸 느낀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했겠지. '섹스 앤더 시티'에서 캐리가 '비관주의를 매일 보습제 처럼 발라야 한다'과 했었지. 이게 나이들어 가는 느낌인가보다.
모처럼의 재밌는 솔로 영화데이트가 건전지를 새로 갈아 끼운 것처럼 활기를 준다. 생각할 것도 생기고, 얘기할 거리도 생기고, 아참... 그리고 자라에서 산 흰색 세일러 팬츠가 여유있게 맞으니 왠지 "날씬해진" 기분이네. 하하하하하하
옥수수 좋아하는 사람에게 꿀조합 초당옥수수 솥밥과 버터: 이보다 간단할 수 없다.
초당옥수수 솥밥 (4인분)
재료: 쌀 4컵, 육수 4컵(없으면 솥에 다시마 한조각), 초당옥수수 200그램, 가염버터
방법:
1. 쌀은 씻어서 30분 불린다.
2. 초당옥수수는 알을 분리시킨다.
3. 육수를 넣고 물량을 맞춘다.
4. 중각 불에서 물이 끓을 때까지 익힌다.
5. 한 번 저어준다.
6. 약한 불로 10~12분 끓인다.
7. 10분간 뚜껑을 절대 열지말고 뜸들인다.
8. 가염버터를 얹어 서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