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속죄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8월 28일 목요일 정확히 26일 전, 49세의 나이에 9년 이라는 공백을 뒤로하고, 살 뺄 결심을 하였다. 하루하루 붕괴되어가는 나 자신을 다시 똑바로 바라보는 것 부터가 도전이었던 시작.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가를 따지며, 나 자신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다. 애써 12월까지라며 서두르지 말기를 내 자신에게 신신당부 하였건만, '내일은 하루 종일 굶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도저히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던 반바지 단추를 채우고, 이제 시간은 흘러 반바지를 입기에는 추운 날씨가 되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결심을 꾸역꾸역 지키며 가을을 맞이한다.
체중계와 나는 영원한 평행선인 것을 인정하고, 정체기를 겪은 날, 그와(체중계와) 이별했다: 한 달 후 쯤 잘 지내는지 연락이나 한 번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예전의 옷들을 네 단계로 구분했다.
레벨 (1): 꼬옥 맞는 옷, 단추는 잠기고 생활은 가능하나 좀 불편한 옷
레벨 (2): 조금 끼는 옷, 단추는 잠기지만, 금방 단추가 총알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옷
레벨 (3): 아주 꽉 끼는 옷, 단추 안잠기는 옷
레벨 (4): 팔도/다리도 안들어 가는 옷: 10년 가까이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게임의 레벨을 깨듯, 우리 아들 말대로 레벨 업그레이드를 하듯 매일 도전 할 계획이다.
어제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계모임에 가는 날이었다. 새로 샀지만(쇼핑 중독처럼 세일하면 꼭 한 벌씩 사서 걸어놓기만 한 옷) 입지 못했던 바지를 겨우 입고(레벨 (1)에 해당 하는 것) 기분좋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간다. 몸이 무거워 혹은 은둔하기 위해 매일 운전했던 버릇을 버리니, 주변에 재밌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슬쩍 들어가서 아이쇼핑도 해본다. 꽁꽁 얼어 붙었던 가슴이 조금씩 열리는 느낌이랄까. 많은 육아 맘들이 몇 년은 꽁꽁 얼었다가 봄을 맞이하는 순간을 알게 모르게 겪었을 듯 싶다. 말로만 듣고 한 번도 갈 엄두를 못냈던 페로탱 갤러리, 화이트 큐브 갤러리 윈도우를 잠시 관람한다(월요일은 쉬는 날이네). 나의 "젊은" 30대를 보냈던 아트 갤러리의 세계.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어 수입(?) 갤러리들이 너무나 힙한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새로운 작품들 보면서 기뻐하고 공부하고 감동했던 나의 싱글 시절. 단 한 순간을 버릴 것이 없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그땐 더 많은 것이 있을 것 같아서 계속 다른 꿈을 꾸었는데...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살겠지?
미국에서 잠시 패션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퇴근할 때 가끔 이야기를 나누던 회계팀의 유태인 아저씨가 해 준 말이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는 것을. "네가 지금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만 보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 바깥세앙에서 엄청난 모험을 하면서 대단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지? 그런 생각하면서 앉아 있는 네가 답답하지?" 그 뒤에는 "그렇지 않아. 지금 너가 하고 있는 일이 모험이야." 라는 말이 생략되었던듯 하다. 아니면, "다 same shit 이야" 라는 말일수도 있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도 충분한 것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들 절대 포기하는 것이 아닌 것을... 어쩌면 열정을 못감추고 방황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일까?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길 건너편에 요즘 핫하다는 alo yoga (알로 요가)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멋쟁이들은 다 여기 모였더라는. 적어도 나의 눈에는 얼마만에 인스타가 아닌 실물로 보는 최신 유행을 다 담은 사람들인가. 슬쩍슬쩍 가격표를 힐끔힐끔하며 구경을 마치고 점심 약속장소로 총총총...
아이를 봐주러 집에 들른 친정엄마와 수다를 떨며, 난 입맛 제로 젤리 한 포를 먹고 가족의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은 소고기 그릴. 통마늘 콩피를 만들고 소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준비하고 참기름 소금장과 소형 전기그릴을 달군다. 이것저것 지지고 볶기 싫을 때 한 끼 잘 때울 수 있는 메뉴.
아무도 내가 어떤 결심을 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냥 단순히 너무 쪘으니 살 좀 빼야겠어라고 생각하겠지(친정 엄마부터 남편까지 이렇게 생각하는 듯). 하지만, 난 "살 뺄 결심"을 나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인생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다시는 붕괴되지 않고 굳건히 나를 지키겠다고.